메주 쑤기 딱 좋은 시기가 지금이다. 전통 음식이나 각종 요리 고서 등을 참고할 때 절기상 동지(冬至`12월 21일)에서 소한(小寒`1월 5일)이 메주를 쑤는데 가장 적절한 시기로 나와있다.
이 시기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파리나 벌레가 메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시기를 놓치면 메주의 콩이 다 마르기 전에 얼어붙거나 안팎으로 건조 상태가 달라 장맛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메주는 초기 철기시대인 300년대부터 우리 밥상에 올랐다는 문헌자료가 있어서 그 역사가 1천700년에 이른다. 예로부터 '그 집 장맛이 좋아야 음식 맛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음식문화 중심에는 늘 장이 자리했다.
동지를 이틀 남겨둔 19일 전국에서 손꼽히는 오지, 청송 얼음골로 기자는 발길을 옮겼다. 청송군 부동면 항리는 청송에서도 가장 지세가 험하고 기온이 낮아 여름에도 얼음이 얼 정도로 추워서 '얼음골'로 불린다. 이곳에는 17년 동안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메주를 만드는 곳이 있다. 바로 청송 얼음골 황토 메주다.
"장맛은 물맛이니더."
턱밑에 한가득 수염을 기른 이곳 주인 이원식(72) 씨가 기자를 반겼다. 곧바로 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바로 수돗가였다.
이 씨는 수도꼭지를 틀어 물 한 바가지를 담더니 기자의 얼굴에 내밀었다. 기자는 두 손으로 바가지를 받아들고 바가지 안을 유심히 쳐다봤다. 지하수라고 설명을 들었는데 너무나 맑았다. 한 모금 들이켜니 관자놀이가 찌릿할 정도로 차갑고 청량했다.
이 씨는 "210m 지하 암반에서 끌어올린 물인데 이걸로 콩을 삶고 메주를 쑨다. 건강한 물로 장을 만드니 한 번 장을 쒀서 3년이고 5년이고 장독대에 담아두면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씨는 대구에서 공직 생활을 하다가 1999년 12월 이곳으로 귀농했다. 1995년 3월 위암 판정을 받고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1998년 퇴직하고 나서 전국의 이름난 산과 계곡을 다니며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우연히 찾은 청송 얼음골에서 물맛을 본 그는 아예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씨는 처음 자신을 위해 메주를 쑤고 된장을 만들었는데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수술 후유증이 사라지고 체중과 근육이 늘어났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 씨는 "좋은 것을 나눠 먹자"는 생각으로 지인들에게 자신이 만든 메주와 된장을 나눠줬다. 입소문을 타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결국 그들을 위해 '청송 얼음골 황토 메주된장'을 탄생시켰다.
그가 속 보이는 장사치였다면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된장을 팔려고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들였을 터. 하지만 그는 17년간 한결같이 전통 방식을 고집했고 자신의 앞마당에 세워둔 300개 장독에만 장을 담근다. 장 담그는 날이면 인근 주민들의 손을 빌렸고 지역에서 나는 재료만 사용해 한결같은 장맛을 냈다.
이 씨는 "장은 어머니의 손맛이며 사람 냄새가 배어 있어야 한다"며 "사람 손으로 비비고 발로 밟고 짚으로 엮어 매달아야 그 정성이 장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래야 진정하게 깊은 맛을 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