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환, '불행한 천재'에서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까지
스포츠조선 | 이건 | 입력 2011.11.30 14:34 | 수정 2011.11.30 14:36 | 네티즌 의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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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은 시대를 잘못만난 '불행한 천재'였다. '꾀돌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1990년대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투지와 체력을 강조하던 시기 윤정환은 새로운 스타일의 선수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드리블과 정확한 패스, 창조성 넘치는 플레이 스타일이 그의 강점이었다. 1995년 유공(부천·현 제주)에 입단한 윤정환은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믿음 아래 팀의 중심이 됐다. 윤정춘 김기동 이을용과 함께 K-리그 최고의 허리를 구축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최용수와 발을 맞추며 이름을 알렸다. 잠재력이 큰 젊은 미드필더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지도자 운이 없었다. 기술을 중시하는 지도자들은 윤정환을 중용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한국 지도자들은 기술보다는 체력과 투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A대표팀 감독들은 '윤정환은 체력이 약하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주전보다는 조커로 활용했다. 1994년 동아대 재학시절부터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주로 조커로 출전했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9년동안 A대표팀에 몸담았지만 38경기 3골에 그쳤다. 2002년 한-일월드컵 멤버였지만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다.
2003년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성남으로 돌아왔을 때 설 자리가 없었다. 2002년 이후 한국 축구 흐름은 거스 히딩크 감독식 체력과 압박축구로 바뀌었다. 2003년 30경기에 나섰지만, 대부분 전반만 뛰고 교체아웃됐다. 생애 첫 K-리그 우승을 맛봤지만 우승의 조연이었을 뿐이다. 1년 뒤 전북으로 이적했다. 부천 시절 코치였던 조윤환 감독 아래에서 다시 기량을 꽃피웠다. 성남 시절 1골-3도움에 그쳤던 공격 포인트도 2골-8도움으로 크게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5년 자신을 믿어주던 조윤환 감독이 사임하자 갈 곳이 없었다. 2006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새로운 팀은 J2-리그의 사간 도스였다.
선수 생활의 말미였다. 팀을 승격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2006년과 2007년 2시즌을 뛰며 베테랑으로 팀을 이끌었다. 비록 J-리그 승격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후회없는 시간을 보냈다. 2008년 윤정환은 미련없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로 변신했다.
지도자 윤정환은 선수 시절과 달랐다. 시대가 그를 원했다. 유로 2004, 2006년 독일월드컵을 거치면서 세계 축구의 흐름이 체력과 압박에서 기술과 전술 위주로 바뀌었다. 2008년 사간 도스 유소년 코치로 시작했다. 1년 후에는 1군 코치로 승격됐다. 2년간의 코치 생활을 거쳐 올해 감독이 됐다. 감독 윤정환은 선수들에게 기술과 전술은 물론이고 투지까지 요구했다. 중원에서의 세밀한 패스 플레이도 중시했지만 활동량도 요구하는 윤정환식 공격 축구를 추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10년 9위였던 사간 도스는 남겨놓은 현재 승점 68(19승 11무 7패)로 2위에 올랐다. 3위 콘사도레 삿포로와 4위 도쿠시마가 승점 65로 그 뒤를 쫓고 있지만, 골득실차에서 +34로 삿포로(+16)와 도쿠시마(+14)보다 크게 앞서있다. 사실상 승격을 확정지었다.
윤정환의 눈은 내년 시즌을 향해있다. J-리그 잔류가 목표다. 올 시즌 보여준 역량만 유지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 윤정환의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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