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학교운동장 사용비리

참도 2011. 4. 30. 17:14

Why] 돈벌이장 된 학교 운동장… 전문 브로커까지 설친다

공립학교 운동장 빌려주고 年 수백만~수천만원 벌어
사용료 기준없어 천차만별… 조기축구회·야구 동호회, 운동장 확보위해 뒷돈까지
전문 브로커들이 입찰 참여해 체육관 이용권 낙찰받아 장사도

조선일보 | 석남준 기자 | 입력 2011.04.30 11:57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강원

 

서울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매주 일요일 조기축구를 하는 A씨는 얼마 전 학교 행정실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운동장 사용 계약이 만료되는 이달 갱신을 앞두고 사용료를 2배 올려달라는 전화였다. A씨는 "작년까지 매주 일요일 4시간 동안 학교 운동장을 쓰고 1년에 200만원을 냈는데, 계약 갱신을 앞두고 400만원으로 올려달란다"며 "갑자기 통보를 받아 당황스럽다"고 했다.

↑ [조선일보]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동네마다 조기축구회와 야구동호회가 생기고, 일반인 체육교실이 늘어나면서 학교 운동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수요는 넘치고 공급엔 한계가 있다 보니, '갑(甲)'인 학교 측의 횡포가 잇따르고 있고, 그 틈을 노리고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 운영권을 노리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하고 있다.

규정 없어 사용료 천차만별

본지가 서울시교육청이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1년(2010년 3월~2011년 2월) 동안의 서울 전체 공립 초·중·고등학교 926개의 운동장 사용료 징수 현황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학교에서 운동장을 대여한 대가로 1년간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얻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는 조기축구회 2곳에 운동장을 빌려주고 3750만원을 받았고, 강동구의 초등학교는 7개 조기축구회에 운동장을 빌려주는 대가로 3100만원을 벌었다.

공립학교가 운동장을 외부에 대여하고 사용료를 받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1999년 당시 교육부는 "각급 학교는 학교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주민이 학교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라"며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운동장을 개방하는 학교가 100%에 가깝다"고 했다.

문제는 사용료 책정 기준이 없어, 학교별로 운동장 사용료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는 것이다. 운동장 사용료는 학교별로 시간당 두배 이상 차이가 났고, 같은 구(區) 안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는 1년 동안 조기축구회 6곳을 상대로 200만~300만원씩을 받고 운동장을 대여한 반면, 같은 구의 다른 초등학교는 13개월 동안 30만원만 받고 야구동호회에 운동장을 빌려줬다. 종로구의 한 조기축구회 김모(47) 회장은 "사용료에 대한 기준이 없어 따지지도 못하고, 을(乙)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제시한 금액에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 서울에만 야구동호회가 4000개 이상, 조기축구회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사이에서 운동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뒷돈'이 오가는 일도 흔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째 조기축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는 B(53)씨는 "운동장을 다른 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학교 행정실장과 교장에게 명절 때마다 선물을 한다"며 "행정실장이 가끔씩 전화를 해 30만~40만원의 찬조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장기계약의 경우 학교 측에서 따로 공고를 내지 않고, 알음알음 수의계약을 통해 운동장을 빌려주기 때문에 비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학교시설 입찰 전문 브로커도 등장해

최근 들어 운동장에 체육관을 짓는 학교가 점차 늘고 있다. 운동장은 대부분 수의계약을 통해 빌려주는 반면, 체육관 대여는 공개입찰을 거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공개입찰이 수의계약보다 투명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사용료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체육관 입찰에 전문 브로커가 등장하는 등 비리 규모가 크고 교묘하다는 것이다.

조기축구회 등 취미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입찰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체육교실 등 돈벌이가 목적인 업체나 '체육관 브로커'가 입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체육관의 규모와 위치에 따라 체육관 운영 낙찰 비용은 연간 2000만~4000만원이다. 입찰에선 최고가를 제시한 개인이나 업체가 체육관 운영권을 낙찰받는다. 문제는 입찰을 따낸 후 실제로 체육관을 운영하지 않고, 다른 업체나 농구동호회 등에 더 많은 금액을 받고 넘기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일반인 상대로 체육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C(40)씨는 "한 사람이 서울에서만 7개의 학교 체육관 입찰을 따냈다"며 "그는 체육교실을 운영하지 않고, 체육관 운영권을 2차, 3차에 걸쳐 다른 업체들에 쪼개거나 통째로 팔아넘긴다"고 했다. 체육관이나 운동장 운영권이 '돈놀이 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C씨는 "낙찰만 받으면 체육관을 쓰고 싶은 업체가 워낙 많아 가만히 앉아 돈을 벌게 된다"라고 했다.

브로커와 학교 측과의 유착도 체육교실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체육교실 강사 김모(30)씨는 "공개입찰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일부 학교에선 운영권을 주기로 한 참여자의 경력을 미리 보고 입찰 자격 조건에 이를 반영해 다른 사람은 지원도 못 하게 만들어버린다"면서 "입맛에 맞는 사람만 입찰에 참가하게 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작업 친다'고 표현한다.

서울 강남의 한 체육교실 관계자는 "교장·장학사와 친해서 입찰을 따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며 "학교 관계자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수수료를 받고 입찰을 따내게 해주겠단 브로커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학교는 낙찰이 된 후에 학교 체육관 운영이 어떻게 되는지엔 전혀 관심이 없다"며 "운동장과 체육관 운영권이 돈벌이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지만, 아이들이 노는 학교에서 어른들이 돈을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다.

학교 운영 자율화 속에 감시 체계는 없다

학교 운영이 자율화됨에 따라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에 대한 운영권은 학교장이 갖는다. 운동장을 빌려주고, 체육관 입찰을 해서 얼마를 받았는지 교육청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 학교장의 재량으로 운동장과 체육관을 외부에 빌려주고 번 돈은 학교 예산에 포함시켜 학교가 자율적으로 사용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행정실장은 "운동장을 빌려주고 받은 돈은 학교 운영자금으로 쓴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역은 얘기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 대여는 100% 학교장 판단하에 이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감사를 통해 비리가 있을 경우 적발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학교의 시설을 이용해 학교가 돈을 벌고 있지만, 학교 운영 자율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를 상시적으로 감시·감독할 기준은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시설의 이용료에 대한 학교별 편차가 발생해 사용료 징수기준 조례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학교 시설을 낙찰받아 입찰과 관련없는 타인에게 양도한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학교 시설을 이용해 영리를 취하는 것 자체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감사원은 다음달 전국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초·중·고교의 시설 비리에 대한 특별감사에 들어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