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는 주민등록상 1964년 경북 안동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때부터 소년공 생활이 시작됐다.
이 후보는 목걸이 공장에서 매일 12시간씩 납땜 일을 시작으로 생계에 투신했다.
공장 프레스 기계에 팔이 물리는 사고를 당하고 성장판이 손상되기도 했다.
이 후보가 선거 국면에서 "성남시장 8년, 경기도지사 3년 동안 제 모든 정책에는
가난하고 참혹했던 저의 삶과 평범하고 어려운 우리 국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이 후보는 생계와 공부를 병행하며 검정고시를 치렀다.
학력고사에서 전국 순위 3000등 안에 들었지만 서울대가 아닌
전액 장학금과 매월 생활비 30만원을 제시한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졸업 후 1986년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한 이 지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2017년 2월8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이재명의 굽은 팔' 출판기념 간담회에서 참석한 공부 친구들과 손을 잡고 있다.
이 시장은 정계 입문 이후 처음 내놓은 이 자서전에서 소년공 시절을 회고하고
정치를 시작한 이유, 복지정책 철학 등을 소개했다.
왼쪽부터 김상조 한성 교수,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소장,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이재명 성남시장,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교수. / 사진제공=뉴스1
이 후보가 정치 입문을 결심한 것은 2004년 3월 성남 시립의료원 사태 때다.
이 후보는 성남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던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첫 도전인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2008년 성남시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하지만 실패는 여기까지였다.
이 후보는 2010년과 2014년 성남시장 선거에 연이어 당선됐다.
이 후보는 논란이 있었지만 임기 시작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시정 운영을 선보였다.
이후 시립의료원 착공과 무상 급식·보육·교복·산후조리원 등 이재명식 복지 시리즈를 펼쳤다.
2017년 대선 경선에 도전 끝에 문재인 대통령에 패했지만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당선되며 또다시 전국 단위 주목을 받았다.
높은 공약 이행률로 다음 대선 도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도 이 때다.
위기도 있었다. 이 후보는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국면에서 열린 TV토론회에서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0년 7월16일 이 지사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2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지사가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고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하는 순간이다.
이 후보는 같은해 2월 4만2000여명 신도 명단을 확보했던 '신천지교회 과천본부 강제조사',
같은해 4월 소멸성 지역화폐 형태의 '경기도 재난 기본소득' 지급 등으로
국민 기대를 높이던 상황이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0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경합 끝에 민주당 대선후보에 선출되며
숨 가쁜 대선 행보을 이어갔다.
그러나 윤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 후보 도전에도 마침표를 찍게 됐다.
선거 국면 내내 이 후보를 괴롭혔던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전통적 여권 지지층 일부의 결속 부족,
윤석열-안철수 후보의 전격 단일화 선언, 국민통합정치론에 대한
진정성 우려 등이 패배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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