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전 대통령 부부 결혼 75주년 기념식
고향 집으로 퇴임한 유일한 전직 대통령
고액 강연 대신 집짓기 운동, 인권 활동
주민 일자리 만들려 사후 고향에 묻히기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잘린 여사가 10일 결혼 75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토요일인 지난 10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작은 마을
플레인스는 미 전역에서 온 유명인들로 떠들썩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 부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테드 터너 CNN 창업자, 컨트리 가수 가스 브룩스와 트리샤 이어우드 부부가 인구 700명의 이 마을을 찾았다.
이곳에 사는 가장 유명한 사람,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의 결혼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사는 지금은 박물관이 된, 80년 전 부부가 다녔던 공립학교 '플레인스 고교' 건물에서 열렸다.
올해 96세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93세인 부인 로잘린 여사는 손님 350여명을 직접 맞이했다.
친지와 이웃, 부자와 가난한 사람,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모두 모였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민주당 소속인 카터 전 대통령은 1976년 대선에서 승리해 39대 대통령을 지냈지만,
80년 혜성처럼 나타난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카터는 단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 퇴임 후 더 빛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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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는 한 번에 수십억 원씩 받는 고액 강연이나 기업 이사회 활동을 거부했다.
그는 2018년 WP 인터뷰에서 “백악관 생활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 거액을 손에 쥐는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면서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내 야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2001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부인 로잘린 여사가 한국 천안시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인 해비태트 활동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신 카터 부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 활동과
전 세계를 누비며 저개발국의 민주적 투표 참관인 봉사, 질병 퇴치, 인권 증진 활동에 전념했다.
이 때문에 퇴임 대통령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는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
(로버트 스트롱 '워싱턴 앤드 리 대학' 교수)으로 불린다.
퇴임 후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청렴함이다.
카터는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부부가 50년 전에 지은 집에 살고 있다.
백악관 생활을 마친 뒤 자신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살던 곳으로 돌아온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다.
현재 시가는 21만3000달러(약 2억 5000만원)로 미국 집값 평균 이하라고 WP가 전했다.
그마저도 네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국가에 기부해 박물관을 만들기로 했다.
부부는 사후에 이 농장 한쪽에 묻히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야 관광객과 방문객을 유치해 마을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터가 사는 마을은 의류부터 공구, 식료품까지 한 곳에서 파는 잡화점
'달러 제너럴'가 가장 큰 상점일 정도로 소박하다.
이 상점마저도 카터 전 대통령이 '유치'했다고 WP는 전했다.
철도역은 하나 있지만, 도로 신호등은 없다.
2018년 WP는 카터 부부가 사는 집을
1961년 지은 방 2개짜리 농장 주택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부부는 토요일 저녁마다 손잡고 약 800m 떨어진 이웃집에 걸어가
종이 접시에 담은 소박한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그가 전직 대통령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차이는 비밀경호국 요원 3명이
몇 걸음 떨어져 걷는다는 점이라고 WP는 전했다.
이 같은 검박한 생활 덕분일까. 카터 부부는 미 대통령 부부 가운데 가장 오래 해로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날 축하행사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로잘린 여사를 향해
"내게 꼭 맞는 여성이 돼 줘서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서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로잘린 여사는 어렸을 때 남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도 안 했는데
"지미 카터가 나타났고, 내 인생은 모험이 됐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부부는 "오래 가는 결혼을 하고 싶다면 꼭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비결"이라며
"우리는 이견을 풀기 전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AP통신 인터뷰에서 밝혔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