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윤일병

윤석열 국정원 댓글부대 수사

참도 2017. 8. 30. 14:27

한겨레21] 윤석열호(號), 국정원 댓글 부대 가담 민간인·단체 압수수색…
원세훈 전 국정원장 넘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칼끝 향할까

박근혜 정부에서 굴욕을 견뎌낸 검사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활해 다시 ‘인생 수사’를 마무리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의 칼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눌 수 있을까. 한겨레


진짜 악인을 찾는 급행열차가 막 출발했다. 이 열차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가늠하긴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종착역’이 아닌 ‘경유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검(지검장 윤석열)이 지난 8월23일 국가정보원 여론 공작에 관여한 민간인들과 관련 단체 및 주거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8월21일 국정원으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뒤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수사 의뢰를 받은 지 하루 만에 ‘사이버 외곽팀’ 팀장 30명을 출국금지한 검찰은 다시 하루 만에 이와 관련한 20여 곳의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난 24일 법원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고를 연기하고 변론을 재개해줄 것을 요청했다. 사이버 외곽팀이란 국정원 밖에서 정권에 유리한 온라인 댓글 등을 달아 여론 조작을 실행한 민간인 ‘댓글 부대’를 뜻한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수사

검찰이 출국금지와 압수수색을 단행한 외곽팀장 중에는 제1158호 표지이야기 ‘국정원 우익 청년 매수해 여론조작 나섰다’를 통해 단독 보도했던 ‘알파팀’ 리더 김성욱씨와 김씨가 만든 우파단체 ‘한국자유연합’도 포함됐다. 이외에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와 이명박 전 대통령 팬클럽에서 발전한 ‘늘푸른희망연대’ 등의 단체가 대거 포함됐다. 검찰은 범죄 혐의 행위가 발생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은 만큼 우선 자료를 확보하고, 외곽팀장 30여 명을 모두 개별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국정원의 수사 의뢰부터 검찰의 변론 재개 신청까지 일사천리인 현재의 사건 전개가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에 대한 “‘윤석열호(號)’의 수사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자 향후 전개될 수사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고 평했다. 실제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은 ‘검사 윤석열’의 부침을 관통하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검사장은 중앙지검 특별수사 제1부 부장검사 시절인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사건 특별수사팀’ 팀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해선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큰 사안인 만큼 검찰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수사를 적절하게 마무리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윤 검사장은 그야말로 정권을 밑동부터 흔들었다. 권한 다툼까지 불사하며 범죄 혐의가 있는 국정원 직원을 체포했고,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그로 인해 윤 지검장은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공개 설전을 주고받았다. 이후 상관인 채동욱 검찰총장이 <조선일보>의 석연치 않은 ‘혼외자 스캔들’ 폭로로 낙마하자 바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수사팀에서 배제되기 직전 윤 검사장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수사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항명(!)에 가까운 폭로를 했다.

그로 인한 좌천은 어찌 보면 ‘자초한 필연’이었다. 이후 그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받았다. 검찰 안팎에서 “사실상 사임 종용 인사”라는 평이 나왔지만 윤석열 검사장은 버텼다. 검사들 내부에서조차 윤 검사를 향해 “고등학교를 두 번 다닌다”고 조소했지만 그는 끝내 굴욕을 견뎌냈다.

‘댓글 부대’에 선거법 위반 혐의도 적용

하지만 그에 대한 대중적 평가는 달랐다. “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검찰에 남아 할 일이 있다” 등의 발언으로 윤 검사장은 ‘문무를 겸비한 진짜 검사’라는 평판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영화 속 극적 귀환처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또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서울중앙지검장의 급을 낮추는 무리를 감수하며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서울중앙지검장이 고검장급이어서 임명권자의 눈치를 본다는 이유를 댔지만, 검찰 안팎에선 윤석열을 한번에 고검장으로 승진시키기 부담스러워 급을 낮춘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윤석열호의 첫 대형 수사가 공교롭게도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이다. 만약 신인 감독이 윤석열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시나리오를 이렇게 썼다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을 법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검찰은 심리전단 직원들과 외부 민간 조력자들에게 국정원법 위반 및 배임·횡령 혐의뿐만 아니라 선거법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의 공범 관계가 성립되면 민간인 조력자들에게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며 향후 수사 방향을 암시했다.

검찰이 8월24일 신청한 변론 재개 요청을 보면 “기존에는 극히 일부만 파악됐던 민간인 외곽팀의 규모와 실상이 확인돼 공판에 반영할 필요가 있게 됐다”며 “추가 확보된 중요 증거들의 제출, 공소장 변경, 양형 자료 반영 등을 위해 부득이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미 검찰은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원 전 국정원장은 그동안 국정원법에 대해서만 유죄판결을 받았을 뿐, 그보다 더 중한 공직선거법에 대해선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그가 선거법 위반에 무죄를 받으면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자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었다.

정부 질적 차이 보여줄까

윤석열 지검장은 애초 불가능했을 ‘인생 수사’를 다시 한번 해볼 기회를 붙잡았다.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은 ‘촛불’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와 이후 들어선 정부의 질적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웜홀’이다. 그 좁고 어려운 통로를 검찰이 이번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국가권력이 민주주의에 위해를 기도했던 반헌법적 사건에 ‘윤석열호’는 과연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을까.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