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물

[스크랩] 마광수

참도 2016. 6. 27. 11:13
정년 마광수 "억울함과 한이 쌓여 울고 싶다"
http://v.media.daum.net/v/20160627092253359

출처 :  [미디어다음] 문화생활일반 
글쓴이 : 뉴시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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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살아있는 독수리는 무섭지만/ 박제된 독수리는 멋이 있다// 살아있는 호랑이는 무섭지만/ 박제된 호랑이는 멋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랑은 무섭지만 박제된 사랑은 멋이 있다// 우리들의 삶은 ‘죽고 싶다’와 ‘죽기는 싫다’ 사이에 있다/ 우리들의 사랑은 ‘자유롭고 싶다’와 ‘자유가 두렵다’ 사이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삶은/ 마치 박제된 독수리와도 같은/ 감미로운 가사상태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랑도/ 박제된 독수리와 같은/ 가사상태이다// 죽어가는 생명은 애처롭지만/ 박제된 생명은 멋이 있다. (서울의 우울, 마광수)
【서울=뉴시스】어렸을 때 버스를 타면 길가의 집들이 지나가고/ 버스는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어렸을 때 물가에 서면 물은 가만히 있고/ 내가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 버스를 타면 집들은 가만히 있고/ 나만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물가에 서면 나는 가만히 있고/ 강물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늙는 것의 서러움, 마광수)
【서울=뉴시스】님이여, 저는 아주 키가 작은 나무이고 싶어요/ 우리들은 모두 다 외로움의 대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들입니다/ 나무들은 모두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어요/ 그래서 대지와는 정반대 방향인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지요/ 키가 비슷하게 작은 나무들은,/ 서로의 가슴위로 불어 가는/ 크고 작은 바람들을 함께 알아요/ 모두들 외로움에 깊게 지쳐 있기 때문에/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키가 큰 나무들은 그 큰 키만큼/ 고적하고 외롭습니다/ 하늘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 서로가 마주 보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나무가 적으니까요/ 님이여, 그래서 저는 아주 작은 한낱 잡목이고 싶어요/ 키 큰 나무는 되고 싶지 않아요/ 비록 아무 의미도 없이 쓰러져 땅속에 묻혀 버린다고 해도,/ 저는 그저 외롭지 않게 한세상을 살며/ 꿈꾸듯 서로 바라보며/ 따사롭게 위안받을 수 있는/ 그런 많은 이웃들을 가지고 싶습니다. (사랑받지 못하여, 마광수)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퇴임하는 교수에게 ‘새로운 출발’ 운운하는 것은 관행이 돼버린 덕담이다. 인사를 받은 교수도 강의 부담에서 벗어나 연구와 저술의 삶 제2장을 열겠다는 식으로 답사한다. 정년 후 20년쯤은 거뜬히 활동하는 교수 출신이 적잖기도 하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이상상태 혹은 공치사를 곧이 곧대로 신뢰, 나잇값을 못하면 미운털이 박히거나 망신살이 뻗치게 마련이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65·현대문학)가 외솔관 203호 연구실을 8월 말 영영 떠난다. 퇴직 후 명예교수도 못 된다. “중간에 한 번 잘려서…” 명예교수 자격요건을 잃었다고 한다. 필화 탓에 마 교수는 1990년대 장기간 허송세월을 했다.

“교수생활은 그리 평탄치가 못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냈을 때는(1989) 교수들의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냈을 때는(1992) 소설이 야하다는 이유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긴급체포까지 당하면서 감옥소로 가게 되는 바람에 해직되기도 했다. 그리고 국문학과 동료교수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해(2000) 심한 우울증을 앓을 때는 3년6개월 동안이나 휴직을 하게도 됐다. 또 실형 선고를 받은 전과자라서 정년퇴직 후에도 연금을 못 받는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교수가 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셈이다. 인생이라는 긴 코스의 마라톤 경기를 하는 도중에 장애물을 너무나 많이 만났다. 지금 생각해 볼 때 꽤나 거친 스포츠 경기를 즐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 팔자소관이려니 한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1980년대 민중문학에 종언을 고한 문화비평적 에세이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법은 ‘즐거운 사라’를 음란문서로 읽었고, 마광수를 단죄했다. 작가의 판단은 물론 다르다. “우리는 인간이 사회적 자아뿐만 아니라 개인적 자아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개인적 자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성문제에 대해 툭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한 시 바삐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성문제는 마치 쓰레기통에 뚜껑만 덮어 놓고 있는 양상과도 같아서, 은폐될대로 은폐된 채 해결책을 전혀 찾지 못하고 속으로 썩어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새 시대의 조류에 맞는 새로운 성의식이나 성철학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어 사회 전체를 숨막힌 답보상태로 몰아가고 있으며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이중적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보수적 억압의 논리 만이 판을 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마 교수는 배신감으로 인한 외상성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입원,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2002년 한 학기 동안 복직해 강의하다가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 다시 휴직했다. 2004년 건강을 겨우 회복하고 연세대에 복직했다)

교단을 벗어난 뒤의 문필활동은 불투명하다. “출판사들이 예전같지 않다. 경제 문제도 걱정이다. 앞으로 빈 시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오호 통재라, 이 고통을 어찌하리오.”

문화계가 크게 주목하는 가운데 1985년 12월 연극학 교수(64)와 결혼한 마 교수는 1990년 1월 합의이혼했다. 자녀는 없다.

제자들이 산문집을 헌정하고, 스스로는 “신경질만 나고 집필 욕구도 없어진다”면서도 신작소설 ‘덧없는 것의 화려함’을 8월에 펴내는 것으로 정년을 기념한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논총이 아닌 에세이다. 마 교수도 논문이 아닌 장편소설로 화답한다. 논문을 쓰지 않는 교수라고 학자들은 손가락질했지만, 유미주의적 쾌락주의자인 마 교수는 엄청난 창작물로 응수했다. 못 쓴 게 아니라 안 썼다. 1984년 마광수의 박사논문 '윤동주 연구, 그의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중심으로‘가 보기다. 이 논문 한 편으로 윤동주는 부활했다.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며 윤동주를 분석한 것이어서, 이후 윤동주 관련 이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시피 하다.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當世風)의 결혼’, ‘겁(怯)’, ‘장자사(莊子死)’ 등 시 여섯 편을 추천해 마광수를 문단에 데뷔시킨 지도교수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라는 사실도 뜻밖이다.

연대생들의 마광수 치사랑은 유별나다. 1980년대 중후반 최루가스 냄새가 가실 날 없던 신촌 캠퍼스에서도 민주는 민주, 마광수는 마광수였다. 마 교수를 듣겠다는 학생들이 하도 많아 그의 수업은 강의실이 아닌 강당에서 이뤄지기 일쑤였다. 해직을 막으려고 ‘마광수는 결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플래카드를 건 대학생들이다. 마광수를 셰익스피어급으로 떠받들 정도였던 그들은 ‘마광수는 옳다’는 백서까지 내며 선생님을 지키려 발을 동동 굴렀다.

어쩌면 문약의 전형이라고 할 수도 있는 섬세한 마 교수는 감정에 몹시 솔직하다.“대학교수직을 평생의 생업으로 지망해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학자로서의 원대한 포부 같은 걸 가져본 적이 없다. 그저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나 같이 허약하고 게으른 체질에 딱 맞는, 가장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땄을 뿐이다. 방학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학교의 방학기간은 초중고등학교의 방학기간보다 훨씬 길다는 점에서, 대학교수라는 직업은 내게 가장 편한 직업으로 보였다.”

현학적 글쓰기를 졸업한 지 오래, 글을 말처럼 쓰고 말을 글같이 하는 그다. “정년퇴임을 맞으니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다.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 잘리고, 한참 후 겨우 복직했더니 곧바로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으로 우울증을 얻어 휴직한 것, 그 뒤 줄곧 국문과의 왕따 교수로 지낸 것, 그리고 문단에서도 왕따고, 책도 안 읽어보고 무조건 나를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 문단의 처절한 국외자, 단지 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 만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간첩 같은 꼬리표. 그동안 내 육체는 울화병에 허물어져 여기 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지독한 우울증은 나를 점점 좀먹어 들어가고 있고. 오늘도 심한 신경성 복통으로 병원에 다녀왔다. 몹시 아프다. 나는 점점 더 늙어갈 거고 따라서 병도 많아지고 몸은 더 쇠약해갈 것이고, 논 기간이 아주 길어 아주 적은 연금 몇 푼 갖고 살려면 생활고도 찾아올 거고. 하늘이 원망스럽다. 위선으로 뭉친 지식인, 작가 등 사이에서 고통받은 것이 너무나 억울해지는 요즘이다. 그냥 한숨만 나온다.“

‘즐거운 사라’가 야하다고 검찰이 마 교수를 잡아가자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늘어난다. 잘 잡아갔다”던 어느 교수는 전두환~김대중 대통령 시절 여러 관변단체장을 역임했다. 대학총장도 했다. 마 교수를 구속한 검사도 검찰총장을 지냈다. 마 교수가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마 교수는 “파란만장, 지쳤다”고 털어놓는다. “애썼지만 한국 문화풍토의 이중성은 안 없어졌다”는 하소연도 거듭한다. 사실인 듯하다. “동지가 없다. 나 같은 작가가 안 나오고 있지 않느냐.”

마 교수는 엄숙근엄한 문학에 진저리를 친다. “우리나라의 현대문학은 비록 이광수의 계몽주의 또는 교양주의로부터 시작됐지만 곧바로 김동인의 리얼리즘에 의해서 극복됐다. 성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김동인은 ‘감자’나 ‘김연실전’을 통해 이광수의 편협한 시혜의식과 비현실적 이상주의를 극복하고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성을 그릴뿐 거기에다가 섣부른 진단이나 처방을 첨가시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김동인으로부터 시작된 문학적 주관의 확립이 이후로 후계자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현대 소설은 줄곧 이데올로기나 도덕의 슬하에서 벗어나오지를 못했고, 지금은 오히려 더욱 심해진 이광수주의의 단면들이 여러가지 가면들을 통해서 노정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문학적 퇴보”라고 지적한다.

연세대의 교훈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다. 마 교수는 이를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로 거꾸로 수용, 실천했다.

“경험을 밑바탕 삼아 인생의 후배들에게 건방지게 조언을 하라고 한다면, 내가 만들어 낸 사자성어 ‘이허수명(以虛受命)’이라는 글귀를 들려주고 싶다. 마음을 텅 비우고 천명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 천명이 기독교의 여호와 신이든, 불교의 부처님이든, 아니면 그저 막연히 하늘의 뜻이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그저 광범위한 의미로서의 자연쯤 되겠다.”

인간의 경험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마광수 교수는 끝내 웃지 않았다.

◆‘즐거운 사라’ 일지= 1991년 8월25일 ‘즐거운 사라’ 첫판 서울문화사에서 출간. 1991년 9월10일 판매금지됨. 1992년 8월28일 개정판 청하출판사에서 출간. 1992년 10월29일 ‘즐거운 사라’가 외설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구속됨. 1992년 10월30일 문화부에 의해 ‘즐거운 사라’가 판매금지됨. 1992년 12월28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 1993년 2월28일 연세대학교에서 직위해제. 1994년 5월1일 ‘즐거운 사라’ 일본어판이 번역, 출간돼 일본에 소개된 한국 소설로는 최초로 베스트셀러가 됨. 1994년 7월13일 2심에서 항소 기각 판결. 1995년 6월16일 3심에서 상고 기각 판결(유죄확정). 1995년 6월17일 연세대학교에서 해직. 1998년 3월13일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 1998년 5월1일 연세대학교 교수로 복직. 2007년 4월10일 인터넷에 ‘즐거운 사라’를 올렸다는 죄목으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형 판결.

◆마광수(馬光洙)는 누구

◇1951년 서울 생. 청계 초등학교 졸업, 대광 중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한양대, 강원대 등 여러 대학 강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교수(1979~1983),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이론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시 창작론’, ‘마광수 문학론집’,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시학’, ‘문학과 성’, ‘삐딱하게 보기’, ‘연극과 놀이정신’

◇시집= ‘광마집(狂馬集)’, ‘귀골(貴骨)’,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야하디 얄라숑’,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일평생 연애주의’,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 ‘천국보다 지옥’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사랑받지 못하여’, ‘열려라 참깨’, ‘자유에의 용기’, ‘마광쉬즘’,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더럽게 사랑하자’, ‘마광수의 뇌구조’, ‘나의 이력서’, ‘스물 즈음’ 등

◇문화비평집=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사라를 위한 변명’,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육체의 민주화 선언’,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생각’

◇철학적 전작에세이= ‘성애론’, ‘인간에 대하여’,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마광수 인생론: 멘토를 읽다’, ‘사랑학 개론’, ‘행복 철학’,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섭세론’

◇소설= ‘권태’, ‘광마일기’, ‘즐거운 사라’, ‘불안’, ‘자궁 속으로’,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광마잡담’, ‘로라’, ‘귀족’, ‘발랄한 라라’, ‘사랑의 학교’, ‘돌아온 사라’, ‘미친 말의 수기’, ‘세월과 강물’, ‘청춘’, ‘상상 놀이’, ‘2013 즐거운 사라’, ‘아라베스크’, ‘인생은 즐거워’, ‘나는 너야’, ‘나만 좋으면’, ‘사랑이라는 환상’

◇화문집= ‘마광수의 아포리즘 낙서 화첩, 소년 광수의 발상’

◇전시회= ‘마광수·이목일·이외수·이두식 4인의 에로틱 아트전’, ‘마광수 개인전’, ‘마광수·이목일 전’, ‘마광수 미술전’, ‘색(色)을 밝히다 전’, ‘마광수 전’, ‘마광수·천소연 2인전’, ‘소년. 광수 전’, ‘마광수·변우식 2인전’, ‘마광수 초대전’, ‘꿈꾸는 삼총사전: 마광수·한대수·변우식’ 등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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