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진보의 힘은 섞임에서 나온다”
‘국가란 무엇인가’ 출간 인터뷰
경향신문 | 정리 안홍욱·장은교·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 입력 2011.04.12 21:40 | 수정 2011.04.13 08:45
2009년 1월 용산참사를 겪으며 자문했고, 지난해 6·2 경기지사 선거에서 낙마한 뒤
가을부터 집필했다는 304페이지의 책에는 질문투의 제목 < 국가란 무엇인가 >
(돌베개)가 달렸다. 책의 출간에 즈음해 지난 11일 만난 유 대표는 "진보진영은
국가권력에 대해 다소 이상적·낭만적, 또는 아주 냉소적·
비판적으로만 (양극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며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라고 말문을 열었다.
유 대표는 "진보의 힘은 순수가 아니라 섞임의 힘에서 나온다"며
"유시민 노회찬 이정희 심상정이 똑같다면 그 당이 얼마나 지지를 받겠나?
스펙트럼 넓은 대중적 진보정당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막스 베버가 좋은 정치인의 자질로 열정·책임의식
균형감각을 꼽은 데 대해 가장 근접한 정치인을 누구로 보느냐고 묻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유 대표는 "(지지표 확장 문제는)
25~30% 갔을 때의 문제이고, 나는 아직 피라미"라며 대선 출마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야권연대는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당위로 매김했다.
유 대표를 만났던 11일은 4·27 김해을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가 결정되기 하루 전이었다.
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단일후보로 결정된 12일, 전화통화에서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전날보다 한결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책의 본문이 '용산참사'로 시작한다.
"그 일을 보면서 국가에 대한 내 자신의 생각이 좀 불명료한 것 같아 옛날에 읽었던 책,
안 읽은 책까지 읽기 시작하면서 이 얘기를 좀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꼭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국가를 훌륭한 국가로 만드는 게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불만을 말하는 경우는 많이 있는데 그것을 넘어 국가 그 자체를
훌륭하게 만들지 않고는 잘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나도 20대 때 고민했다가'그냥 뭐 옳은 말이지' 하고만 넘어갔지,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정치하는 동안에도 깊이 생각 안 했던 것 같다."
-책에서 여러 정치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유 대표가 추구하는 정치철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 '국가로 하여금 정의를 세우게 하라'다.
정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서는 게 아니다.
국가가 적절한 절차를 통해 개입함으로써만 수립될 수 있다.
방법으로 말하면 '시민은 자유롭게, 국가는 정의롭게'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동시에 시장이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당한 강제력을 동원해서 정의가 수립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가장 명료한 형태로 얘기한 것은 라인홀트 니버라고 본다.
니버는 신학자인데도 무장, 비폭력까지 검토했고 도덕적 수단만 갖고
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마음의 자세로 어떤 도덕·규칙에 따라 해야 하는지는
막스 베버가 역시 잘 이해한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론과 비교해보면?
"그분은 그런 거대담론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그 메시지를 젊었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내신 분이다.
'여기서 옳은 것은 저기서도 옳은 것이다'
'불의에 굴종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반칙과 특권이 통하지 않는 사회'
이런 게 다 정의에 대한 관념이다."
-막스 베버는 좋은 정치인의 자질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꼽았다.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열정은 있었지만 나머지는 부족했다. 특히 책임의식이 많이 부족했고
균형감각도 가지려고 했지만 때로 많이 흔들렸고. 베버 기준으로 보면 훌륭한 정치인은 아니다."
-역대 정치인들 중 막스 베버의 기준에 가장 근접해 있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보는가.
"한국 현대사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근접하다고 본다."
-책은 "연합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없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연합의 범위와 대상은 어디인가.
"한나라당과 아류정당을 뺀 나머지 정당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까지가 연합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국가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보수정당의 1당 지위가 무너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다른 당들이 연합해서 1당의 위치로 가는 것 말고는
국가권력을 직접 장악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유 대표는 통합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진보정당은 비정규직 문제와 한·미 FTA 추진에 대해 입장이 다른 것 같다.
"진보의 힘은 순수가 아니라 '섞임의 힘'에서 나온다.
하나의 국가가 단일한 이념으로 지배를 받으면 망하는 것처럼
하나의 정당도 단일 노선이 지배하면 발전하지 못한다.
모든 정치쟁점에 대해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가진다면 통합할 의미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보정당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
상대방의 변화를 강제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시민이 노회찬과 이정희,
심상정과 똑같아져서 하나의 당이 된다고 생각해보라.
그 당이 얼마나 지지를 받겠나."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 등은 이번 재·보선 협상을 보면서 내년 총선
·대선을 맞이하려면 야권의 연합보다는 통합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입장이다.
국민의명령 문성근 대표도 큰 틀에서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야권 전체가 모이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자 하는 의욕 자체가 없다.
할 수 있으면 매우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민주당처럼 내부에 진보세력부터 사회주의자,
사회자유주의자까지 다 있는 정당이 되면 좋겠지.
그러나 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된다고 본다."
-석패율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비례대표를 줄여서 하자는 게 무슨 의미 있나.
비례대표가 몇 개밖에 안되는데 그걸 또 쪼개나.
코끼리 비스킷도 아니고. 면피용이다.
거대 양당이 지역주의에 안주한다는 비판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최근 친노 세력이 분화되고 있다.
"원래 산이 크면 골이 여러 갈래다.
한때 노무현과 함께 일한 사람으로서 자기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다. 노무현 정신을 갖고 타인을 구속해서도 안되고
내가 구속당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한때 갈림길이
나타났을 때 같은 쪽을 택하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나."
-지금 유 대표에게 노무현은 어떤 의미인가.
"그분의 의미는 시기마다 달라져 오기도 했고 일관된 것도 있지만
더는 '나에게 무엇이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마음속에 간직하려고 한다."
< 정리 안홍욱·장은교·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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