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 최선입니까? 30조, 확실해요?
시사INLive | 이종태 기자 | 입력 2011.02.12 12:27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전라
민주당 '무상의료 방안'에 필요한 추가 재원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 방안의 핵심은, 집권 이후 5년에 걸쳐 '입원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의료비 중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액수의 비율)을 현행 40%에서 10%로 내리는 것이다. 다만 병원에 출입하며 치료받는 '외래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은 비교적 높은 30~40%로 유지한다. 그러나 큰돈 들어가는 입원 진료의 보장성이 크게 강화되는 만큼, 시민들이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위험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에 들어가는 추가 재원을 연간 8조1000억원으로 잡는다. 대부분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건강보험 적용)에 포함시키는 비용이다. 예컨대 입원 진료에서 3조9000억원, 환자 간병 1조2000억원, 틀니 4000억원, 치석 제거 1조1000억원 등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1월13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나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무상의료 방안을 시행할 경우 추가 비용 30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추산 금액(8조1000억원)의 3.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경우, 국가가 매년 5조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해도 나머지 25조원을 조달하려면 의료보험료를 지금보다 두 배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맞불을 놓은 셈이다.
무상의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도 민주당이 추가 재원을 너무 낮게 잡은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한다. 예컨대 틀니 치료를 급여 항목에 포함시킬 경우 3조원 정도의 재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민주당은 4000억원으로 평가했다는 식이다. 진보 정당들이 추산한 무상의료 추가 재원은 12조~12조5000억원,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은 12조~15조원으로 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30조원에는 모두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한나라 "환자들, 고비용 진료 마구 요구할 것"
한나라당(보건복지부)의 추가 재원 계산법은 사실 매우 간단하고 명쾌하다. 예컨대 텔레비전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많아지듯, 의료에서도 환자가 낼 돈이 적어지면서 의료 이용량이 폭증하리라는 것이다. 한 번 갈 병원에 두 번 가고, 열흘 입원할 병으로 스무 날 입원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환자들은 MRI나 CT 같은 값비싼 검사, 엄청나게 고가인 로봇 수술 등 새로운 진료 기술과 신약을 마구잡이로 내놓으라며 떼를 쓸지도 모른다. 병원 측 또한 치료를 해주면 해줄수록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진료비를 더 받아낼 수 있으므로, 이 같은 의료 폭증을 반길 것이라는 계산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가정에 기반한 미국 모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의료비 부담이 1% 줄 때 의료 수요는 1.5% 늘어난다. 민주당 방식에 따라, 본인부담률이 약 30% 포인트(40%에서 10%로) 줄면 의료 수요는 얼마나 늘어날까.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보건복지부는 추가 재원 30조원을 산출한 것이다.
의료복지 운동단체들은 이런 한나라당과 보건복지부의 추산이 '무상의료 이슈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억지'라고 반응한다. 이상구 사무처장은 "한나라당의 30조원은 그야말로 완벽한 포퓰리즘 의료가 이뤄지는 상황을 무리하게 가정해서 악의적으로 부풀린 것이다"라고 말한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방안에는 의료 수요를 억제하는 개혁 조치들이 삽입되어 있다. 한나라당의 추계는 이런 개혁의 예상효과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당은 진료비 지불 방식을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사의 진료 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겨,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진료비를 지급한다. 병원 처지에서는 진료 행위를 많이 할수록 돈을 벌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불필요한 치료나 과잉 진료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에 비해 포괄수가제는, 건강보험공단이 특정한 질병에 대해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다. 아무리 많이 진료 행위를 해도 수익을 올릴 수 없으므로, 과잉 진료를 막고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도 일정한 선에서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민주당이 내놓은 '지역별 병상총량제' 역시 의료기관의 과잉 진료를 억제하기 위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의료기관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병상을 급격히 늘렸다. 이는 가급적 많은 환자를 입원시켜야 병원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상 수를 제한하는 병상총량제로 무리한 입원 치료를 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특히 서울 지역 대형 병원으로 전국의 환자들이 몰려 지방 병원들이 고사하는 상황에서 지역 간 의료기관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기대 효과다.
한편 민주당은 '의료계의 검찰'로 불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기능을 대폭 강화해 건강보험 재정이 엉뚱한 곳으로 새는 일을 차단한다는 구상이다. 심평원은 병원이 적절한 진료비를 청구했는지 확인해서 부적절한 치료나 과잉 진료를 막는 준정부기관이다. 이 외에도 △주치의 제도 도입 △공공의료 강화 등의 '지출 구조 합리화' 정책이 준비되어 있다.
민주 "포괄수가제, 병상총량제가 해법"
의료복지 운동가들은 본인부담률이 낮아질 경우 외래 진료가 일정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외래 진료 부문의 본인부담률은 민주당 방안에서도 30~40%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입원의 경우는 다르다. 건강한 시민이 돈이 얼마 안 든다고 일부러 입원하는 경우는 그리 자연스럽지 않고, 더욱이 심평원이 강화되면 부정한 입원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 처지에서도 입원하면 수입을 잃게 된다. 물론 입원 환자에게 상병 수당(입원으로 상실한 수입을 건강보험 재원으로 보상)이 충분하다면 '가짜 환자'가 많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주당은 '건강보험 지출 증가 추계'에서 상병 수당은 제외하고 있다.
이상구 사무처장은 한나라당이 혹시 현재 비급여 항목인 고가의 신기술과 신약이 모두 급여화된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추가 재원을 30조원까지 부풀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예컨대 신기술인 로봇(다빈치) 수술의 경우, 일반 수술에 비해 10~100배의 비용이 든다. 로봇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정말 엄청나게 늘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다빈치를 사용해야 하는 종류의 수술은 많지 않으며 오히려 일반 수술이 나은 경우가 많다고 이상구 사무처장은 지적한다. 무상의료가 로봇 수술 같은 고가의 비급여 항목을 모두 급여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우수하고 비용 우위가 있는 의료 기술과 약품만 급여화해서 불필요한 과잉 진료를 강력히 통제하는 것이 무상의료의 목표다. 한나라당이 이런 부문까지 모두 계산해서 추가 재원을 30조원으로 부풀렸다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라고 이상구 사무처장은 말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민주당은 이에 들어가는 추가 재원을 연간 8조1000억원으로 잡는다. 대부분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건강보험 적용)에 포함시키는 비용이다. 예컨대 입원 진료에서 3조9000억원, 환자 간병 1조2000억원, 틀니 4000억원, 치석 제거 1조1000억원 등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1월13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나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무상의료 방안을 시행할 경우 추가 비용 30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추산 금액(8조1000억원)의 3.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경우, 국가가 매년 5조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해도 나머지 25조원을 조달하려면 의료보험료를 지금보다 두 배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맞불을 놓은 셈이다.
무상의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도 민주당이 추가 재원을 너무 낮게 잡은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한다. 예컨대 틀니 치료를 급여 항목에 포함시킬 경우 3조원 정도의 재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민주당은 4000억원으로 평가했다는 식이다. 진보 정당들이 추산한 무상의료 추가 재원은 12조~12조5000억원,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은 12조~15조원으로 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30조원에는 모두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뉴시스 무상의료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들은 민주당의 8조원 재원이 너무 낮은 게 사실이지만, 한나라당이 잡은 30조원은 더욱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
한나라당(보건복지부)의 추가 재원 계산법은 사실 매우 간단하고 명쾌하다. 예컨대 텔레비전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많아지듯, 의료에서도 환자가 낼 돈이 적어지면서 의료 이용량이 폭증하리라는 것이다. 한 번 갈 병원에 두 번 가고, 열흘 입원할 병으로 스무 날 입원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환자들은 MRI나 CT 같은 값비싼 검사, 엄청나게 고가인 로봇 수술 등 새로운 진료 기술과 신약을 마구잡이로 내놓으라며 떼를 쓸지도 모른다. 병원 측 또한 치료를 해주면 해줄수록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진료비를 더 받아낼 수 있으므로, 이 같은 의료 폭증을 반길 것이라는 계산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가정에 기반한 미국 모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의료비 부담이 1% 줄 때 의료 수요는 1.5% 늘어난다. 민주당 방식에 따라, 본인부담률이 약 30% 포인트(40%에서 10%로) 줄면 의료 수요는 얼마나 늘어날까.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보건복지부는 추가 재원 30조원을 산출한 것이다.
의료복지 운동단체들은 이런 한나라당과 보건복지부의 추산이 '무상의료 이슈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억지'라고 반응한다. 이상구 사무처장은 "한나라당의 30조원은 그야말로 완벽한 포퓰리즘 의료가 이뤄지는 상황을 무리하게 가정해서 악의적으로 부풀린 것이다"라고 말한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방안에는 의료 수요를 억제하는 개혁 조치들이 삽입되어 있다. 한나라당의 추계는 이런 개혁의 예상효과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당은 진료비 지불 방식을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사의 진료 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겨,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진료비를 지급한다. 병원 처지에서는 진료 행위를 많이 할수록 돈을 벌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불필요한 치료나 과잉 진료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에 비해 포괄수가제는, 건강보험공단이 특정한 질병에 대해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다. 아무리 많이 진료 행위를 해도 수익을 올릴 수 없으므로, 과잉 진료를 막고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도 일정한 선에서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민주당이 내놓은 '지역별 병상총량제' 역시 의료기관의 과잉 진료를 억제하기 위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의료기관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병상을 급격히 늘렸다. 이는 가급적 많은 환자를 입원시켜야 병원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상 수를 제한하는 병상총량제로 무리한 입원 치료를 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특히 서울 지역 대형 병원으로 전국의 환자들이 몰려 지방 병원들이 고사하는 상황에서 지역 간 의료기관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기대 효과다.
한편 민주당은 '의료계의 검찰'로 불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기능을 대폭 강화해 건강보험 재정이 엉뚱한 곳으로 새는 일을 차단한다는 구상이다. 심평원은 병원이 적절한 진료비를 청구했는지 확인해서 부적절한 치료나 과잉 진료를 막는 준정부기관이다. 이 외에도 △주치의 제도 도입 △공공의료 강화 등의 '지출 구조 합리화' 정책이 준비되어 있다.
민주 "포괄수가제, 병상총량제가 해법"
의료복지 운동가들은 본인부담률이 낮아질 경우 외래 진료가 일정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외래 진료 부문의 본인부담률은 민주당 방안에서도 30~40%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입원의 경우는 다르다. 건강한 시민이 돈이 얼마 안 든다고 일부러 입원하는 경우는 그리 자연스럽지 않고, 더욱이 심평원이 강화되면 부정한 입원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 처지에서도 입원하면 수입을 잃게 된다. 물론 입원 환자에게 상병 수당(입원으로 상실한 수입을 건강보험 재원으로 보상)이 충분하다면 '가짜 환자'가 많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주당은 '건강보험 지출 증가 추계'에서 상병 수당은 제외하고 있다.
이상구 사무처장은 한나라당이 혹시 현재 비급여 항목인 고가의 신기술과 신약이 모두 급여화된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추가 재원을 30조원까지 부풀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예컨대 신기술인 로봇(다빈치) 수술의 경우, 일반 수술에 비해 10~100배의 비용이 든다. 로봇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정말 엄청나게 늘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다빈치를 사용해야 하는 종류의 수술은 많지 않으며 오히려 일반 수술이 나은 경우가 많다고 이상구 사무처장은 지적한다. 무상의료가 로봇 수술 같은 고가의 비급여 항목을 모두 급여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우수하고 비용 우위가 있는 의료 기술과 약품만 급여화해서 불필요한 과잉 진료를 강력히 통제하는 것이 무상의료의 목표다. 한나라당이 이런 부문까지 모두 계산해서 추가 재원을 30조원으로 부풀렸다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라고 이상구 사무처장은 말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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