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등

이광재 안희정

참도 2011. 1. 30. 12:27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좌(左)희정 우(右)광재.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생 동지’라 불렀던 참모는 단 두 명이었다.

 안희정(47·사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46) 전 강원도지사. 이들은 변방의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안 지사에게 노무현 정부 5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대선자금 문제로 감옥에 가야 했다. 이후 그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통해 충남 도백에 당선되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26일 오후 충남도청 도지사실에서 두 시간 동안 그를 만났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중앙일간지와 가진 첫 인터뷰였다.

 인터뷰 다음 날, 안 지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이광재 전 지사는 대법원 판결로 강원도지사직을 떠났다.

JP 역사도 모두 계승하고 가겠다

-도지사 해보니 어떤가.
“재미있다고 할까, 공익근무죠(웃음). 집행업무를 하다 보니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야당 도지사로서 어려움은 없나.
“ 우리 사회가 누구 밉다고 골탕 먹이는 수준은 이제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도지사가 된 뒤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게 있다. 바로 계승이다.

절대로 과거와의 싸움을 통해 미래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미래는 미래를 위해 싸울 때 만들어진다.

과거는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재정립과 기록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종필(JP) 총재는 물론 심대평·이완구 전 지사가

이끌어왔던 충남의 역사, 그 역사의 축적을 모두 안고 갈 생각이다.”

-계승을 강조하면 변화를 선택한 지지자들이 낯설어할 수도 있을 텐데.
“전임자를 뽑은 도민과 나를 찍은 도민이 다르지 않다. 진보의 국민 따로 있고 보수의 국민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도민은, 국민은 하나다.

 모두 한 핏줄이다. 시대적 정신과 요구에 따라 결정을 다르게 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며 명심했던 게 있다.

 지나간 과거를 부정하고 전임자를 밟으며 현재와 미래를 세워선 안 된다고. 그분들은 그 시대 도민들의 합의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였다.

그때의 결정 또한 도민의 민심으로 존중돼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도민이 합의했던 정신은 계승해 나가겠다, 이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도지사로서 체감하는 지방자치의 현실은.
“지방자치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임명직 관선 도지사에서 선출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현재 시·도가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가용예산은

 전체의 7~8%밖에 안 된다. 8%짜리 지방자치인 셈이다. 중앙정부가 많은 업무를 내려놓아야 한다. 20세기까지는 중앙정부라는

호스트 컴퓨터의 용량을 키우는 데 집중했지만 21세기는 병렬형 인터넷망이 더 효율적인 시대다.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헌법도 바뀌어야 한다. 3권 분립 못지않게 지방분권국가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

20세기 적자생존 철학, 이젠 안 통해

-진보·보수의 대립과 반목이 심각하다.
“ 대한민국 국민이 20세기까지 지녔던 미움과 불신을 이젠 뛰어넘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 진영은 식민지와 쿠데타 역사를

 합리화하면 안 된다. 식민지 역사는 잘못된 거다. 왜 잘못됐느냐. 일본 사람이 미워서? 아니다. 폭력이기 때문에 잘못된 거다.

 일본을 거부하자는 게 아니라 폭력의 역사를 거부하자는 거다. 쿠데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구국의 결단이라도 법에 엄연히 대통령

되는 절차가 있는데 총칼 들고 대통령 되면 되겠나. 20세기엔 성공하면 영웅, 실패하면 역적이란 이분법으로 성공하는 모든 폭력을 미화했다. 이젠 이런 20세기식 관점을 극복하자는 거다.”

-진보 진영도 극복할 게 많지 않나.
“맞다. 성공한 사람에 대한 마음의 갈등을 털어내야 한다. 강자의 역사를 기회주의 역사로 등치시켜 성공한 사람을 모두 이분법적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 제국주의 투쟁, 자본과 노동계급의 갈등, 이런 관점으론 더 이상 21세기를 해석할 수 없다.

 이제 진보·보수의 차원에서 빚어진 갈등은 극복할 때가 됐다.”

-평소 소통과 통합을 강조했는데.
“네 얘기 한번 들어봐 줄게, 그런 게 소통은 아니다. 자기 것 관철하려고 만나는 게 대화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지금 20세기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있다. 밀어붙이기식 추진력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믿음, 강한 자가 살아남고 살아남는 게 정의라는 적자생존의

철학 말이다. 사실 국가도 기업도, 심지어 우리 개인의 인생도 이 믿음에 근거해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충남도민이 저를 선택한 의미도 ‘20세기를 잘 이어받되 전혀 다른 21세기를 만들어가라’는 것 아니겠나. 대한민국의 요구도 다르지 않을 거다. 6·25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들의 역사도, 좌우 대립의 와중에 희생된 친척들의 역사도 모두 이어받아라.

 좌우의 칸막이로 몰지 말고 하나로 통합해내라. 이게 시대적 요구 아니겠나.”

-안 지사의 개인적 소신은 있지 않나.
“물론 저의 정치적 소신과 견해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걸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길밖에 없다.  정치인이 소신을 버리고 회색주의자가 되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각자 소신대로 개성 있게 활동하는 게 국민이익에 부합하는 길이다.

하지만 서로 싸우기만 하면서 누가 옳으니 그르니 늘 판단을 요구하면 국민은 괴롭다. 부모가 한 형제만 손들어주진 않지 않나.

물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툼이 없을 순 없다. 그 다툼을 하라고 있는 게 정치다. 다만 선거 때면 경쟁하다가도 선거가 끝나면

 대화와 타협의 정신으로 가야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경쟁과 협력이 하나의 길 위에서 조화롭게 반복돼야 한다.”

노무현 당선, 당시엔 실감 못했다

-옛날 얘기 좀 하자. 38세에 모시던 분이 대통령이 됐는데 그때 심정이 어땠나.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당시엔 우리가 이뤄낸 일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큰 사건인지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후 5년 내내 체감하게 되더라.

 그 당시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우승의 트로피를 지닌 채 링을 떠날 수 있을까’.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밖에 서서

‘또 붙어라, 또 붙어라’ 그랬다. 그런 사회적 상황을 임기 마지막까지 지켜봐야 했다.”

-노무현 정부가 동서화합을 외쳤지만 되레 편가르기 갈등만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적잖다.
“(정색하며) 참여정부 때 고소영 내각이 있었나. 어떤 코드 인사가 있었나. 특정 고교나 지역 인맥이 있었나.

 있었다면 왜 이장 출신 장관을 시키느냐, 왜 갑자기 여성 인권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앉혀 검사님들 심기를 불편하게 하느냐, 이거거든요. 이걸 코드인사라고 비난했다. 제가 볼 때 그건 정당한 비난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미움은 정신을 황폐화시킨다고 했던가.

미국에 위대한 대통령이 많은 이유는 무결점 대통령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즉석에서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 “15년 전인가, 할리우드의 모든 연예인이 모여 프랭크 시내트라 팔순 기념 콘서트를

여는 걸 본 적이 있다. 앤드 나우~ 시내트라가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 시기심 많고 경쟁 심한 할리우드 판에서

한 사람을 미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만들다니. 시내트라도 왜 흠잡을 데가 없었겠나. 더 이상 과거와 싸우지 말자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아들 부시가 왜 이라크 전쟁을 했지? 왜 허위사실을 공표했지?

야, 청문회 열어!’ 했으면 어떻게 됐겠나. 그게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덮은 거다. 특별한 법률적 하자가 없으면 넘어가는 거다. 우리 모두 완전한 신일 수는 없지 않나. 20세기는 이쯤 해서 정리하고 가자는 거다.”

-지금의 민주당은 어떻게 보나.
“한국의 정당은 21세기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인물로 재편돼야 한다. 민주당도 민주진영의 맏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혁신의 노력이 절실하다.”

-무상급식 논쟁이 뜨거운데.
“단어 꼬투리 잡는 식으로는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헌법적 취지에 따라 현재 수업료만 면제하는 초보적 단계에서 의무급식까지 확대해 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를 놓고  토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재는 공격수, 나는 스위퍼

-오늘 아침 서울에서 이 지사를 만나고 왔는데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에게 안부를 꼭 전해달라’고 하더라.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끄덕)….”

-이 지사는 안 지사에게 어떤 존재인가.
“광재요? 아주 얄미운 놈이다. (웃음) 내가 갖지 못한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는 친구다. 가끔 생각하면 얄미워 죽겠다.

그런데 광재는 어떤 경우라도 좌절하는 법이 없다. 늘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자기를 고집하면 무거운 자기 때문에 꺾여버리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많은 정보와 사람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엮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만한 탤런트를 갖고 있는 친구를 못 봤다.”

-둘을 서로 비교한다면.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꾸리면서 서로가 다름으로 인해 조금 불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가 무언으로 합의한 건

노무현 대통령을 날도록 만드는 좌우의 날개 역할은 확실히 할 수 있겠다는 거였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이 그리 달랐나.
“한마디로 그는 공격수고 나는 스위퍼였다.”

-노 전 대통령은 안 지사에게 어떤 존재였나.
“나랑 너무 똑같다, 하하. (손뼉을 치면서) 맞아 맞아, 저래서 내가 대통령을 좋아하지 싶은 대목이 너무 많았다.”

-감옥에 갔을 때 억울하진 않았나.
“억울한 생각은 별로 못해 봤다. 나로서는 내가 맡고 있는 이 배역을 무난히 잘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홈페이지를 보면 당시 강금원 회장이 면회 가서 펑펑 우는데 안 지사는 끝까지 웃고 있더라. 앞에서 사람이 우는데 어떻게 웃나.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맞다. 그래도 많은 분이 제게 기회를 주신 덕분에 그 지나간 시절을 과거의 시간으로 추억할 수 있어서,

 좀 더 그 문제를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정치인 안희정의 꿈이 있다면.
“대한민국 역사에서 민주주의 토대 완성에 기여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게 목표다.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도지사 재선에 도전할 건가.
“재선요? 시켜줘야죠(웃음). 벌여놓은 사업이 많은데 단기간에 끝날 게 아니어서 여기에 쭉 매진해볼 생각이다.”

27일 오후 이 전 지사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뒤 안 지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나서 당당하게 살아남자. 이게 지금 내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의 전부다”고 했다. 또 한번의 침묵 후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약자에게 더 관대하고 강자에게 더 엄격해야 세상이 공정한 것 아니냐. 성경에 나온 대로 강한 자 바르게, 약한 자 힘주는 게 정의 아니냐.

아쉽고…, 안타깝다. 영 힘들다.”
10여 분 뒤 이 전 지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애써 담담한 목소리였다. “방금 희정이랑 통화했다”며 “걱정하지 마라. 나는 괜찮다”고 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될 것인가.

대전=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