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 해운 3년만에 성장

참도 2020. 7. 29. 09:25

한진잃고 가라앉던 한국해운, 3년만에 유럽바다 손에 쥐다

세종=김훈남 기자 입력 2020.07.29. 05:00 댓글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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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 돈 해운재건①]모럴해저드 논란 속 사라진 세계 7위 한진 , 선복량 '5위→12위→8위' 파고넘은 한국해운

0. Prologue

"저에게 시간을 주시면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

국회의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청문회가 열린 2016년 9월 9일.

증인석에 선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시간을 달라"고 되풀이했다.

 

국내 1위 해운사 한진해운을 법정관리까지 몰아넣은 경위를 추궁하고, 책임감 있는 대안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최 전 회장은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지만 역효과만 났다.

사재출연이라는 명확한 요구에 대한 대답은 모호했다.

 

전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무능만 부각된 청문회가 끝나자 싸늘한 여론만 남았다.

이어진 법정관리 중단과 함께 당시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허무하게 문을 닫았다.

 

 2016년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청문회에서 눈물을 보였다.

/사진=홍봉진 기자

 

1. 반토막

파산 직전 한진해운이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량, 즉 선복량은 61만6764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분).

한국의 전체 선복량은 105만2287TEU였다.

한순간에 해운 물동량 절반을 넘게 차지했던 1위 국적해운사가 없어졌다.

 

SM상선이 한진해운 일부 영업자산을 인수했지만

2017년 5월 국내 해운업계 선복량은 50만1223TEU로 반토막났다.

숫자가 저 정도니 현장은 지옥이었다.

 

화물 운송 계약이 오가는 현장에선 "한국 정부가 한진해운을 버렸다"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남아있는 현대상선(현 HMM)에 대해서도

"변수가 생기면 언제든 정부 지원을 끊을 수 있다"는 음해성 루머가 떠돌았다.

 

보고서 속 숫자가 반토막났을 뿐 현장에서 일감은 바닥을 드러냈다.

당시를 기억하는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바다 한복판에 짐이 멈출수 있다는 불안감이 나왔다"며

 

"컨테이너선에 실어놓은 짐마저 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출이 경제 기반인 나라에서 해운산업 전체가 고사직전까지 위기에 몰렸다.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공약으로 해운재건을 채택하며,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마련됐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2. 해운재건 5개년 계획

촛불로 겨울을 보내고 장미대선을 치른 2017년. 해운업계에도 새 바람이 불었다.

그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 국정 계획에 해운재건이 들어가면서다.

32조원까지 떨어졌던 해운업계 매출을 임기 말인 2022년까지 50조원,

 

2008년 금융위기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구상이다.

한진해운이 공중분해된 이후 필요성만 언급되던 정부 주도 해운재건 계획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공식화된 것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그렇게 될 줄 몰랐습니까?"

새 정부 출범 이후 해양수산부의 첫 업무보고. 문재인 대통령의 첫 질문은 한진해운이었다.

말투에 감정을 섞지 않는 게 평소 대통령의 스타일이었지만,

 

분명히 질문이라기보단 질책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업무보고에 참석한 해수부 관계자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해수부엔 곧바로 해운재건 로드맵 작성과제가 떨어졌다.

 

한진해운 사례를 분석하고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는 주문이었다.

해수부의 핵심아이템은 현대상선에 2만4000TEU급 초대형선 12척과

1만6000TEU급 8척 등 대형선 20척을 투입하는 방안이었다.

 

우리 해운업계 재무구조가 악화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해운업 호황기 시절 비싼 값에 배를 빌려서 물자를 실어날랐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악화로 물동량은 줄었는데, 용선료는 비싼 상태 그대로였으니

 

영업을 하면 적자만 불어나는 구조를 바꿔야했다.

"안 그래도 안좋은 현대상선에 왜 배를 사줘야 하지?"

시작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구조조정은 기업이 계속 운영할 가치가 있는 지 확인되면

불필요한 자산을 처분하고 비효율 요소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부실기업이던 현대상선에 배값만 3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하자는 제안이니

 

예산 및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반대가 나올 법도 했다.

경쟁사인 머스크와 MSC는 후에 초대형선 발주를 두고 "미친 짓"이라고 힐난했다.

더군다나 조단위 혈세가 들어갔던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 성동조선 등

 

바다 위 부실기업은 잇따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다=밑빠진 독'이라는 인식이 강해 여론마저 등을 돌린 상황.

대형선 발주 과정에서 금융보증을 담당해야하는 해양진흥공사 설립도 쉽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산지역 공약사항임에도 해운 산업 1개 분야에 포트폴리오가 몰렸던 탓에

리스크 관리 문제가 늘따라 다녔다.

3. 그냥 죽나, 해보고 죽나

 

"그러면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2008년 이후 해운 물동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대형선을 투입했다가

배를 못 채우면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에 대한 해수부 담당자의 답이다.

 

글로벌 경쟁 해운사는 대형선을 앞세워 화물을 독식하고 있는 게 해운시장의 현실이다.

대형선은 단순히 덩치를 키우는 게 아니라 세계 바다에서 경쟁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자,

신뢰회복을 위한 첫 단추였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없어지다시피 한 유럽 항로를 복원하기 위해서도 대형선은 필수였다.

현대상선은 4000TEU급 컨테이너선으로 유럽항로를 운항했는데,

유럽영업망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에 불과했다.

 

경쟁사가 1만5000TEU급 대형선으로 화물을 날랐으니 현대상선은 배를 움직일 때마다 적자가 났다.

다행인 점은 대통령 공약사항이자 국정계획에 포함된 덕에 해운재건 작업에 동력이 충분했다는 점이다.

한진해운 사태가 다시 나와선 안된다는 경험적 교훈도 관가 안팎에 자리잡고 있었다.

 

2018년 4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모습을 드러내고 계획에 따라 해양진흥공사가 설립됐다.

그리고 그해 9월 해양진흥공사가 후순위 채권을 맡는 조건으로 현대상선의 초대형선 발주가 들어갔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건조중인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 선 HMM 헬싱키호 / 사진=김훈남

4. 해운재건 원년에 덮친 초대형 악재…오히려 기회가

 

2020년은 해수부나 현대상선에 중요한 해였다.

14개월 건조기간동안 만든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항로에 투입해, 분기단위로 흑자전환을 노렸다.

초대형선 투입에 맞춰 세계 3대 해운동맹 중 하나인 디얼라이언스 정식회원 자격도 얻어냈고

사명도 세계 무대에 통용되도록 HMM으로 바꿨다.

 

그야말로 '해운재건 원년'을 만들겠다는 구상은 한달만에 벽에 부딪혔다.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19(COVID-19)가 전 세계로 번졌다.

세계 각국은 육해공 모든 문을 걸어닫고 전염병 확산을 막는데 급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비교할 만큼 물동량이 뚝 떨어졌다.

줄줄이 2만4000TEU급 초대형선이 투입 예정인 현대상선과 해수부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기에 맞지 않게 덩치를 키운 게 독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안팎에서 나왔다.

 

우려 속에 2020년 4월 말 2만4000TEU급 1호선인 HMM알헤시라스호가 바다로 향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1만9621TEU분량 화물을 실었다.

MSC가 보유하고 있던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기분좋은 출발을 알렸다.

 

2호선 오슬로호도 컨테이너 1만9504개를 실고 가는 등 6호선까지 만선 기록을 이어갔다.

한 관계자는 "상징적 의미가 있던 만큼 어떻게든 1·2호선은 화물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선행렬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첫 항해 중국 기항지에서 '선왕'(船王)이라는 별칭을 얻은 알헤시라스호는 7월 26일 부산항에 금의환향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화물을 가득 채우는 진기록을 세웠다.

"2만4000TEU짜리 배로 유럽항로를 가는 비용이나 1만5000TEU급 짜리 배로 가는 비용이나 큰 차이가 없어요.

 

화주나 얼라이언스 회원사 입장에선 어느 배를 쓰겠어요?"

해수부와 HMM 측은 예상 밖 선전의 원인을 고효율에서 찾았다.

친환경 설비에 고효율 기술을 담은 대형선이 아시아-유럽 항로의 주류였던 1만5000TEU 선박을 압도했다고 한다.

 

2008년 이후 물동량 감소 학습효과가 있던 해운업계는 컨테이너선 운항을 줄여 운임을 방어했다.

최악의 경영환경에서 결과적으로 그 수혜는 HMM이 가장 많이 가져왔다.

5. Epilogue

 

2020년 우리나라 해운업계의 선복량은 46만2408TEU, 세계 9위 수준이다.

HMM에 2만4000TEU급 초대형선 인도가 완료되는 올해 10월 시점에는 78만4859TEU,

나머지 1만6000TEU급 8척이 완성되는 2021년 7월에는 90만4859TEU로 늘어난다.

 

한진해운 파산 직전에 거의 근접한 수치다.

현재 세계 해운업계 순위 10위권인 HMM도 대형선 20척 인도가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세계 8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갖은 악재 속에서 이뤄낸 재건 성과라는 게 해수부와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본 적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항해해야 한다는 도전과제가 남았다.

절반을 성공적으로 지나온 해운재건 나머지 성적표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해운업의 위치도 달라질 전망이다.

세종=김훈남 기자 hoo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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