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왜 용인에 반도체 단지를 짓나…'리쇼어링' 선결조건
서울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차로 40분 남짓 달리면 도착하는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지금은 전원주택 수 백 여채와 농지가 전부인 이곳에 이르면 2024년 SK그룹의 반도체 클러스터 첫 생산라인이 가동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종합 반도체기업'을 향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오랜 꿈을 실현하는 프로젝트다.
SK하이닉스는 이 일대 448만㎡ 부지에 2022년부터 10년간 무려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 4기를 건설할 방침이다.
국내외 소재·장비·부품 협력사 50개사 이상이 이곳에 함께 입주한다.
클러스터 조성 계획안이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통과됐을 때 만해도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의 첫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점이 부각됐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선 이곳을 주목하는 관점 자체가 달랐다.
SK그룹이 새로운 반도체 단지로 왜 해외가 아닌 한국을 선택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용인 클러스터 조성안은 똑 떨어지는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한 기업을 자국으로 돌아오도록 유도) 정책
성과로 보긴 어렵지만 해외로 진출한 대기업 공장을 국내로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SK그룹이 국내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결정한 데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가 핵심 역할을 했다.
여기에 기존 설비와의 시너지 효과, 우수 인재 확보, 기술 보안 등까지 고려하면 한국 수도권을 대체할 곳은 없다는 게 SK의 논리다.
SUPER SUV, 트래버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회원사 244개사 중 85%가 서울·경기권에 집중해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경기 남부는 이미 기업과 인재가 대거 몰려 있어 거대한 반도체 클러스터라고 할 수 있다"며
"시장 접근성이나 비용 문제를 지우고 보면 전 세계에서 이만큼 좋은 입지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 반도체산업은 2000년대 들어서며 앞다퉈 중국으로 진출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이다.
화웨이를 필두로 한 중국의 거대한 시장성과 비용 최소화가 중국 진출의 가장 큰 이유였다.
삼성전자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기준 30%를 넘는다.
SK하이닉스도 중국에 매출의 40% 정도를 의존한다.
결과론이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SK의 이런 판단은 적중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전역이 봉쇄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붕괴라는 악몽을 겪었다.
SK와 삼성도 중국 공장 정상가동에 적잖은 애를 먹었다.
양사 모두 중국 정부와의 오랜 협의 끝에 최근 특별기를 동원해 시설 점검을 위한 엔지니어를 보내는 홍역을 치렀다.
반도체산업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현대차가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월 국내 모든 생산라인을 멈춰 세운 적도 있다.
중국에서 '와이어링 하니스'를 생산하는 협력사 공장이 가동 중단되면서 완성차 공장까지 올스톱 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업구도에서는 더이상 시장 접근성과 비용 최소화 전략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불확실한 비용 최소화보다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생산 전략이 우선 고려사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 팀장은 "지금까지 리쇼어링은 주로 정부 주도의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논의됐지만
앞으로의 리쇼어링은 기업도 생산·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할만한 여건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 연구원은 "기존에는 비용 절감이 생산 후보지 결정에 우선 고려됐다면
이제는 환경과 안전성, 국가 리스크 등 다양한 요인들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급경제대책의 하나로 정부 차원에서 공급망 재구축 정책을 지난달 5일 발표했다.
중국 내 자국 기업들의 공장을 일본으로 되돌리는 유턴 기업을 대상으로 이전 비용의 3분의 2까지 정부가 대주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용인 클러스터 조성으로 앞으로 10년 동안 신규 일자리 1만7000개와 약 188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규제 완화까지 고려하는 세금·규제 해결 종합 패키지로 대·중소기업의 동반 회귀를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한시법인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하고,
국가 위기 상황에 한해 수도권 입지 규제 등을 해소하거나 연구개발(R&D) 자금을 우선 지원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특례규정도 추가했다.
이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됐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대기업을 국내로 돌아오게 하려면 대기업에도 파격적인 정책 수혜를 제시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이후 경제 새 판 짜기에서 기업 유턴을 적극 지원한다면 직접투자 순유출액도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믿었던 투자가 3년만에 부메랑으로"…LGD 中광저우 딜레마
"유일한 돌파구라 믿고 추진했던 중국 공장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국경이 봉쇄되자 LG디스플레 한 임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중국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 가동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LG디스플레이의
사활이 걸린 OLED 사업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호소였다.
또 다른 임원은 "코로나19 책임공방을 빌미로 미중 무역갈등이 재점화할 조짐까지 보여서 더 걱정"이라며
"중국 현지공장이 볼모 아닌 볼모가 됐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의 이 사례는 대기업의 글로벌 거점 생산 전략이 꼭 최선책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특히 지난 십 수 년간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으로 군림해온 중국이 최근 여러 이유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더이상 쉽게 볼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 당시엔 묘책 넘어 당위론…"믿고 투자한 중국"
LG디스플레이가 중국 광저우 OLED 공장을 추진한 것은 지난 2017년. 당시는 회사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LCD(액정표시장치)시장의 주도권이 이미 중국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OLED 전환 타이밍을 놓쳤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OLED를 개발해놓고도 LCD 1위 실적에만 도취해 정작 OLED 생산라인 투자는 때를 놓쳤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로선 내부적으로 이 지적을 받아들여 더 다급하게 광저우 공장 건설에 매달렸다.
광저우에 공장을 짓기로 한 데는 투자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총 5조원의 투자비 중 3분의 2를 중국 정부의 출자금과 현지차입으로 충당하면 초기 비용을 1조8000억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당시 국내외에서 2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동시다발적으로 단행해야 했던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선
이 정도 비용 절감을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광저우 프로젝트는 '묘책'을 넘어 '필연'이라는 인식이 깔렸다.
한상범 당시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2017년 9월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대안은 없다"고 배수의 진을 치기도 했다.
◆"약이 독 됐다"…내부서도 한숨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런 '필연론'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반(反)화웨이 사태'로 구체화 됐고,
양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편 가르기에 나서며 상황은 묘하게 돌아갔다.
급기야 올 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광저우 공장에게는 또 하나의 시련이 됐다.
중국이 국경 빗장을 걸어 잠그며 LG디스플레이는 설비를 점검할 엔지니어를 보내지 못해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가동하려던 계획이 벌써 반년 가까이 미뤄진 상황에서 중국의 '입국제한'이라는 변수가 터지자
LG디스플레이 경영진 사이에선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건지 모른다"는 자조까지 들렸다.
현재 추진 일정 상 광저우 공장은 올 2분기 중 공장 테스트를 마치고 3분기에는 본격 양산을 시작하는 수순이 유력하다.
이는 당초 일정보다 1년 가까이 지연되는 것이다.
◆"산업구조 개편 기회"…해외진출 전략 재검토해야
광저우 공장 가동 지연으로 입는 피해를 당장 집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OLED 사업 전략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타격이 크다.
올 1분기까지 5분기째 영업적자에 시달리는 LG디스플레이의 흑자전환 시기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코로나19 책임공방으로 재점화 조짐을 보이는 미중 무역전쟁 여파에 따라 앞으로 유·무형의 비용 소요도 적잖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법인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상황 파악과 대응 비용이 국내보다 갑절 이상 들어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과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중국은 물론 중국 경제에 의존하는
한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중국 진출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장 접근성과 낮은 생산비용을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해온 해외 진출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 위기를 전방위적이고 구조적인 국내 산업 재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코로나가 韓배터리 유턴 촉발?..'구미형 일자리' 대안 거론
"고객사의 요구로 해외 진출을 해야 하지만 해외에서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전기차 시장을 잡기 위해 한국 배터리(2차전지) 업체들이 앞다퉈 글로벌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현지 돌발 악재가 끊이지 않으며 국내 업체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때문에 배터리 업체들을 한국으로 돌려 세울 '구미형 일자리' 같은 파격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中 텃세에 코로나까지..글로벌 투자 '첩첩산중'
중국의 경우 전 세계 전기차의 50% 이상이 생산돼 한국 배터리 업체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전략지다.
2016년 한국산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는데도 LG화학 (353,000원 1000 -0.3%)과 삼성SDI (285,500원 3000 1.1%),
SK이노베이션 (99,200원 500 0.5%)이 현지 공장에 계속 투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한국 배터리 3사를 보조금 지급에서 제외하면서 CATL·BYD(비야디) 같은
자국 배터리 업체를 육성해왔다"며 "그런데도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의 성장성을 무시 못해
불이익을 감수하며 투자를 계속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중국에서 살아남아야 대규모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중국 투자를 강행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코로나19(COVID-19)가 확산되며 중국은 물론 미국, 유럽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치명타를 맞고 있다.
현지 공장의 셧다운(일시 가동중단)으로 공급 부족이 생기는가 하면 내연 자동차의 각종 환경규제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결국 해외 진출에 이미 수 조 원대 투자를 단행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해외진출이 꼭 장밋빛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리쇼어링 필요성 절실…투자 촉진형 일자리도 주목
재계에선 이런 이유로 배터리 업계의 '리쇼어링(Re-Shoring·기업의 모국 복귀)'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전기차 내수 확대를 위한 파격적인 보조금 혜택과 각종 규제 해소, ESS(에너지 저장장치) 시장 성장 등이
배터리업체 리쇼어링의 선결 과제로 해결되면 못할 것도 없다는 진단이다.
일각에선 LG화학이 추진 중인 '구미형 일자리 투자'를 리쇼어링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LG화학은 2024년까지 경북 구미에 50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양극재는 배터리 생산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LG화학은 당초 폴란드에서 양극재 공장을 추가 증설할 방침이었지만 경북도와 구미시가
세금 감면과 부지 제공 같은 파격 혜택을 제시하자 방향을 틀었다.
재계 관계자는 "구미형 일자리는 기업이 100% 투자하는 투자촉진형 일자리 모델로,
경북도와 구미시가 공장 운영을 위한 전폭적 지원에 나서며 해외로 나가지 않게 된 성공 사례"라고 강조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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