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퇴사하면 실업급여(구직급여) 못 받을 텐데 받게 해드릴까요?
대신 퇴직금은 안 드리는 걸로….”
지난해 부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3년가량 근무한 뒤 퇴사하는 교사에게 원장은 은밀한 거래를 제안했다.
이직 사유를 자발적 퇴사가 아니라 해고된 것으로 해줄 테니 거래를 하자는 것.
이 교사는 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퇴직금 600만원 정도를 포기하는 대신 5개월간
총 1100만원가량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며 실업급여 혜택을 대폭 늘리자 수급자의 모럴해저드가 만연하고 있다.
고용보험 가입 문턱을 낮추고 실업기간 지원금을 올렸지만 부정수급에 대비한 안전장치 마련에는
소홀해 정부 정책이 실업기간을 되레 늘리는 등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정수급 건수는 줄고 금액은 늘어
6일 고용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임이자 의원(자유한국당)에게 제출한
‘2019년 실업급여 부정수급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부정수급 건수는 2만2015건으로
전년(2만5581건)에 비해 3566건(14%) 줄었다.
하지만 부정수급액은 198억1500만원으로 전년(196억2100만원)보다 증가했다.
정부는 2018년 7월 아르바이트 청년 등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요건으로 고용보험
가입을 내걸면서 고용보험 가입자 수를 크게 늘려왔다.
고용보험 가입자는 지난해에만 51만 명이 늘어 12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10월 실업급여 지급액을 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올리고
상한액을 하루 6만6000원(월 198만원), 하한액을 6만120원(월 180만3600원)으로 정했다.
수급요건만 갖추면 최소 4개월간 최저임금(올해 기준 월 179만5310원)보다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가령 월평균 200만원을 받으며 1년 근무한 30대 근로자라면
실직 후 최대 5개월(150일)간 총 900만원가량을 받게 된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이 근로자가 낸 고용보험료는 한 달 1만6000원으로, 총 19만2000원이다.
수익률로만 따지면 최고의 보험상품인 셈이다
정부가 부정수급 처벌을 강화했지만 속수무책이다.
정부는 부정수급을 가려내기 위해 고용보험 전산망은 물론 국민연금
‘뛰는 단속 위에 나는 불법’인 경우가 많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가 공모해 이직 사유를 거짓 신고하거나 고용보험 취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행정시스템으로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주로 주변 제보로 확인되는 사례가 많은데 이런 경우 선처 없이 엄중처벌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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