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지구 재건축조합 이사회.
조합장 월급을 기존 500만원에서 550만원으로 10% 인상한다는 안건이 올라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조합원 사이에선 총회 안건으로 상정되기 전 이사회 단계에서 안건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일부 조합원은 이사회장에 들어가 반대 의견을 내다 조합 집행부와 시비가 붙었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조합원 A씨는 "조합장은 월급에 상여금과 판공비를 포함하면 연간 1억원 이상을 쓰는데,
뭐가 부족해서 월급 10%를 더 올린다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조합 측이 셀프 급여인상 안건을 단독 안건이 아닌 조합운영비 운영심의에 슬그머니 끼워 넣어
날치기로 통과시키려 해 조합원들이 반발한 것"이라고 했다.
◇억대 수입에 수십억 성과급… 지방선거 못지않은 조합장 선거戰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주요 재건축 조합장은 5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연봉 6000만원 수준이다.
통상 상여금을 받고 판공비 수천만원을 별도로 쓰기 때문에 실제 수입은 연 1억원을 넘는 경우도 많다.
과천주공7-1단지 재건축조합장의 월급은 1000만원이다. 연봉만 1억2000만원이다.
성과급이 엄청난 경우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신반포1차 재건축(아크로리버파크)이다.
신반포1차 조합은 조합장 한형기(62)씨를 포함해 집행부 10명이 총 130억원가량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과급 지급이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일부 조합원이 소송을 걸어 입주 이후 3년이 넘도록 아직 성과급이 집행되지는 않았다.
사건은 대법원에 걸려있고, 1·2심은 조합 측 손을 들어줬다.
조합은 지난 2013년 사업 손실이 발생하면 조합장 등 집행부가 일부 배상하고,
반대로 추가 이익이 발생하면 집행부가 이익금의 20%를 인센티브로 받는다는 안건을 총회에서 통과시켰다.
배수의 진을 친 조합 집행부는 극적으로 사업을 성공 시켜 가구당 평균 약 9000만원 추가이익을 안겨줬다
. 총 130여억원 성과급이 집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조합장 선거는 정치권 지방선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다.
전직 구청장과 건설사 임원, 대학 겸임교수 등 후보자 스펙도 화려하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특별계획구역5 재건축 추진위원장 권문용(77)씨는 1995~2006년 강남구청장을 지낸 3선 지방자치단체장이다.
압구정특별계획구역3 추진위원장 윤광언(77)씨는 전직 현대건설 임원(전무)이다.
개포4단지 조합장 후보로는 2013년 김회천 한양대 건축학부 겸임교수가 출마했다.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과 전직 경찰, 군인 등도 부지기수다.
한 번 재건축을 성공시키면 ‘스타 조합장’으로 떠올라 또다른 재건축 단지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신반포1차 조합장 한형기씨는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조합원이기도 하다.
한씨는 이곳에서 ‘일반분양 통매각’을 주도했다.
최근엔 강동 올림픽선수촌, 여의도 삼부아파트,
목동6단지 등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들에 강연도 자주 나간다.
◇조합장 인기인 이유… "막대한 이권 때문"
재건축 조합장을 하면 무엇이 그리 좋길래 급여가 많지 않은 곳까지 명망가들이 서로 하려고 덤비고,
또 일부는 여러번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조합장은 조합원 뜻을 모아 사업 방향 등 각종 의사결정을 하는 조합의 대표다.
기업으로 본다면 대표이사(CEO)다.
추진위 단계부터 입주 이후 조합 청산까지 10여년 동안 수천억원 규모 재건축사업을 맡아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해소하고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과제다.
대형 건설사들은 "조합장이 갑(甲)이고 우리는 을(乙)"이라고 한다.
조합장은 감리업체, 철거업체 등 선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시공사 선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은 조합이 발주처고 건설사가 시공 입찰로 참여하다 보니 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일부 조합장은 건설사에 ‘특정 업체 타일· 수도꼭지를 쓰라’며 이권을 활용하기도 한다"며
"대단지라면 수도꼭지 하나만 납품해도 몇천개 아니냐"고 했다.
또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재건축단지일 경우 조합과 건설사의 갑을관계가 보다 크게 작용한다"며
"상징성 있는 아파트단지를 성공적으로 재건축하면 향후 수주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에 건설사가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반포주공1단지나 미성·크로바, 한남3구역 등에선 대형 건설사의 수주 혈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비업계에서는 "조합장이 누구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린다"는 말이 있다.
조합의 각종 안건은 통상 이사회 의결을 거쳐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조합장의 경우 이사회에 측근을 배치하고,
총회는 직장인 참석이 어려운 평일에 열면서 서면결의서를 대량매수하는 등 방식을 통해 제멋대로 안건을 총회에서 통과시키는 경우도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이런 조합장을 교체하기도 하지만, 비대위도 못 미덥거나
‘사소한 건 덮고 빨리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우세할 때도 적지 않다.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기다리다 사업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재건축은 조합장이 누구냐에 따라 빠른 의사결정으로 사업이 투명하게 이뤄질 수도 있고,
각종 부패 속에서 시간만 보내며 사업비만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비업계 분석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조합장의 말로가 평탄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 재건축(헬리오시티) 전 조합장 김모(60)씨는 협력업체 선정 청탁금 명목으로
브로커로부터 1억16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전 조합장 김모(55)씨도 한 정비업체로부터 용역 수주 대가로 4차례에 걸쳐
95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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