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목받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
김은지 기자 입력 2017.04.12. 14:04 댓글 855개
아버지가 살해당했다. 경찰이 범인으로 당숙을 지목했다. 당숙도 같은 날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당숙이 사용한 살인 도구였다는 칼에서는 당숙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두 시신에서 모두 수면제가 검출되었다.
경찰은 이를 유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휴대전화는 사라졌다.
통화 기록은 아예 수사 기록에 첨부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박용철)와 당숙(박용수)의
죽음에는 의혹이 많았다.
2011년 9월6일 아버지가 숨졌다. 아버지의 죽음은 ‘박근혜 5촌 살인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숨진 박용철씨의 아들 박 아무개씨는 “풀리지 않는 의혹에 대해 진실을 알고 싶다”라며
수사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12월7일 아들 박씨는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아버지의 휴대전화 통신사실 회신 내역을 달라고 요청했다.
사건 당일 아버지 행적을 파악하면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용철씨가 사건 전날인 2011년 9월5일 박용수씨, 후배 황선웅씨와 술을 마신 것으로 보았다.
황씨의 진술을 근거로 삼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스텝바에서 술을 마셨고 이어
성동구 왕십리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경찰은 수사 기록에 남겼다
술을 마셨다는 강남의 스텝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고 3년 뒤 밝혀진 사실이다.
사건 전날 술 마셨다는 술집 존재하지 않아
어떻게 된 일일까? 황선웅씨는 두 사람이 숨진 채 발견된 2011년 9월6일 서울 강북경찰서에
출석해 상세히 진술했다. “전날 저녁 7시경 스텝이라는 빠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양주인데 초록색 술로 그랜피리치(글렌피딕의 오기)라는 술과 맥주를 같이
먹었고 양주 대자 1병과 맥주 5병 정도를 거의 두 분이서 마셨다. 계산은 용철이형이 했다.
(자리를 옮겨) ××노래방에서는 윈져 대자 1병, 용철이형 차에서 로얄샬루트 대자 1병,
맥주 10병 이상을 마셨다. 계산은 용수형이 했다.
둘이 이야기한다고 다른 방에 가 있으라고 했다(경찰 수사 기록).”
황씨는 5촌 살인사건의 핵심 증인이었다.
2차 술자리인 ××노래방은 황씨의 친구가 차린 가게였다.
황씨와 박용철·박용수씨의 인연은 2007년 육영재단 폭력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폭력 사태에 관여한 조직폭력배 ‘짱구파’ 일원이었다고 알려진 황씨는 이후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서 근무했다. 그는 있지도 않는 스텝바에서 술을 마셨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더 이상 캐물을 수 없다. 황씨마저 2012년 9월 숨졌다(<시사IN> 제386호
‘아무도 몰랐던 또 한 명의 죽음’ 기사 참조). 황씨는 숨질 당시 38세였다.
박용철씨의 경호원 노릇을 할 정도로 건장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마지막 술자리를 함께했다는 세 명은 모두 숨졌다.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그래서 아들 박씨는 검찰에 아버지의 통신 기록 등사(복사)를 신청했다.
검찰은 거부했다. 거부 사유는 ‘기록의 공개로 인해 비밀로 보존해야 할 수사 방법상의
기밀이 누설되거나 불필요한 새로운 분쟁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였다.
아들 박씨는 지난 1월4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를 비롯한 유가족은 사라진 박용철씨의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박용철씨는 휴대전화가 두 대였다. 사건 당일 박용철씨 차를 운전했던 대리기사와
박용철씨의 부인, 박용철·박용수씨 지인 등이 경찰에 한 진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살인사건 장소까지 운전한 대리기사 이 아무개씨는 2011년 9월7일 서울강북경찰서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뚱뚱한 사람(박용철) 전화로 전화가 여러 통 왔는데 갤럭시탭과 핸드폰으로 왔다.
갤럭시탭 전화는 경찰한테 돌려받았지만 일반 휴대전화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유가족은 주장한다.
유족들은 사라진 휴대전화를, 5촌 살인사건의 의문을 풀어줄 ‘스모킹 건’으로 보고 있다.
박용철씨는 ‘신동욱 재판’의 핵심 증인이었다.
박근령씨의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박근혜·박지만 남매와 얽힌 소송을 오랫동안 진행해왔다(기사 하단 표 참조). 2007년에 벌어진 ‘육영재단 강탈 사건’ ‘중국 칭다오 납치 사건’과
같은 일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신씨가, 박지만 EG 회장을 고소하자 박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동욱 총재를 맞고소했다. 신씨는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2010년 기소되었다.
2년에 걸쳐 재판이 진행돼 징역 1년6개월형이 선고됐다
.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던 신씨는 박용철씨를 여러 차례 재판의 증인으로 불렀다.
2010년 9월1일 박용철씨는 법정에서 이전과 다른 진술을 했다.
“(박지만 회장의) 정용희 비서실장이 나에게 ‘박지만 회장님 뜻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증인이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테이프라고 할 것도 없고 증인이 핸드폰에 녹음해둔 것을
핸드폰을 바꾸면서 캐나다에 가져다놓았다(6회 공판 조서 중 일부).
” 정 비서실장은 법정에서 박씨의 말이 소설이라고 맞섰다.
앞서 박용철씨는 2010년 7월 이 아무개 전 육영재단 법인실 부장에게 ‘살인 청부’라는 말도 했다.
이 전 부장이 2010년 9월1일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증언했다.
신동욱 변호인:그 당시 전화 통화에서 박용철은 “박지만 회장이 살인 청부 비용을
직접 통장으로 보내준 자료를 가지고 있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는가요?
이◯◯:예.
신동욱 변호인:또한 “나 혼자 그냥 죽을 수는 없다”라는 이야기도 하였는가요?
이◯◯:예, 절대 못 죽는다고 하였고 “내가 바보입니까. 아닙니다.
다 준비 자료가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신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고 1년 후 박용철씨는 증인으로 다시 법정에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신동욱씨의 조성래 변호사는 “2011년 8월23일 박용철씨를 다음 기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나 2011년 9월6일 박씨가 살해되면서 법정에 설 수 없게 됐다”라고 말했다.
살인사건은 <시사IN> 보도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박지만 EG 회장은 <시사IN>을 형사 고소
등으로 맞서면서 사건 자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해당 고소로 기소된 주진우 <시사IN>
기자 등은 1·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은 다시 주목받았다.
박영수 특검팀도 이 사건 재수사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조사위원회를 꾸려 수사를 촉구했다.
지난 1월1일에는 박지만 회장의 수행비서 주 아무개씨(45)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도 ‘신동욱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바 있다. 국과수 부검 결과 주씨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5촌 살인사건 타임라인
2007년 7월1일 박용철·신동욱, 중국 칭다오행. 신동욱 “박용철이 박지만의 지시를 받고 나를 죽이려 했다” 주장
2007년 11월28일 육영재단 폭력 사건. 한센인 100여 명 동원돼 박근령 쫓아냄
2009년 5월5일 박근혜 대리인 이춘상·김재원, 악플 단 누리꾼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
2010년 1월15일 신동욱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
2010년 7월28일 박용철, 육영재단 전 부장 이◯◯에게 전화
2010년 8월16일 박용철, 박근령 만나 “테이프를 (박지만 쪽에) 던져보겠다. 원본은 캐나다에 갖다놨다” 이야기함
2010년 9월1일 박용철 증인 출석. “정용희가 ‘박지만 뜻이다’라고 이야기한 녹음테이프가 있다. 핸드폰에 녹음해놓았다.”
2011년 8월24일 신동욱 구속
2011년 9월6일 박용철·박용수 숨진 채 발견
2011년 9월27일 “박용철이 증인으로 재판에 출석하기로 한 예정일(신동욱 변호인)”
2012년 9월14일 박용철·박용수 마지막 술자리 동석자 황◯◯ 사망
2017년 1월1일 ‘박지만 수행비서’ 주◯◯ 숨진 채 발견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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