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윤일병

세월호 구조 못햇나 안햇나?

참도 2017. 4. 10. 14:03

단독] 해경, 50명 객실 구조하자는 제안 뭉갰다문형구 기자 입력 2017.04.10. 11:51 댓글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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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3주기, 진상규명의 과제들 ①] 해경 구조의 문제

[미디어오늘 문형구 기자]

세월호는 인양되었지만 진실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감사원 조사, 국정조사를 거쳐 사법부의 판단도 대부분 종료됐지만 여전히 침몰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해경 해체를 선언한 청와대는 뒤에서는 해경을 비호했고, 검찰은 어찌된 영문인지 선원들의 단순한 공모 관계조차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과 청문회도 청와대로부터 하부 공무원 조직까지의 방해와 비협조로 막을 내렸습니다. 해경, 항만청, 해운조합보다 깊숙이 사태에 관여한 국정원은 누군가에 의해 조사 대상에서 지워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그래서 현재진행형입니다. ‘미디어오늘’이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기획기사를 내놓습니다. 또한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이 사건이 기억의 대상으로만 남지 않도록, 앞으로도 사건의 실상을 규명해 갈 것입니다. - 편집자주

해경 123정이 단원고 학생 50명이 배정된 객실 유리를 깨자는 선원의 제안을 받고도 이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세월호 기울기가 너무 심해 접안하기에 위험하다”며 123정을 뒤로 물렸지만 이후에도 세월호는 최소 10분 이상 탈출가능한 상태가 유지됐다.

‘미디어오늘’은 해경이 세월호 4층 다인실에 대한 구조 제안을 묵살했을 당시의 영상과 사진자료들, 그리고 법정 증거기록들을 관련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 최근 입수했다. 이들 증거자료들은 해경이 수난구호법에 따라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승객들의 사망을 방치한 정황을 나타내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성립도 가능해 보인다.

세월호 침몰 당일인 2014년 4월16일 10시8분12초부터 시작되는 영상엔 세월호의 1등 항해사인 강 모씨가 해경 승조원에게 말을 건네며 어딘가를 가리키는 장면이 찍혀있다.

▲ 해경123정 오전10시08분 촬영영상

이 영상은 검찰의 수사과정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검찰은 승무원 강씨에게 “10:08경 진술인이 123정 가운데 우측에서 세월호 4층 객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몸을 숙여 그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왜 그렇게 한 것인가요?”라고 질문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이 행위에 대해 강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해경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승무원 강씨가 실제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승무원의 승객 구조 의무 때문에 거짓 진술을 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강씨는 검찰 진술과정에서 이준석 선장의 퇴선 지시, 승객들에 대한 방송 여부와 관련해 거짓 진술을 되풀이했다.

검찰은 강씨가 가리킨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특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시각 헬기 513호에서 찍힌 영상을 보면 이 곳이 4층 선수 다인실인 ‘S4룸’임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승무원의 요구로 해경이 3층 객실인 S1룸 유리창을 깨 6명이 구조된 후, 강 씨가 4층 다인실을 구조해야 한다고 지목한 것이다. 강 씨의 변호인은 강 씨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것과 달리 “혹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것”이라고 재판과정에서 밝혔다.

▲ 같은 시각 헬기513호기 촬영영상

이 때 해경과 선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은 무엇일까? 강 씨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으나 해경이 4층 다인실에 승객들이 있음을 인지한 사실은 조타수 박 모씨의 상세한 진술로 확인된다.

검찰은 조타수 박 씨에게 해경123정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열람시키며 이 때 벌어진 일을 물었다. 박 씨는 먼저 3층 단체실에서 승객 6명을 구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고 검사는 “다른 객실도 위와 같이 유리창을 깼으면 구조가 가능했을 것 아닌가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박 씨는 “그래서 저와 강○○이 4층 3등 객실을 보면서 그 쪽 창문도 깨뜨리자고 얘기를 하였으나 세월호 기울기가 너무 심해 123정이 접안하기에 위험하다며 접안하지 않고 세월호에서 물러나 대기만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박 씨는 검사의 되풀이 되는 질문에 3번 이상 일관되게 이 상황을 진술했다.

검사 : “동영상을 보면, 3층 3등실쪽 창문을 깨고 승객 4~5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1항사 강○○이 학생들이 몰려있던 4층 단체실을 가리키는 듯 하였으나 누구도 4층 창문을 깨뜨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던데, 어떤가요?”

박 씨 : “예, 그렇습니다. 강○○이 가장 먼저 얘기를 했고, 저도 그 후에 4층 3등실 유리창을 깨뜨리자고 하였는데 해경 대원이 123정이 세월호에 접근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였고, 접안을 포기하였는지 후진하여 세월호에서 멀리 떨어져 나왔습니다”

강 씨가 해경에게 S4룸을 지목한 시간은 10시 8분이었다. 그러나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된 것은 10시 31분이며, 세월호 우현 난간에선 10시 20분경까지 40여명 승객들의 탈출이 계속됐다. 

‘미디어오늘’은 한 변호사에게 당시의 영상과 사진자료들, 법정 기록들을 보내 법률자문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이 변호사는 “관련 영상과 조타수 박씨의 진술내용을 보면, 해경은 4층 다인실에 승객들이 있고, 창문을 깨어 구조하지 않는 이상 사망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경이 위와 같이 인식했음에도 구조를 포기하고, 10여분의 시간동안 배의 전복을 방치하여 승객들이 사망에 이르렀다면, 해경에게 승객들의 사망을 용인하겠다는 미필적 고의(구조를 포기할 경우 4층 다인실에 있는 승객들이 사망할 것이 분명하지만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의사)가 인정되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의견서를 통해 밝혔다.

또한 “해경이 승객들의 사망이라는 경과 발생을 용인한 것이라면,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구조부작위는 ‘과실’이 아닌 ‘고의’에 의한 구조부작위를 의미하고, 쉽게 말해 ‘못 구한 것’이 아닌 ‘안 구한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해경 123정은 50명 이상의 승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4층 다인실 창문을 깨지 않고 곧바로 배를 물렸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후 세월호가 선수만 남기고 침몰할 때까지 약 1시간, 123정이 세월호에 접안해 구조한 인원은 선장과 선원 10명, 그리고 승객 6명이 전부였다. 

(기사에 도움주신 분: 304 목요포럼’ 고상현님, 세월호 국민조사위 박영대 상임연구원)

 연재순서 

① 해경, 50명 객실 구조하자는 제안 뭉갰다-해경 구조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