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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건물주 의 밥

참도 2015. 10. 28. 11:43

김현주의 일상 톡톡] 자영업자, 건물주의 '영원한 밥'?

은퇴한 월급쟁이들이 진입 장벽이 낮은 음식업이나 도소매업 등 자영업으로 내몰리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치킨집 수가 전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보다 많다는 집계가 나와 눈길을 끈다. 이는 별다른 기술 없이 창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데다, 내수부진까지 겹치면서 폐업 위기에 내몰린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실정이다.

#. 자영업자 김모(51)씨는 지난해 5월 서울 이화여대 인근에 치킨집을 차렸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퇴직한 뒤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저가 치킨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끈다는 얘기를 듣고 가게를 시작한 것. 그러나 김씨는 올 9월 결국 손해를 보고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그는 “창업 초반에는 장사가 비교적 잘 됐지만 근처에 저가 치킨집이 하나 더 생기면서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이 150만원을 넘기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한국의 자영업자 수가 감소 추세에 있지만 도소매와 음식업 등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에는 여전히 은퇴자들이 몰리고 있다. 회사를 그만둔 베이비붐 세대는 생계유지를 위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창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퇴직금에 빚까지 더해 창업에 나서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지 않은 게 현실이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올해 8월 기준 562만1000명이다. 이는 지난해 말의 565만2000명에서 3만명 가량 줄어든 수치다. 자영업자 수는 2005년 617만2000명으로 정점을 찍고서 이후 감소 추세에 있다.

자영업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7.4%(2013년 기준, 2011년 28.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1%(2011년)보다 높다. 산업 구조 특성상 자영업자 비율은 점점 줄어 OECD 평균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다만 전체 자영업자 수의 감소에도 ▲도소매업 ▲숙박업 ▲음식업 등에 종사하는 개인사업자는 늘고 있다.

도소매업의 사업체 수는 지난 2013년 96만388개로 2006년(86만5045개)에서 10만개 가량 늘었다. 이 기간 종사자수도 248만2358명에서 289만9955명으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에 숙박 및 음식점업의 사업체는 6만4522개(62만1703개→68만6225개), 종사자수는 31만9176명(167만2300명→199만1476명) 증가했다.

이들 업종은 특별한 기술이 없이도 쉽게 창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를 중심으로 은퇴자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 음식점업의 대표주자인 치킨전문점(2013년)수는 2013년 기준 2만2529개로 편의점(2만5039개) 다음으로 많았다.

이는 통계청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점으로 등록된 상표를 대상으로 집계한 것으로 프랜차이즈 형태가 아닌 개인사업자를 포함하면 치킨집은 더욱 늘어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치킨전문점수는 10년간 연평균 9.5% 늘어나 약 3만6000개까지 치솟았다. KB경영연구소는 당시 KB카드 개인사업자 가맹점을 상대로 치킨전문점 현황을 분석했다. 통계청의 표준산업분류 체계를 기본적인 토대로 닭강정·불닭 등 치킨을 주판매 업종을 하는 사업체를 더했고 닭갈비·찜닭·삼계탕·닭꼬치 등을 파는 곳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달리 말해 이 분석대로라면 한국의 치킨집은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의 전 세계 매장 수(3만5429개·2013년)보다도 많다.

산업연구원은 "치킨집과 커피전문점은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에서 창업이 쉽다"며 "은퇴자들이 먹고살기가 어려워 치킨집 등을 열고 있지만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청의 실태 조사(2013년)에서 자영업으로 뛰어든 동기와 관련한 물음에 '생계유지 위해서(다른 대안이 없어서)'를 꼽은 자영업자가 전체의 82.6%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창업을 통해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서'와 '가업 승계를 위해서'는 각각 14.3%, 1.3%에 불과했다.

즉,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해 자영업을 시작한 비율은 2007년 79.2%, 2010년 80.2% 등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등에게 '회사는 전쟁터였지만 밖은 지옥'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지만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창업에 뛰어든 뒤 쓴맛을 보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한정된 '밥그릇'을 놓고 생계유지를 위한 자영업자들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4∼2013년 개인사업자 창업은 949만개, 폐업은 793만개로 이를 단순 비교하면 생존율은 16.4%에 불과했다.

폐업률을 보면 음식점이 전체의 22.0%로 가장 높았다. 편의점이나 옷가게 등의 소매업(20.5%)과 미용실·네일숍 등의 서비스업(19.8%)의 폐업률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배경 없이 장사가 잘된다 싶으면 무조건 뛰어들고 보는 '묻지마 창업'의 폐해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사업 실패로 퇴직금을 고스란히 날리는 것은 물론 빚더미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올해 상반기 개인사업자를 상대로 한 신규대출은 51조9000억원으로 작년 동기(38조7000억원)보다 34% 늘었다.

KB경영연구소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내수 경기 부진에 따른 자영업자의 소득 여건 악화와 은퇴 후 창업 활동 증가로 자영업자의 부채규모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며 "자영업 대출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을 중심으로 창업이 많지만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면서 "예전에는 '월급쟁이'의 꿈이 빨리 돈을 모아 가게를 하나 차려 나가는 것이었는데 과거 10년간 자영업은 '월급쟁이들의 무덤'으로 변했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이 창업에 몰리면서 자영업자의 평균 연령대도 상승하는 추세다. 통계청 조사에서 50세 미만 자영업자 수는 2007년 324만명에서 2013년 246만명으로 줄었지만 50세 이상 자영업자 수는 같은 기간에 289만명에서 328만명으로 39만명 늘었다.

2013년까지는 베이비붐 세대의 창업이 활발하면서 '50대 사장님'이 많이 늘었지만 최근에는 60대가 창업 주도세력으로 떠올렸다. 60대 이상이 대표인 사업체는 지난해 70만1319개로 전년보다 11.8% 늘어났다. 40대(0.8%)와 50대(0.9%)의 증가 폭이 미미한 것과 대비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몰락하자 자영업에도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규 자영업자 가운데 사업자금이 3억원 이상인 비율은 2013년 8월 2.3%로 1년 전(1.4%)보다 0.9%포인트 증가했다. 사업자금의 규모가 커진 것은 물론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도 증가세에 있다. 이는 고용원 없이 가족경영 형태로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줄어드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지난해 3월부터 증가세를 이어간 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1년 6개월째(올해 8월 기준) 감소했다. 특히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수는 올해 8월 402만6800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19만6000명 줄었다. 감소폭으로 보면 2009년 12월 이후 가장 컸다.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은 퇴출이 늘어났다기보다는 진입 감소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수 부진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영세하게 사업을 운영하다가 실패하는 것을 자영업자들이 두려워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올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내수 경기가 더욱 얼어붙은 상황이다.

반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올해 8월 159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3000명 늘었다.

이 관계자는 "경기도 좋지 상황에서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크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사업에 뛰어드는 경향이 늘어났다"며 "자영업의 "진입 장벽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도소매와 음식업 등 진입 장벽이 낮은 자영업종에 생계를 유지하려는 은퇴자들이 몰리고 있지만, 폐업도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에선 누리꾼들의 갖가지 조언과 충고의 글이 이어졌다.

누리꾼 A씨 “자기 사업은 혼신과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공부 그리고 노하우도 있어야 한다”면서 “무턱대고 창업하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했다.

B씨도 "종업원으로 근무하면서 배우고 또 배운 다음 창업해도 늦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음식점은 맛으로 승부하는데 맛이 없는데도 장사가 안 된다고 다른 핑계를 댄다"고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C씨는 "적어도 2년은 해당 업종에서 경험을 쌓고 시작하는 게 좋다. 신입사원이 지식도 없이 승진하겠다고 이리저리 뛰면, 옆집 대기업 과장 부장님들 이기겠냐"고 반문했다.

D씨는 "15년동안 밤잠 안 자고 지켜온 내 가게가 문을 닫게 됐다. 임대료를 1년에 1500만원 내다보니 남는 거라곤 빚만 7000만원”이라며 “대한민국 자영업자는 건물주의 영원한 밥인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E씨는 "자영업 창업하는 이들은 회사 다니는 것의 2배로 일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최소 2년간은 1년 365일, 하루에 최소 12시간은 일한다 생각하고 하면 된다”면서 “직장생활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자영업은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