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재보선 참패 이후 강진 토굴 찾는 인사 늘어
‘문재인 대안’ 급부상…구기동으로 집도 옮겨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문재인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4·19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책임론에 시달리던 문재인 대표가 공무원연금개혁법안 국회 처리 무산이란 악재마저 겹치면서 2선 퇴진 위기를 맞았다. 당장 그 틈새를 파고드는 인물은 2012년 대선 때 문 대표의 후보단일화 협상 파트너였던 안철수 의원이다. 안 의원은 공무원연금개혁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연계한 여야의 합의안에 반대하며 문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안 의원을 문 대표의 대체제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안 의원을 따르는 세력이 당내에 없다. 그동안 오락가락한 행보로 ‘새정치’ 이미지도 사라졌다. 이 때문에 정치 평론가들은 안 의원보다 손학규 전 대표를 주목한다. 새정치연합의 고질병인 친노와 비노 사이의 계파 갈등이 폭발 지점에 이를 경우 손 전 대표가 ‘문재인의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때를 기다리며 와신상담?
손 전 대표는 지난해 7·30 수원 팔달 보궐선거 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 토굴에 칩거하며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손 전 대표는 야권이 위기에 빠졌을 때 언제든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한 정치평론가는 “손 전 대표가 본업인 대학교수로 돌아가거나 하지 않고 호남지역에서 칩거하는 자체가 ‘토굴 정치’”라고 말했다. 지금은 때를 기다리며 와신상담하는 단계지 완전한 정계은퇴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손 전 대표는 간간이 정치권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4월 25일에는 측근 두 명의 결혼식이 같은 날 열리자 ‘깜짝 상경’을 했다. 서울 정동과 강남에서 열린 강훈식 당 전략홍보본부 부본부장과 배상만 전 수행비서의 결혼식에 잇따라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낙연 전남지사와 조우했다. 당내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신학용·조정식·김민기 의원, 김유정·전현희·전혜숙 전 의원도 만났다.
두 차례의 결혼식에 참석한 뒤 몇몇 전직 의원, 옛 참모, 지지자 등 50여명과 번개 막걸리 회동도 가졌다. 손 전 대표는 기자들이 근황을 묻자 “나야 뭐 자연과 같이 살고 있다. 바깥 소식은 모른다. 꽃피는 계절이고 해서 꽃피는 것 보고 새순 돋는 것 보고…”라고 선문답을 했다.
그러나 강진 토굴을 찾는 정치권 인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새정치연합이 4·29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 옛 동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손 전 대표는 방문자들과의 만남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하지만 서울 여의도 정가에선 누가 강진 토굴에서 손 전 대표를 만나고 왔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4·29 재보선 이후 손 전 대표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몸은 강진에 있지만 최근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한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2011년 4·27 분당을 보궐선거 출마 당시 마련했던 분당의 아파트 전세계약이 만료됐다는 이유였다. 손 전 대표 측은 “가끔 경조사 등 볼 일을 보러 올라오면 머물 곳이 필요한 데다 책 같은 짐이 많아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왜 하필 구기동일까. 손 전 대표 측은 둘째 딸이 구기동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런 개인사적인 이유 보다는 정치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유력하게 나도는 관측은 내년 20대 총선 종로 출마설이다. 손 전 대표가 총선을 1년가량 앞두고 정치재개를 위한 포석을 깔았다는 의미다. ‘정치 1번지’ 종로는 과거 그의 지역구였다.
내년 20대 총선 종로 출마說
손 전 대표는 2008년 17대 총선 때 대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종로에서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졌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여의치 않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합친 대통합민주당에 입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한 직후였다.
이후 종로에서 원외 지역위원장으로 남아 재기를 모색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지역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당원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종로구청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반대파로부터 심한 공격을 당했다.
그런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종로로 집을 옮긴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고토(古土)에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는 수순일 수 있다. 종로구 현역 국회의원은 새정치연합의 중진인 정세균 의원이다. 정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친박계 원로인 홍사덕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된 바 있다. 거물들의 격전지인 종로에서 손 전 대표가 입지를 굳힌다면 차기 대권 가도에도 길이 열린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종로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뒤 그 상승세를 타고 대권을 잡았다. 손 전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종로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구기동은 인근 가회동 등과 함께 ‘대권명당’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지난 2006년 6월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퇴임을 불과 2주가량 앞두고 강남 논현동에서 가회동 한옥으로 이사했다. 가회동으로 옮긴 뒤 MB의 지지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손 전 대표도 MB가 가회동 집으로 이사하던 시기에 가회동 인근에 새로 살 집을 물색했으나 적당한 매물을 찾지 못해 포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시장공관을 가회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대권명당’을 찾아간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했던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가회동에 살았다.
특히 손 전 대표가 이번에 마련한 구기동 빌라의 인근에 문재인 대표가 살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두 사람의 집 사이 거리는 불과 100m 거리다. 공교롭게도 문 대표의 대권 주자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시점에 잠재적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는 손 전 대표와 이웃사촌이 됐다.
사실 손 전 대표는 이미 한 차례 사실상의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복귀한 바 있다. 2008년 1월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된 그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도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그 해 4월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본인도 종로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러자 같은 해 7월 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을 사임하고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해 닭을 치며 칩거했다.
그러다 2010년 8월 15일, 춘천을 떠나며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정계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 해 10월 3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며 화려하게 재기한 전력이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손 전 대표가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명분을 대며 정계복귀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총선이 다가오는 시점에 문재인 체제로는 선거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손학규 대안론’이 부상할 수 있다. 이 경우 손 전 대표는 단숨에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자리 잡게 된다.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며 “손 전 대표가 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다시 무대에 등장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결국 복귀해 정권을 잡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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