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종자 사놨는데…뒤늦게 말바꿔
"농림수산식품부에 문의했더니 느긋한 목소리로 '보류 상태'라고 말하더라고요. 농민을 바보로 아는지, 원…."
전남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에 사는 농민 오국환(53)씨는 최근 면사무소에 '논 소득 기반 다양화 사업'을 신청하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정부가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논에 쌀 대신 옥수수·콩 등 다른 작목을 재배할 경우 1㏊당 300만원씩 지원해주던 이 사업의 시행 여부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지난해처럼 논 3000평(909㎡)에다 쌀 대신 콩을 심으려고 종자용 콩 60㎏을 이미 사놓은 터다. "면 직원 말이, 이 사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반 볍씨를 구해놓으라고 해요. 기가 막혔습니다." 지난해 12월 말로 정부 보급종 볍씨 신청은 끝난 상황이다.
정부의 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농민들이 올해 영농 계획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속을 태우고 있다. 농식품부는 2010년 이 사업을 발표하면서 2011년부터 3년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전국 9만8000여 농가가 3만7198㏊의 논에 쌀 대신 대체작물을 재배해 1200억원을 지원받았다.
농식품부는 올해는 4만㏊의 논에 대체작물을 재배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국회로부터 예산 1202억원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농민들이 영농 계획을 세워야 할 때인데도, 사업 시행 규모조차 확정짓지 않고 있다. 그러고는 최근 뒤늦게 시·도에 "대체작물 재배 농가들도 영농에 차질이 없도록 볍씨 종자를 확보하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정부의 방침을 믿고 대체작물을 재배했던 농민들은 "늦어도 1월 말까지 쌀과 대체작물 가운데 무엇을 재배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영농에 차질이 없는데, 이제 와서 볍씨 종자를 구해놓으라는 것을 보니 사업 규모를 크게 축소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농식품부의 이런 행보는 쌀값 상승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기준으로 시중 쌀값은 80㎏에 16만6888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에 견줘 18.7% 올랐다. 벼 재배면적의 축소로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던 쌀값이 상승세를 보이자, 정부가 '쌀 감산정책 계속 시행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무·배추 등 일부 품목이 과잉생산된 것도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수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농민들 원성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올해 사업 시행 면적을 얼마나 줄일지를 최대한 빨리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쌀 수급정책에 장기적인 관점이 없으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농민들의 정책 신뢰가 떨어져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며 "쌀 과잉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대북 쌀 지원이나 저소득층 지원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김현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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