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는 정말 국가주권 위협하나?
시사INLive | 이종태 기자 | 입력 2011.10.31 12:35
현재 한·미 FTA 논란의 핵심은 결국 '국가 주권'의 문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미국과의 약속' 때문에 소신껏 정책을 펼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대자본으로부터 중소 자영업자를 보호하거나 건강보험제도 유지마저 힘들 수 있다고, FTA 반대론자들은 말한다. 이에 정부·여당은 한·미 FTA가 '국가 주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으로 맞선다. 10월17일부터 며칠간 찬반론자들이 국회에서 '끝장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한·미 FTA가 불평등 조약인 까닭
여기서 가장 크고 예민한 쟁점은 한·미 FTA가 한·미 양국의 법체계에서 가지는 지위였다. 적어도 한국에서 한·미 FTA는 국내법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의 지위를 점할 것이 확실하다. FTA에 맞춰 상당수 국내법이 개정된다. 그러나 미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미국은 주(州, state)라고 불리는 '나라' 50개가 결성한 연방 국가다. 연방 차원의 법률이 있고, 주 차원의 법률이 따로 있다. 미국이 연방과 주의 제도를 한·미 FTA에 맞춰 개정할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만약 한·미 FTA를 한국은 준수하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고전적 의미의 '불평등 조약'이 될 것이다. 더욱이 10월12일 미국 의회가 의결한 법안은 '한·미 FTA 협정문'(정부·여당이 10월28일 통과시키려는)이 아니라 '한·미 FTA 이행법안(H.R. 3080: United States-Korea Free Trade Agreement Implementation Act)'이다.
국제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10월20일 '끝장 토론'에서 "한국에서는 (한·미 FTA 협정문) 1500쪽 모두가 국내법이 된다. 그러나 이 협정에 대한 미국의 이행법은 80여 쪽에 불과하며 이는 미국 내에서 국내법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행법안'을 살펴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예컨대 이행법안 102조 (a)항은, "미국 연방 법안이 분쟁에 우선한다'(United States law to prevail in conflict)"라고 '대원칙'을 밝히고, 그 내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미 FTA 협정문의 어떤 조항이나 그 조항의 적용(특정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도 미국 연방 법률과 일치되지 않는다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No provision of the Agree-ment, nor the application of any such provision to any person or circum-stance, which is inconsistent with any law of the United States shall have effect.)
'한·미 FTA 협정문과 주(州) 법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102조 (b)항도 수상하다. 주의 법률 역시 한·미 FTA 때문에 무효화되지는 않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주체는 미국 연방정부뿐이라고 못 박고 있다.
10월12일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은 두 개다. 하나는 이행법안. 다른 하나는 이행법안을 시행하기 위한 행정 조치를 나열한 '행정조치문'(Statement of Administrative Action). 이 '행정조치문'은 상당 부분을 '이행법안'의 보충 설명에 배분하고 있다. 예컨대 '협정문'과 '주 법률'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州) 법률이 한·미 FTA 협정문과 어긋나도 '자동적'으로 (다른 법률로) 대체되거나 무효화되지는 않는다"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런 불합치를 어떻게 해결할까? 결국 미국 연방정부가 주인공이다. 연방정부가 주 정부와 '가능한 한 가장 심도 깊은'(the gr-eatest possible degree) 협의와 협력을 통해 불일치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주 정부 측이 법안 개정을 거부하면 비로소 이 문제를 법정에 제소하게 된다. 이렇게 제소할 수 있는 권한도 '오직' 미국 연방정부에 있다.(Only the United States is entitled to bring an action in court in the event that there is an unresolved conflict between a state law, or the application of a state law, and the Agreement.) 미국의 주 정부, 해당 주(州)의 기업이나 개인, 한국의 정부, 기업, 개인 등을 법률적 문제 해결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송기호 변호사 등이 한·미 FTA를 불평등 조약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에 따르면 '협정문'과 '이행법안'은 내용이 다르기까지 하다. 한국이 통과시킬 협정문 11장17조에는 "미국의 어떤 주가 FTA 조항을 지키지 않을 때 한국 기업이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분쟁 주도권도 미국 정부가 가져
이에 반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0월20일 '끝장 토론'에서 한·미 양국의 법체계 차이에서 생긴 오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FTA 협정을 맺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해왔고, 이제껏 어떤 나라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WTO의 경우에도 '이행법안'을 통과시켜 시행 중이라고 한다. 또한 김 본부장은 "(이행법안에는) '협정문'이 첨부되어 있으며, 이행법을 보면 첫 조항이 '미국은 이 협정을 승인한다'로 시작하고 이에 따라오는 '행정조치'들에 대해서도 승인한다고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행법안을 통해 협정문을 승인하고 또 '불일치'(협정문과 미국 법률 간의)를 해소하기 위한 '행정적 조치'들을 진행하기로 모든 법적 절차를 마쳤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말한 '행정조치'는 '행정조치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정조치문에는, 앞서 나왔듯이 한·미 FTA와 어긋나는 주 법률에 대해 "자동적으로 대체되거나 무효화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방 법률과 관련해서도, "협정의 어떤 조항도, 그것이 연방 법안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미국 국내법 아래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음을 확실히 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김 본부장은 '끝장 토론'에서 "우리나라 투자자가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라는 주장에 대해 "그 내용은 가능하다고 이행법 106조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106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연방은 미국에 대해 제기되는 청구(claim)를 해결할 권한을 가진다."(The United States is authorized to resolve any claim against the United States) 이 역시, 미국 정부가 '불일치' 문제의 해결을 보장하는 내용이라기보다 분쟁 해결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문구로 보인다.
미국처럼 국내법 우선하는 특별법 필요
정부·여당은 10월28일 한·미 FTA를 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한·미 FTA 협정이 양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사실관계'마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타당한 행위인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투자자-국가 소송제' '역진 방지 조항' 등 이후 정부의 정책 자율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조항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정책(건강보험, 부동산 시장 안정, 골목 상권 보호)이 자신의 이익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때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외교통상부 측은 '공중보건, 환경, 부동산 가격안정화와 같이 정당한 공공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행위는 상관없다는 주장이고, 이는 협정문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공공복지를 위한 조치라 하더라도 투자자는 국가를 중재 절차에 회부할 수 있으며, 국가는 이 절차 회부에 동의하지 않을 재량권이 없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사실관계 자체가 혼선을 빚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간과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한·미 FTA는 시효가 없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조항은 한국 내에서도 발휘하지 못하게 하거나, 미국의 FTA 이행법안처럼 FTA보다 국내법이 우선한다는 조항을 두는" 'FTA 이행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한·미 FTA가 불평등 조약인 까닭
여기서 가장 크고 예민한 쟁점은 한·미 FTA가 한·미 양국의 법체계에서 가지는 지위였다. 적어도 한국에서 한·미 FTA는 국내법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의 지위를 점할 것이 확실하다. FTA에 맞춰 상당수 국내법이 개정된다. 그러나 미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미국은 주(州, state)라고 불리는 '나라' 50개가 결성한 연방 국가다. 연방 차원의 법률이 있고, 주 차원의 법률이 따로 있다. 미국이 연방과 주의 제도를 한·미 FTA에 맞춰 개정할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만약 한·미 FTA를 한국은 준수하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고전적 의미의 '불평등 조약'이 될 것이다. 더욱이 10월12일 미국 의회가 의결한 법안은 '한·미 FTA 협정문'(정부·여당이 10월28일 통과시키려는)이 아니라 '한·미 FTA 이행법안(H.R. 3080: United States-Korea Free Trade Agreement Implementation Act)'이다.
국제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10월20일 '끝장 토론'에서 "한국에서는 (한·미 FTA 협정문) 1500쪽 모두가 국내법이 된다. 그러나 이 협정에 대한 미국의 이행법은 80여 쪽에 불과하며 이는 미국 내에서 국내법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행법안'을 살펴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예컨대 이행법안 102조 (a)항은, "미국 연방 법안이 분쟁에 우선한다'(United States law to prevail in conflict)"라고 '대원칙'을 밝히고, 그 내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AP Photo 이명박 대통령(맨 오른쪽)이 10월14일 오바마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GM 자동차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날 양국 정상은 한·미 FTA의 긍정 효과를 강조했다. |
'한·미 FTA 협정문과 주(州) 법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102조 (b)항도 수상하다. 주의 법률 역시 한·미 FTA 때문에 무효화되지는 않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주체는 미국 연방정부뿐이라고 못 박고 있다.
10월12일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은 두 개다. 하나는 이행법안. 다른 하나는 이행법안을 시행하기 위한 행정 조치를 나열한 '행정조치문'(Statement of Administrative Action). 이 '행정조치문'은 상당 부분을 '이행법안'의 보충 설명에 배분하고 있다. 예컨대 '협정문'과 '주 법률'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州) 법률이 한·미 FTA 협정문과 어긋나도 '자동적'으로 (다른 법률로) 대체되거나 무효화되지는 않는다"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런 불합치를 어떻게 해결할까? 결국 미국 연방정부가 주인공이다. 연방정부가 주 정부와 '가능한 한 가장 심도 깊은'(the gr-eatest possible degree) 협의와 협력을 통해 불일치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주 정부 측이 법안 개정을 거부하면 비로소 이 문제를 법정에 제소하게 된다. 이렇게 제소할 수 있는 권한도 '오직' 미국 연방정부에 있다.(Only the United States is entitled to bring an action in court in the event that there is an unresolved conflict between a state law, or the application of a state law, and the Agreement.) 미국의 주 정부, 해당 주(州)의 기업이나 개인, 한국의 정부, 기업, 개인 등을 법률적 문제 해결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송기호 변호사 등이 한·미 FTA를 불평등 조약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에 따르면 '협정문'과 '이행법안'은 내용이 다르기까지 하다. 한국이 통과시킬 협정문 11장17조에는 "미국의 어떤 주가 FTA 조항을 지키지 않을 때 한국 기업이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분쟁 주도권도 미국 정부가 가져
이에 반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0월20일 '끝장 토론'에서 한·미 양국의 법체계 차이에서 생긴 오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FTA 협정을 맺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해왔고, 이제껏 어떤 나라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WTO의 경우에도 '이행법안'을 통과시켜 시행 중이라고 한다. 또한 김 본부장은 "(이행법안에는) '협정문'이 첨부되어 있으며, 이행법을 보면 첫 조항이 '미국은 이 협정을 승인한다'로 시작하고 이에 따라오는 '행정조치'들에 대해서도 승인한다고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행법안을 통해 협정문을 승인하고 또 '불일치'(협정문과 미국 법률 간의)를 해소하기 위한 '행정적 조치'들을 진행하기로 모든 법적 절차를 마쳤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말한 '행정조치'는 '행정조치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정조치문에는, 앞서 나왔듯이 한·미 FTA와 어긋나는 주 법률에 대해 "자동적으로 대체되거나 무효화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방 법률과 관련해서도, "협정의 어떤 조항도, 그것이 연방 법안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미국 국내법 아래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음을 확실히 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김 본부장은 '끝장 토론'에서 "우리나라 투자자가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라는 주장에 대해 "그 내용은 가능하다고 이행법 106조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106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연방은 미국에 대해 제기되는 청구(claim)를 해결할 권한을 가진다."(The United States is authorized to resolve any claim against the United States) 이 역시, 미국 정부가 '불일치' 문제의 해결을 보장하는 내용이라기보다 분쟁 해결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문구로 보인다.
미국처럼 국내법 우선하는 특별법 필요
정부·여당은 10월28일 한·미 FTA를 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한·미 FTA 협정이 양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사실관계'마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타당한 행위인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투자자-국가 소송제' '역진 방지 조항' 등 이후 정부의 정책 자율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조항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정책(건강보험, 부동산 시장 안정, 골목 상권 보호)이 자신의 이익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때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외교통상부 측은 '공중보건, 환경, 부동산 가격안정화와 같이 정당한 공공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행위는 상관없다는 주장이고, 이는 협정문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공공복지를 위한 조치라 하더라도 투자자는 국가를 중재 절차에 회부할 수 있으며, 국가는 이 절차 회부에 동의하지 않을 재량권이 없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사실관계 자체가 혼선을 빚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간과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한·미 FTA는 시효가 없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조항은 한국 내에서도 발휘하지 못하게 하거나, 미국의 FTA 이행법안처럼 FTA보다 국내법이 우선한다는 조항을 두는" 'FTA 이행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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