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대란’의 먹구름이 몰려온다
시사INLive | 정희상 기자 | 입력 2010.07.20 10:4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대전
"7월 말부터 8월로 접어들면 수많은 상조회사 사주가 해외로 여름휴가를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서야 당한 사실을 알아챈 수십만 상조 가입자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지금이 악덕 상조업자의 '먹튀'를 단속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최근까지 중견 상조회사를 경영해온 김영수씨(56·가명)는 요즘 상조업계 경영자들의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1995년 서울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마련해 '장례행사 대행 서비스'를 시작했던 김씨가 직접 회원을 모아 ㅇ상조회사를 경영한 지 12년. 그동안 등록 회원(연인원) 7만여 명을 모집해 중견 상조회사로 키워냈다. 현재까지 매달 상조회비를 내는 장기 유료 회원은 3만여 명이다.
상조업주 사이에서는 개인이 상조업에 진출해 유료 회원 3만명을 모집하면 '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 설립자본금 5000만원만 있으면 따로 투자하거나 추가 비용 없이도 회원을 모집하는 대로 다달이 현금이 착착 들어오기 때문이다. 장례는 먼 미래에 발생할 일이니, 설립만 하면 상조업주로서는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인 셈이다.
김씨는 "유료 회원 3만명으로부터 매월 7억~8억원씩 현금이 들어왔다. 그중 관리비와 영업사원 수당으로 절반 정도(3억5000만~4억원) 들어가고, 월평균 장례 행사비용으로 2억원가량 썼다. 나머지 최소 1억5000만~2억원은 매달 사장이 가져다 쓸 수 있는 구조이니 정말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물 쓰듯 써댔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상조업주 처지를 '환상적인 사업'이자 '허가 난 도둑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환상이 화수분처럼 계속될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3월 말 김씨의 꿈은 깨졌다. 상조업계 1위인 보람상조 최철웅 회장 일가가 300억원대 상조회비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이다. 업계 관행이었으니 김씨로서도 같은 이유로 조사하면 언제 쇠고랑을 찰지 모를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장 오는 9월18일이면 지금까지와 같은 '허가 난 도둑질'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난립하는 상조회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국회에서 개정한 할부거래 관련 법률 시행시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김씨는 "자본금을 3억원으로 늘리고 회원 보호를 위해 모집 회비의 50%를 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규정한 새 법률 아래서 계속 사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사업을 넘기고 손을 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미련 없이 팔고 빠져나왔다. 사실 인수자에게 인간적으로는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영세 업주들의 고민 '감옥이냐 해외냐'
김씨가 자본주의 사업가답지 않게 거래 상대방에게 연민의 감정을 표한 데는 이유가 있다. 중견 상조업체를 경영해온 자신도 다가올 '상조 대란'을 감지하고 '감옥행이냐 해외행이냐'를 고민했을 정도인데 하물며 회원들이 낸 회비를 가져다 흥청망청 써대던, 회원 1000~3000명 규모의 대다수 영세 상조업주의 요즘 심정은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법에 따라 강화된 상조업체 등록 요건을 갖춰야 하는 9월18일을 앞두고 지금 영세 상조업주 수백명은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원 규모가 3만명 이상인 중견 업체와 준영세 업체 간에는 컨소시엄 형식으로 9월 등록 요건을 갖추기 위해 짝짓기에 나선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어떻게든 업체와 회원을 헐값에라도 팔아넘겨 그간 저질러온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받으려는 업주도 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영세 사업주 가운데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3월 이후 유예기간으로 준 6개월 동안 회비를 최대한 끌어당겨 해외로 이미 도주했거나 도주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김씨가 7~8월 여름휴가철이 상조 대란의 서막이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바로 상당수 영세 상조업주의 은밀한 속사정을 들여다본 결과인 셈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부산으로 상륙한 상조업은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서서히 뿌리를 내리다가 최근 5년 사이에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된 장례 토털 서비스업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50여 개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400여 업체로 추산된다. 이처럼 상조회 도입 역사는 30여 년이 넘었지만 국내에서 급성장한 것은 불과 최근 4~5년 사이다. 2004년 무렵부터 허용된 상조업에 대한 공중파와 케이블 텔레비전 광고 방송이 계기였다. 규모가 큰 업체들이 앞다퉈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우고 과장 광고를 일삼으면서 일반 시민의 관심이 급속히 쏠렸고 회원도 급증했다. 여기에는 일반 시민이 상조업을 일종의 '보험 상품'으로 잘못 인식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보험 가입자는 사고가 나면 약속된 보험금을 받고 남은 보험료를 정산하지 않지만, 상조회원은 매월 회비를 내더라도 상조 서비스를 받을 때 나머지 금액을 정산해야 한다. 일종의 '선납 할부금융 상품'인 셈이지만 상조회사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일부 악덕 업체에서는 아예 '장례 보험'이라고 속여 팔기도 하는 실정이다.
회원을 모아 미리 돈을 받기 때문에 회사만 만들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이라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단계 회사 출신 한 상조업자는 "상조업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상조업과 기존 다단계 및 방문판매사업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탕을 노린 업자들이 나타나 전체 상조업계의 이미지를 크게 흐렸다"라고 말했다.
상조업계에서는 스스로를 일종의 '계'로 간주한다. 회사 형태를 주로 유한회사로 만들어 만일 잘못되더라도 '계주'보다는 법인에 책임을 돌릴 수 있도록 꾸린 곳이 많다. 하지만 계주 격인 상조회사 오너는 회원들의 '곗돈'을 자유롭게 빼서 유용할 수 있는 구조이다. 업계 1위라는 보람상조 최철웅 회장의 횡령 혐의가 보여주듯 이런 사정은 크고 작은 차이만 있을 뿐 상조업체 전반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 상조시장 규모는 6조원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당시 파악된 상조업체 281개 중 자본금 1억원 미만인 업체가 전체의 63%인 176개, 회원 1000명 미만인 곳이 47%인 132개에 이른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상조 서비스 관련 소비자 피해는 2005년 219건에서 2009년 2446건으로 늘었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한 해 동안 소비자 피해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상조 서비스 건이 60%로 가장 많은 증가율을 보였다.
회원 가입비만 매월 받아놓고 폐업하거나 잠적해버리는 '먹튀 상조'의 피해 사례도 해마다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먹튀 상조'가 48개나 발생했다. 올해는 9월18일 개정 할부거래법 시행을 앞두고 더욱 큰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별다른 규제 없이 사업자 등록만 하면 회사를 차릴 수 있는 조건에서 상조회사가 우후죽순 난립하며 피해자를 양산하자 뒤늦은 규제 법안이 마련됐다. 상조업의 원산지인 일본은 이미 1970년대부터 상조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규제하고, 가입자가 낸 회비 중 최소 50%를 은행에 맡기거나 보증보험사의 보증을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조업이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서민을 갈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상조업계의 난립으로 피해가 확산될 우려가 커지자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할부거래법 개정안'을 상정해야 한다고 수차례 문제 제기를 했다. 할부거래법 개정안은 △자본금 3억원 이상 회사만 시·도에 등록한 후 영업 가능 △소비자로부터 미리 받은 돈의 50%를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지급보증·보험공제 가입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2008년 국회에 상정된 이 법률안은 올해 2월에야 국회를 통과해 6개월간 유예기간을 거친 뒤 9월부터 시행된다.
"상조 가입자는 CMS 일시중지 신청해야"
법 시행을 앞두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전국의 상조업체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400여 개로 추산되는 상조업체 중에서 제도권으로 편입할 의사가 있는 301곳만 실태조사에 응했다. 물론 이들 301곳 중에서도 80%가 부실한 상태였다. 정부 조사를 기피한 나머지 100여 업체는 더 곪은 곳이다. 유명무실하거나, 이미 사업장을 폐쇄하고 '먹튀'한 곳도 다수 포함돼 있다.
< 시사IN > 은 소비자 보호단체인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한노연·회장 제재형)을 통해 공정위가 실시한 상조업계 실태조사를 기피한 부실 상조업체 110곳의 명단을 입수했다(왼쪽 표 참조). 한노연은 특히 노년층 취약자를 대상으로 불법·부당 판매의 온상이 된 홍보관·지하방·떴다방 등에서 장례용품인 수의와 관을 미끼로 상조 가입을 유도하는 사기 악덕업자가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자 구제에 나섰다고 한다. 공정위가 조사한 부실 상조업체의 실태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대조 확인했다는 한노연 관계자는 "9월 법 시행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고객 돈을 끌어모아 한탕한 뒤 해외로 튀려는 일부 악덕 상조업체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사정당국에서 이들을 상대로 일단 출국금지 조처를 해야 상조 가입자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46개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주무 부서인 공정위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공정위는 상조업이 9월부터 등록제로 바뀜에 따라 등록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는 건실한 업체와의 협력 사업자 관계 또는 인수합병이나 회원 인수 등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반면 상조업주들은 업체 간 기존 예수금 문제 차이, 회사 간 상품 차이 등으로 현재 시장 상황에서는 인수합병 등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쏟아낸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지금처럼 고객 돈으로 광고비와 모집수당을 펑펑 쓰면서 계속 모럴해저드에 빠져 사업하겠다는 상조업자라면 몰라도 등록 기준인 자본금 3억원과 회비 예치금 기준은 정상적인 사업자라면 누구나 맞출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공정위에서는 더 이상 상조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원칙적 의지를 보이지만 이미 상조회사에 가입한 고객은 자기 판단으로 돈을 넣었으니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불안하면 지금이라도 해약하라는 조언이 고작이다. 결국 오는 9월 법 시행을 앞두고 300만이 넘는 상조 가입자들의 큰 혼란과 피해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해약을 하더라도 상조업체가 정한 주먹구구식 약관에 따라 한푼도 못 받거나 고작 50% 정도밖에 돌려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규모가 큰 상조회사는 해약이 오히려 업체에 유리하므로 요즘은 고객에게 해약을 적극 종용하는 추세다.
그러나 대다수 영세 상조업체는 고객의 해약 요구마저 맞추지 못하고 있다. 상조회사가 가입자의 돈을 돌려주지 않을 때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집단구제' 절차를 밟는 방법이 있다. 집단분쟁조정을 벌여 피해금을 보상받는 방법이다. 하지만 상조회사가 특정 비율의 은행 예치금이 없는 현실에서는 피해 금액을 100% 보상받기가 어렵다. 또 회사 운영자 개인 돈에서 변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돈이 없다고 주장하면 피해금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상조회 가입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소비자 단체와 상조업계에서 비교적 양심적인 업주들은 상조회사 가입자에게 상조회비 은행 자동납부(CMS)를 오는 9월까지 한시적으로 정지해두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라고 권고한다. 자신이 가입한 상조회사가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해 도산할 경우 자동이체를 중지한 고객은 피해를 줄이는 셈이지만 계속 납부한 회원은 전액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정희상 기자 /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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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중견 상조회사를 경영해온 김영수씨(56·가명)는 요즘 상조업계 경영자들의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1995년 서울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마련해 '장례행사 대행 서비스'를 시작했던 김씨가 직접 회원을 모아 ㅇ상조회사를 경영한 지 12년. 그동안 등록 회원(연인원) 7만여 명을 모집해 중견 상조회사로 키워냈다. 현재까지 매달 상조회비를 내는 장기 유료 회원은 3만여 명이다.
ⓒ한노연 지난 4월 초 보람상조 직원들이 부산지검 앞에서 최철웅 회장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 |
김씨는 "유료 회원 3만명으로부터 매월 7억~8억원씩 현금이 들어왔다. 그중 관리비와 영업사원 수당으로 절반 정도(3억5000만~4억원) 들어가고, 월평균 장례 행사비용으로 2억원가량 썼다. 나머지 최소 1억5000만~2억원은 매달 사장이 가져다 쓸 수 있는 구조이니 정말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물 쓰듯 써댔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상조업주 처지를 '환상적인 사업'이자 '허가 난 도둑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환상이 화수분처럼 계속될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3월 말 김씨의 꿈은 깨졌다. 상조업계 1위인 보람상조 최철웅 회장 일가가 300억원대 상조회비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이다. 업계 관행이었으니 김씨로서도 같은 이유로 조사하면 언제 쇠고랑을 찰지 모를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장 오는 9월18일이면 지금까지와 같은 '허가 난 도둑질'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난립하는 상조회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국회에서 개정한 할부거래 관련 법률 시행시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김씨는 "자본금을 3억원으로 늘리고 회원 보호를 위해 모집 회비의 50%를 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규정한 새 법률 아래서 계속 사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사업을 넘기고 손을 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미련 없이 팔고 빠져나왔다. 사실 인수자에게 인간적으로는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영세 업주들의 고민 '감옥이냐 해외냐'
김씨가 자본주의 사업가답지 않게 거래 상대방에게 연민의 감정을 표한 데는 이유가 있다. 중견 상조업체를 경영해온 자신도 다가올 '상조 대란'을 감지하고 '감옥행이냐 해외행이냐'를 고민했을 정도인데 하물며 회원들이 낸 회비를 가져다 흥청망청 써대던, 회원 1000~3000명 규모의 대다수 영세 상조업주의 요즘 심정은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4~5년 사이에 장례 대행 서비스업을 이용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부산으로 상륙한 상조업은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서서히 뿌리를 내리다가 최근 5년 사이에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된 장례 토털 서비스업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50여 개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400여 업체로 추산된다. 이처럼 상조회 도입 역사는 30여 년이 넘었지만 국내에서 급성장한 것은 불과 최근 4~5년 사이다. 2004년 무렵부터 허용된 상조업에 대한 공중파와 케이블 텔레비전 광고 방송이 계기였다. 규모가 큰 업체들이 앞다퉈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우고 과장 광고를 일삼으면서 일반 시민의 관심이 급속히 쏠렸고 회원도 급증했다. 여기에는 일반 시민이 상조업을 일종의 '보험 상품'으로 잘못 인식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보험 가입자는 사고가 나면 약속된 보험금을 받고 남은 보험료를 정산하지 않지만, 상조회원은 매월 회비를 내더라도 상조 서비스를 받을 때 나머지 금액을 정산해야 한다. 일종의 '선납 할부금융 상품'인 셈이지만 상조회사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일부 악덕 업체에서는 아예 '장례 보험'이라고 속여 팔기도 하는 실정이다.
회원을 모아 미리 돈을 받기 때문에 회사만 만들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이라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단계 회사 출신 한 상조업자는 "상조업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상조업과 기존 다단계 및 방문판매사업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탕을 노린 업자들이 나타나 전체 상조업계의 이미지를 크게 흐렸다"라고 말했다.
상조업계에서는 스스로를 일종의 '계'로 간주한다. 회사 형태를 주로 유한회사로 만들어 만일 잘못되더라도 '계주'보다는 법인에 책임을 돌릴 수 있도록 꾸린 곳이 많다. 하지만 계주 격인 상조회사 오너는 회원들의 '곗돈'을 자유롭게 빼서 유용할 수 있는 구조이다. 업계 1위라는 보람상조 최철웅 회장의 횡령 혐의가 보여주듯 이런 사정은 크고 작은 차이만 있을 뿐 상조업체 전반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회원 가입비만 매월 받아놓고 폐업하거나 잠적해버리는 '먹튀 상조'의 피해 사례도 해마다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먹튀 상조'가 48개나 발생했다. 올해는 9월18일 개정 할부거래법 시행을 앞두고 더욱 큰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별다른 규제 없이 사업자 등록만 하면 회사를 차릴 수 있는 조건에서 상조회사가 우후죽순 난립하며 피해자를 양산하자 뒤늦은 규제 법안이 마련됐다. 상조업의 원산지인 일본은 이미 1970년대부터 상조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규제하고, 가입자가 낸 회비 중 최소 50%를 은행에 맡기거나 보증보험사의 보증을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조업이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서민을 갈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상조업계의 난립으로 피해가 확산될 우려가 커지자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할부거래법 개정안'을 상정해야 한다고 수차례 문제 제기를 했다. 할부거래법 개정안은 △자본금 3억원 이상 회사만 시·도에 등록한 후 영업 가능 △소비자로부터 미리 받은 돈의 50%를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지급보증·보험공제 가입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2008년 국회에 상정된 이 법률안은 올해 2월에야 국회를 통과해 6개월간 유예기간을 거친 뒤 9월부터 시행된다.
"상조 가입자는 CMS 일시중지 신청해야"
법 시행을 앞두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전국의 상조업체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400여 개로 추산되는 상조업체 중에서 제도권으로 편입할 의사가 있는 301곳만 실태조사에 응했다. 물론 이들 301곳 중에서도 80%가 부실한 상태였다. 정부 조사를 기피한 나머지 100여 업체는 더 곪은 곳이다. 유명무실하거나, 이미 사업장을 폐쇄하고 '먹튀'한 곳도 다수 포함돼 있다.
< 시사IN > 은 소비자 보호단체인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한노연·회장 제재형)을 통해 공정위가 실시한 상조업계 실태조사를 기피한 부실 상조업체 110곳의 명단을 입수했다(왼쪽 표 참조). 한노연은 특히 노년층 취약자를 대상으로 불법·부당 판매의 온상이 된 홍보관·지하방·떴다방 등에서 장례용품인 수의와 관을 미끼로 상조 가입을 유도하는 사기 악덕업자가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자 구제에 나섰다고 한다. 공정위가 조사한 부실 상조업체의 실태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대조 확인했다는 한노연 관계자는 "9월 법 시행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고객 돈을 끌어모아 한탕한 뒤 해외로 튀려는 일부 악덕 상조업체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사정당국에서 이들을 상대로 일단 출국금지 조처를 해야 상조 가입자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46개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라고 말했다.
ⓒ한노연 |
공정위에서는 더 이상 상조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원칙적 의지를 보이지만 이미 상조회사에 가입한 고객은 자기 판단으로 돈을 넣었으니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불안하면 지금이라도 해약하라는 조언이 고작이다. 결국 오는 9월 법 시행을 앞두고 300만이 넘는 상조 가입자들의 큰 혼란과 피해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해약을 하더라도 상조업체가 정한 주먹구구식 약관에 따라 한푼도 못 받거나 고작 50% 정도밖에 돌려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규모가 큰 상조회사는 해약이 오히려 업체에 유리하므로 요즘은 고객에게 해약을 적극 종용하는 추세다.
그러나 대다수 영세 상조업체는 고객의 해약 요구마저 맞추지 못하고 있다. 상조회사가 가입자의 돈을 돌려주지 않을 때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집단구제' 절차를 밟는 방법이 있다. 집단분쟁조정을 벌여 피해금을 보상받는 방법이다. 하지만 상조회사가 특정 비율의 은행 예치금이 없는 현실에서는 피해 금액을 100% 보상받기가 어렵다. 또 회사 운영자 개인 돈에서 변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돈이 없다고 주장하면 피해금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상조회 가입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소비자 단체와 상조업계에서 비교적 양심적인 업주들은 상조회사 가입자에게 상조회비 은행 자동납부(CMS)를 오는 9월까지 한시적으로 정지해두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라고 권고한다. 자신이 가입한 상조회사가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해 도산할 경우 자동이체를 중지한 고객은 피해를 줄이는 셈이지만 계속 납부한 회원은 전액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정희상 기자 /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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