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또 추경을 준비중이다. 20조원 안팎이 될 것 같다.
결국 빚이 될 것이다. 또 비판이 이어진다.
‘재정폭주, 후세는 안중에도 없나’ 같은 자극적인 기사가 등장한다
.
정부 빚을 줄이자는 주장은 늘 그럴 듯하다. 정부 재정을 아끼자는 충고다.
진짜 미래를 걱정하는 것 같다.하지만 거기까지다.
이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정적으로 "지금 이 상황이 정부가 빚내서 돈을 더 쓸 상황이냐?"고
묻지 못한다. 왜냐면 "지금 이 상황은 정부가 빚내서 돈을 더 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위기에 정부는 재정을 얼마나 써야할까?
우리만큼, 또는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의 재정지출과 비교해보면 얼추 답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재정을 너무 펑펑 썼는지, 너무 아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우리 언론들이 요즘 ‘영국이 재정 축소를 검토 중’이라고 대서특필하니 영국부터 살펴보자.
영국은 지난해 –9.9% 성장했다. 300년 만에 최악이다 (기저효과로 올해는 4%,
내년에는 7.3%의 성장이 예상된다). 그만큼 정부가 돈을 많이 썼다.
지난해 정부 살림의 적자 규모가 3,550억 파운드나 된다.
1년에 우리 정부 한해 예산(2021년 555조원) 만큼 재정 적자가 폭등했다.
영국은 GDP는 2조9천억 달러(2020년 기준)다. 우리 경제의 1.7배쯤 된다.
그러니 (영국에 비교하면) 우리도 3~400조 원 정도 적자가 나야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 정부의 재정적자는 71조 원(통합재정수지/기획재정부) 정도다.
물론 영국은 우리보다 코로나 상황이 훨씬 극심했다.
그러니 우리 재정적자가 영국의 1/8 정도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바이러스에 비교적 잘 대응했고, 그래서 재정 적자도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에선 ‘선진국은 재정정상화, 한국은 중단없는 나라빚 폭주’같은 기사가 이어진다. ‘
영국같은 나라도 확대재정을 축소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더 쓸 궁리만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영국은 지난해 재정 적자가 무려 GDP의 13.3%나 됐다.
이런 나라가 올해 코로나가 잡히면 재정적자 축소를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대부분의 선진국이 지난해 끔찍한 재정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도 확장적 재정을 유지하거나 일부(독일)국가는 재정을 큰폭으로 확대한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독일 프랑스 재정정상화 시동, 한국은 확장재정(C 일보 6/14일)’ ‘2011년 이후 재정 수지 최악의 성적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빚’ 같은 기사를 쏟아냈다
선진국의 지난해 재정 적자는 참담했다. 정부의 빚은 정말 눈덩이처럼 불었다. 일본은 지난해 재정 적자가 GDP의 -14.3%나 된다. 영국은 -13.3%, 프랑스는 -9.2%를 기록했다. 국가 재정에 매우매우 민감한 독일(독일은 재정이 파탄나서 히틀러 정권을 경험한 나라다) 마저 -4.5%의 적자를 기록했다.
IMF는 지난해 10월, 선진국의 재정 적자폭이 평균 GDP의 13.1%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바이러스의 침공으로 국민들이 쓰러져가자, 다들 거둔 세금보다 13% 정도 예산을 더 쓴 셈이다.
반면 우리는 GDP 대비 3.7%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통합재정수지/기획재정부/IMF 추산 한국의 기초재정수지(General Government Primary Balance 적자폭도 3.7%다).
그런데 우리언론은 ‘통합재정적자 6배 늘어, 악어입 벌어진다’같은 기사를 쏟아냈다. 선진국의 재정 적자가 얼마나 천문학적인지는 굳이 살펴보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재정적자가 늘어난 것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재정지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얼마나 썼을까?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재정부양책으로 우리 정부는 GDP의 3.5%를 썼다.
반면 뉴질랜드는 GDP의 19.5%, 싱가포르는 16.1%, 캐나다는 12.5%, 미국 11.8%, 일본 11.3%(자료 IMF)에 달하는 예산을 경기부양에 쏟아 부었다. 그런데도 한국언론은 '무너지는 나라 곳간, 후손들 삶 막막...' 같은 기사를 내보낸다. 그럼 이들 나라의 후손들 삶은 얼마나 막막한가.
오죽하면, 미 재무부가 한국 정부는 돈을 더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4월 미 재무부는 '거시경제·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의 코로나19 재정 지출 규모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너무 작으며, (한국의 역사에서는 큰 규모지만) 재정을 더 투입해 경제적 지원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재정을 확대해 구체적으로 ‘청년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넓히고’, ‘노년층의 빈곤을 예방’할 것으로 조언했다. 그런데 이 무렵 우리 언론에선 ‘재정적자 증가폭 역대 최대, 숨막히는 부채공화국’같은 기사가 쏟아졌다.
그럼 우리 정부가 선진국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코로나 극복 예산을 써서, 재정 적자를 줄였으니 참 잘한 것일까?
국가가 돈을 쓰지 않으면 국민의 부채가 늘어난다. 실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가계부채는 8.6%p(171조원)나 늘었다. 덕분에 가계부채는 이제 2,000조 원에 육박한다. 너무 힘든데 정부가 지원을 해주지 않자, 힘들어진 국민들은 결국 빚을 늘렸다.
같은 기간 미국 국민들의 가계부채는 4.9%, 일본은 3.9%, 영국은 6.2%, 이탈리아 3.7%, 스페인은 5.6% 늘었다. 유로존의 평균 가계부채는 4.9% 늘었다(자료 BIS 국제결제은행).
우리보다 훨씬 코로나가 심하게 창궐해 1년 가까이 가게 문을 닫은 나라의 국민들이 우리보다 빚은 덜 늘어났다. 그러니 우리 정부가 재정을 아껴서 재정 적자를 줄인 것이 과연 박수 받을 일인가? 어머니가 돈을 아껴 아들 빚이 훌쩍 늘어났는데, 그게 진짜 잘 한 것인가?
(2008년 GDP대비 62% 정도였던 가계부채가 2020년 1분기 90.3%로 크게 높아 진 것은 부동산열풍 탓이 크다. 반면 정부가 주택 대출을 꽁꽁 묶어놓은 상태에서 지난해 늘어난 가계부채는 상당부분 자영업 부실과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 등이 직격탄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로나 위기에 재정 지출을 더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이 때문에 이 기간 한국의 가계부채가 급증한 사실도 덧붙였다(6월 8일).
이 문제를 역시 한국언론이 외면하자, 이번엔 바다건너 월스트리저널(WSJ)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6월 8일). 이 신문은 이런 큰 위기가 찾아오면 어떤 부문이던 결국 돈을 더 빌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돈을 더 지출해야 하고, 어떤 나라는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In some cases, governments could have taken on more debt, but chose not to)며, 그 예로 ‘한국’을 지목했다.
그냥 콕 찝어 ‘한국’이라고 못을 박았다(South Korea is perhaps the most obvious case of an economy that had more room to provide fiscal support). 월스트리트는 결국 같은 기간 한국의 비금융기업과 가계의 부채가 GDP 대비 각각 9.2%p, 8.6%p 상승했다고 꼬집었다. 이런 민간 부분의 부채 증가가 공적부분의 부채증가보다 더 경제 성장에 해롭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참고로 월스트리트저널이 코로나 시기에 정부보다 민간의 부채가 더 증가했다고 꼽은 나라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태국’ ‘러시아’ 등이다. 참으로 공교롭게 이들 나라들 모두 ‘언론’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나라들이다.
결국 정부가 '재정건전성'에 발목이 잡혀 주저하는 사이, 국민들 상당수는 입술 꽉 깨물고 이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이들 국민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선진국보다 덜 훼손된 ‘재정건전성’을 자랑할 것인가? 국민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게 차라리 다행 아닌가? 진짜 궁금해진다.
“이럴 때 안 쓸 거면 재정은 왜 아끼는 것인가?”
빚은 나쁜 것이다. 정부의 빚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 이는 기업의 매출이나 국민의 소득이 된다. 정부의 적자는 곧 국민의 흑자다. 정부가 재정이 부족해 국채를 발행해도 (일본처럼) 대부분 국내 자본이 인수하면 이는 국민의 자본이 된다. 국가 부채는 나쁜 것이지만, 쓰기 나름이다.
기업이 대출을 받아 소비를 하는 것을 '투자'라고 한다. 국가는 왜 대출을 받으면 무조건 나쁜 것인가. 그럼 우리보다 잘사는 10개 나라는 왜 답도 없는데 계속 국가부채를 늘려가는가? 애초부터 우리보다 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훨씬 높은 이들 나라는 오늘만 살기로 작정을 한 것인가?
코로나가 지나가고 있다. 우리를 돌아볼 시간이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비교적 잘 틀어막았다. 그래서 국민의 빚은 늘어나고,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자살률은 여전히 OECD 최대이며, 출산율은 압도적으로 지구 최저다. 세계 12위라는 우리경제가 세계 1위가 된 들, 이것이 우리가 갈 방향인가?
정부 통계집을 한 장만 뒤적여도 힘겨운 국민들의 삶이 쉽게 드러난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나 ‘자영업자 대출 잔액’ ‘소득 1분위 소득 증감’ 같은 지표들로 굳이 증명해야 하는가? 진짜 모르는가?
진짜로 돈이 많은 사람’과 ‘진짜로 가난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이러스에 몰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학교 친구들 모임에도, 주말 성당 미사에도, 명절에 고향에도 내려오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경기가 생각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은 통계가 가져다 주는 착시다. 지난해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샤넬 등 이른바 ‘에루샤 3대 명품’은 국내에서 2조4000억 원 어치가 팔렸다. 이런 숫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와 더해져 평균값을 올린다.
지난해 일부 한국인들이 코로나를 뚫고 루이비통 핸드백을 1조 467억원 어치를 구입할 때(2019년 대비 33.4% 또 증가했다/ 2021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어느 한 쪽의 국민들은 가족을 걱정하며 오늘도 텅빈 지갑을 열어본다.
우리 언론도 늘 서민들을 걱정한다. 삶이 팍팍해졌다고, 국민의 삶이 나락에 떨어질 위기라고 진단한다. 그런데 그 해법으로 늘 정부의 재정 지출은 반대한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미국처럼 화폐를 찍어낼 수도 없는데.
80세의 미국 대통령은 한번에 수천조 원이 들어가는 재정지원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그야말로 커지는 격차에 대한 ‘태세전환’이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 나라는 달러가치만 지킬 수 있다면 돈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나라다. 미국 경제의 1/10도 안되는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뭘 할 것인가? 계속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온 국민이 한강에서 안타깝게 사망한 한 의대생을 애도하고 있지만, 나는 1월의 한 죽음을 기억한다. 지난 1월 28일 인천의 한 폐기물업체에서 출근한 지 사흘 된 근로자가 갑자기 작동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죽었다. 그는 ‘83세’였다. 그 청소용역업체 일용직 근로자는 왜 83세의 나이로 10미터 높이의 기계안에 들어가 청소를 하고 있었을까?
사람에게도 때가 있듯이 국가에게도 때가 있다. 북한의 침략을 막아야 하는 때. 도로와 제철소를 건설해야 하는 때. 민주화를 이룩해야 하는 때. 지금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돌봄’ 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12번째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는 바이러스로 ‘지치고’ ‘쓰러지고’ ‘포기하는’ 국민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
국가의 재정은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는가? 우리는 왜 재정을 아끼는가? 청소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낀 그 노인을 뒤로하고 ‘재정건전성’이 번듯한 나라가 우리가 진짜 만들고 싶은 나라인가. 우리는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 국가의 재정은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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