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현황 진단 및 제언
부모와 분리된 아이들 대부분
위탁 가정 아닌 보호시설 생활
출생신고 안되면 입양도 안돼
‘제2 정인이’ 사건 등 잇단 문제
입양아 상실감·낙인감 고려해
아동중심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친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동이든, 친부모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아동이든,
전문가들은 아동이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은 결국 ‘가정’이라고 말한다.
피치 못해 친부모의 곁을 떠나게 된 아동을 양부모가 감싸 안고 새로운
가정의 울타리에서 자라게 하는 입양은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정인이 사건’에 이어 경기 화성시에서도 양아버지가 두 살배기 입양아를 폭행한
사건이 최근 발생하면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입양 일선 기관에서는 정부가 관리 감독·실태 점검을 탁상행정으로 한다면,
오히려 입양가정에 상처를 안길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입양 감소와 시설 아동 1만여 명
보건복지부가 매년 입양의 날(5월 11일)에 발표하는 입양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국내외에 입양된 아동 수는 총 704명이다
입양 통계상 10여 년 전인 2010년만 해도 국내외로 입양된 아동 수는 2475명에 달했으나
△2016년 880명 △2017년 863명 △2018년 681명 등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줄었다.
국내 입양은 2012년 1125명에서 2013년 686명으로 줄었고, 2018년부터 300명대로 떨어졌다.
반면 전국의 집단시설에서 생활하는 보호대상 아동(0세∼고등학교 재학)은 2019년 1만607명에 달했다.
1만 명 이상이 가정의 보호 아래 자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입양이 활성화되지 못한 배경에는 자신의 핏줄이 아닌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풍조가 한국 사회에 여전하기 때문이다.
또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결혼생활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 현상도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해외입양을 제한한 영향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입양특례법이 자리 잡고 있다.
◇입양 막는 특례법, 보호출산제 필요
2012년 시행된 입양특례법 제11조에 따르면
입양을 보내려면 반드시 친부모 또는 미혼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이는 2010년 4건, 2011년과 2012년 각각 37건과 79건이던
베이비박스 아동이 2013년 252건으로 늘어난 이유다.
미혼모들은 자신은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 되지만 아이가
고아원으로 가기보다는 입양을 통해 새로운 부모를 만나길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출생신고서가 없는 베이비박스 아기는 입양이 안 되므로 대부분 시설로 보내진다.
2013년 입양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다.
지금도 베이비박스에서 연간 200명 정도의 아동이 발견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입양홍보회를 비롯한 입양 가족 단체에서는
보호출산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보호출산제는 미혼모가 신분을 밝히고 출산하는 것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거나
양육이 힘든 경우에 한해 출산지원시설에서 출산하도록 하고
시설로 보내지 않고 입양가정을 알선해주는 제도다.
김미숙 한국아동복지학회 감사는 “시설의 경우 1 대 1 보살핌이 어렵다 보니
아동의 정서적 안정이나 보호자와의 애착 형성 등에서 희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빛과 그림자’ 섞인 입양제도 개선
정인이 사건 이후 국회에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입양기관이 사후관리 결과를
지방자치단체에 의무 보고하는 등 민간 입양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입양체계를
공적 영역에서 관리 및 감독하는 내용의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우후죽순 격으로 발의된 상태다.
개정안 중에는 공공기관에서 입양아동이 12세가 될 때까지
매년 입양가정을 방문해 조사하자는 내용도 있다.
이에 대해 입양가정에서는 입양부모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법안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관리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석현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보호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입양은 성스럽고 중요한 작업”이라며
“정부는 공공성 강화의 틀을 너무 강조해 사무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입양아와 양부모 입장에서 정책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입양 전 위탁제를 도입해 입양 전에 아동과 예비 양부모가
서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입양심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입양기관이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결연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입양기관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는 입장이다.
스스로 아이를 돌볼 능력이 없는 미혼모들은 하루하루가 급한데,
언제 위원회를 열어 소집하고 서류심사를 하느냐는 지적이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입양은 까다롭고 전문적이며
사회적 책임이 필요한 사업, 아이의 인생을 180도로 바꿀 수 있는 사업”이라며
“입양 아동이 가진 특수한 욕구, 자라면서 느끼는 상실감,
사회에서 경험하는 낙인감을 헤쳐나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정교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주예 기자 ju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