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래도 들었던 의아한 한마디, '개그콘서트' 몰락의 '단서'
하성태 입력 2020.06.29. 15:06 수정 2020.06.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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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방송인 김구라가 진행하고 KBS가 제작하는 유튜브 웹예능
<구라철>이 <개그콘서트> 녹화 현장을 찾았다.
30기 신인 개그맨부터 최고참 김대희 등 개그맨 선후배들을 만난 김구라는 "왜 '개콘'이 재미없어졌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갖가지 분석과 속 시원한 직설이 난무한 가운데, 고참 박성호는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시청자 여러분, 저 화났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맨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개콘을 외면한다는 것은 여러분들께서 웃음을 버렸다는 얘기입니다.
웃음을 찾고 싶으시면 개그콘서트 다시 한 번 사랑해 주시고, 봐 주시면 새롭게 달라진 모습, 보실 수 있습니다."
농담과 진심이 적당히 섞인 읍소이자 다짐이었다.
김구라가 마지막에 만난 박성호의 호소가 눈에 띈 이유는 개그맨들은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는 호소에 의심할 여지는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은
갈수록 바닥으로 향했고, 존재감은 희미해져갔던 것이 사실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 177만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에서 김구라는 이런 마무리 멘트를 했더랬다.
"(개그맨들이)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해주시고! 제가 6개월 뒤에 프로그램이 없어졌을지,
계속하고 있을지(는), (시청자)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개그콘서트>의 21년
그럴 때가 있었다.
일요일 밤, '봉숭아학당'으로 끝을 맺는 <개그콘서트>의 클로징 음악을 들으며 한 주가 끝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한 주가 시작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가.
20%대 시청률을 호령하던 2000년대 중후반의 이야기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었다.
2010년대 들어 시청자들의 선택지도 넓어졌다.
'개콘' 이외 개그맨들은 <코미디 빅리그>에 둥지를 틀었다.
정치 풍자와 19금 개그가 가능했던 한국판 'SNL'이 출범하며 화제성을 독차지했다.
무엇보다 '개콘' 스스로도 길을 잃어갔다.
인기를 얻은 개그맨들은 여타 예능으로, KBS 외 타방송사로 떠나갔다.
스타 개그맨을 배출하지 못하는 사이, 개그의 소재 역시 빈약해져갔다.
그럴 때 손쉽게 빠지는 유혹이 바로 쉽고 자극적인 개그다.
여성이나 외모 비하를 담은 혐오 개그에 대한 지적이 늘어갔다.
시청률이 낮고 시청자들이 즐겨 보지 않으니, 그러한 비판 역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비교적 최근 선배 개그맨들이 투입됐지만, 한 번 외면한 시청자들을 되돌려 앉히기는 난망해 보였다.
'일요일은 개콘'이란 불변할 것 같은 편성 전략 역시 깨져버렸다.
그리고, 지난 26일 마지막 회를 끝으로 <개그콘서트>가 21년 만에 폐지됐다.
김구라가 내다본 건 6개월이었지만, 시청자들은 그 시간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니, KBS가 버티지를 못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KBS 개그맨 선후배들의 '스완 송'은 꽤나 절절했다.
코로나19로 객석에 관객들이 함께하지 않은 가운데, 그 객석에서 동료들의 연기를
바라보는 개그맨들의 눈물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화면을 스쳐 지나갔다.
추억의 코너들이 소환됐고,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던 개그맨들이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하지만, 과거 전성기 시절 특집 무대와 같은 화려함은 없었다.
<개그콘서트>가 배출한 스타 개그맨들도 적잖이 '결석'한 상태였다.
이날 방송의 전국 시청률은 3%. 말 그대로, 쓸쓸한 퇴장이었다.
마지막 회의 한 콘셉트마저, 어디서 본 듯한 코너가 배치됐다.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손님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소회를 늘어놓는 형식은 과거 MBC <명랑히어로>와 닮아 있었다.
이미 다채로운 형식을 도입하고 있었던 '개콘'이었기에 그리 거슬리진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진듯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갈갈이 삼형제'로 인기를 끌었던 박준형이 마지막이라며 앞니로 특유의 무를 갈며
눈물을 떨구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했다.
그렇게 이날 '막방'은 '참 많은 코너가, 많은 연기자들이 있었구나' 하는 회한과
21년이란 참으로 길었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시원섭섭함과 이 장구한 역사의 개그 프로그램이
더 이상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고 막을 내린다는 아쉬움이 공존할 만했다.
특히 '왜 사람들이 더 이상 개콘을 보며 웃지 않을까'는 곰곰이 되짚어 볼 만한 주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그콘서트>의 종영은 빠르게 변화하는 방송환경을 포함해 어떤 시대정신 혹은
동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시대정신을 읽기에 더 없이 좋은 텍스트가 바로 '개콘'의 막방 2주 전 방영된
KBS <다큐 인사이트>의 '개그우먼'편이었다.
개그우먼들의 어제와 오늘
박나래는 어느 순간 '비호감'으로 찍혀있었다고 했다.
그는 2006년 차석으로 등용된 KBS 공채 21기였다. 박나래의 나이는 22살이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개그를 하고 싶었던" 박나래는 어느 순간 <개그콘서트>에서 볼 수 없었다.
박나래와 동기인 김지민은 "개그우먼인데 왜 예쁜 척 해",
"언제 웃길 거야"란 시청자들의 댓글이 일상이었다고 했다.
공채 23기인 오나미는 방송국에 오자마자 선배들로부터 "이번엔 너구나"란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박나래도 들었던 그 의아한 한 마디는 '못생긴 여자 개그우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너구나'로 찍힌 여성 개그맨들은 여지없이 외모 비하 개그에 활용됐다.
<개그콘서트> 초기에 투입됐던 김숙은 계속 "까였다".
그러다 선배 송은이의 충고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꽃피운 캐릭터가 '따귀소녀'였고, 이후 SBS로 자리를 옮겨 '난다김'을 성공시켰다.
이후, 김숙은 설자리가 없어졌다고 했다.
김숙은 KBS 공채 12기, 송은이는 공채 10기였다.
몸이 작아 선배 개그맨들의 딸 역할을 도맡았다던 송은이는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우였다.
안정적인 진행 능력이 돋보였고, 본인도 "평생 나는 방송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국놈'들은 냉정했다.
남자들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로 떠오르며, 방송국은 송은이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송은이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후 송은이는 김숙과 팟캐스트 <비밀보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KBS 공채 1기인 이성미는 "내가 잘 해야 후배들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악착까지 뛰어다녔다고 했다.
"여자 개그맨들이 몸을 사리지 않는다"라고 말한 이성미는 이러한 개그우먼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
"시청자들이 원해서였을까, 방송국이 원해서였을까"라고 반문했다.
2020년의 관점으로 되돌아보자면, 그건 남성 위주의 방송국 시스템이 '편해서' 만든 장벽이었을 것이다.
<다큐 인사이트>는 이들 여성 희극인의 '자기 목소리'와 함께 김상미 PD의 입을 빌려
<개그콘서트>를 포함, 대한민국의 예능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또 개그우먼들을 소비했는지를 깔끔하고 임팩트 있게 정리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그 남자들의 판에서 소위 병풍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김지민처럼 '예쁜 여자'라거나 박나래와 오나미처럼 '못생긴 여자'로 스테레오 타입화 됐다.
주요 역할을 맡은 남성들의 뒤를 받쳐주는 병풍 역할이 대부분이었고,
송은이처럼 여성 진행자 중 한 명을 맡는 것도 감지덕지여야 했다.
이걸 견디지 못하면 스스로 도태되거나, '개콘' 무대에서 물러나야 했다.
<무한도전>으로 촉발된 리얼 버라이어티의 유행은 여성들의 자리를 급격히, 한층 더 축소시켰다.
개그우먼들은 화면 밖으로 밀려났다.
JTBC <아는 형님>의 여성 버전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대에 장시간 방영됐던 KBS <여걸식스>는 아득한 옛날 일이 됐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관찰 예능'이 대세가 되면서 조금 해소됐지만,
그 바탕에 깔린 대상화나 타자화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중 송은이와 김숙 등이 참여한 <무한걸스>는 그 자체로 굉장히 희귀한 경우였고 오래 지속되긴 했으나
'마이너'의 위치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다큐 인사이트>가 요약한 이러한 대한민국 '예능' 약사(略史)는 <개그콘서트>의 마지막 방송과
맞물려 작지 않은 울림과 교훈을 준다.
과연 시청자들은 2020년 어떤 웃음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단서 말이다.
요즘 <개그콘서트>는 왜 '재미'가 없었을까
<구라철>에서, '개콘' 마지막 방송에서 개그맨들이 꼽은 "개콘이 재미없는 이유"에 대한 변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유튜브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급격히 변화된 트렌드를 KBS가, 개그맨들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
'공영방송 KBS'의 심의가 특히 제약이 많다는 점, 그런 가운데 스타 개그맨들을 배출하지 못했고
'재미'의 포인트 자체를 놓쳤다는 점 등등.
당사자들의 목소리이니만큼 대부분이 옳은 지적일 것이다.
좀 더 자극적이고 화끈한 영상을 언제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경쟁자가 유튜버로 확대됐고, 개그맨들까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시대다.
선배들 다수는 전체 스케줄을 할애해야 하는 '개콘'을 떠나 여타 예능에서 활동 중이다.
공개 코미디의 수명은 정말 끝이 난 걸까.
<다큐 인사이트>는, <개그콘서트> 마지막 방송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를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공개 코미디의 경쟁자는 유튜브가 아닐지 모른다.
도리어 3~4분, 5~6분 분량의 개그는 유튜브 영상으로 소비되기 딱 적합하다.
유튜브에서 과거 <개그콘서트>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이 그 증거다.
결국 새 부대에 담길 새 술이 문제였다. <다큐 인사이트>가 정리했듯,
새 시대의 시청자들의 '니즈'가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외모를 비하하고, 여성들을 스테레오 타입화하는 것이 문제인 것은
다른 타자나 소수자도 똑같이 비하의 대상에 올릴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결국 웃음의 소재를, 풍자의 대상을 어디서 구할 것이냐의 문제다.
2010년대 중반까지 외부적 요인으로 풍자의 요소가 급격히 약화된 것은 유감이나
그 이후 <개그콘서트>가 약자를 비하하거나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하는 쉬운 선택으로 연명했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몇 년 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혈전으로 유명세를 더한 미 NBC < SNL >의 그 날선 풍자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유튜버의 먹방이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따라해서도, 따라할 수도 없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서도 곤란하다.
가장 '트렌디'하다고 평가받는 개그 무대는 뉴트로 열풍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탑골공원'에 머무를 수 없지 않은가.
무턱대고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KBS 프로그램인 <스탠드업>이 증명한 바, 2020년의 시청자들은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도,
훨씬 더 직설화법에 능동적인 세대라 할 수 있다.
이미 tvN의 < SNL >이 그 가능성을 증명한 바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부활할 KBS 개그 프로그램이 새 부대에 새 술을 담길 바라는 바다.
<개그콘서트>에서 자취를 감췄던 박나래가 <스탠드업>의 진행을 맡는 파격을 보여줬던 것처럼.
좀 더 너른,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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