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슬'이 쏘고 '김다비'가 터트리고..'부캐'에 홀리다
안진용 기자 입력 2020.05.25. 10:50 수정 2020.05.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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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른 자아로 ‘두 캐릭터’ 활동… 방송가 ‘부캐 열풍’
기존 연예인, 새이름·스타일로
‘제2 캐릭터’ 구축…대중과 소통
허구·현실 넘어 ‘신선함’ 어필
설정된 자아 인정하는 B급놀이
지난 11일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에 신인 가수 김다비가 출연했다.
그는 “빠른 45년생”이며 “‘많을 다’에 ‘비 비’를 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태어난 사연 있는 둘째 이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데뷔곡 ‘주라주라’로 아이돌 가수들의 놀이터인 MBC ‘쇼
음악중심’에도 출연한 김다비의 정체는 방송인 김신영.
하지만 그는 “김신영 아니냐”는 다른 출연진의 질문에 “신영이는 신영이고
나는 둘째 이모 김다비”라고 거듭 강조하며
“우리 신영이가 작사해 준 ‘주라주라’로 내 묵은 한을 노래로 풀고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른바, 연예인이 또 다른 자아로 활동하는 ‘부캐’(副캐릭터·본래 이름이 아닌 부수적인 캐릭터로 활동하는 것) 놀이다.
김다비의 정체가 김신영이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대중 역시 이 설정에 적극 동참한다.
연예인과 대중이 암묵적인 약속을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새로운 놀이법이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자기 부정의 묘미 = 방송인 박나래 역시 부캐 놀이에 뛰어들었다.
그의 또 다른 자아는, 안동 조씨의 핏줄이라 주장하며 남다른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조지나.
박나래의 대표작인 MBC ‘나 혼자 산다’에 등장했던 캐릭터인데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으며 그가 출연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인
케이블채널 올리브 ‘밥블레스유2’에도 자주 등장한다.
지난 14일 방송 분량에서는 게스트로 참여한 전 프로 골퍼 박세리가 조지나에게 관심을 보이자
“어머 쉐리 언니, 돼지 돼지 잇팅(eating) 잇팅,
소주 소주 드링킹(drinking) 드링킹”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 초 기존 히트곡을 절묘하게 비튼 노래를 발표하며
유튜브를 뜨겁게 달군 카피추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정체는 2002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추대엽이다.
20년 가까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는 카피추라는 부캐로 활동하며
단박에 유튜브 채널 구독자 37만 명을 모았다.
라디오에 출연한 그에게 ‘정말 추대엽 아니냐?’는 질문이 쇄도하자
그는 “자꾸 오해를 하시는데, 제 가훈이 ‘정직’이다.
저는 욕심 없는 남자 카피추”라고 재차 자신을 부정했다.
이들의 부캐 놀이를 보고 있노라면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지난해 11월 방송인 유재석이 ‘국민 MC’가 아니라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서 ‘아침마당’에 출연한 바 있다.
그는 “이 시간에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생방송 하는 것이 처음이라 떨린다”며
“제 의사와 상관없이 트로트를 시작하게 됐지만 발을 들여놓은 이상 트로트계의 정상에 오르겠다”고 능청을 부렸다.
KBS 관계자는 “당시 유산슬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진행한 트로트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된 캐릭터였다.
하지만 경쟁 방송사 간 장벽을 허물며 기꺼이 출연했다”며
“연예인과 팬, 그리고 각 방송사 제작진까지 동참하며 부캐 놀이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과 허구 장벽 허문, B급 놀이 =
특정 연예인이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것은 방송가의 오랜 문법이다.
대다수 연예인이 자신이 선보인 콘텐츠 속 캐릭터로서 대중에게 먼저 어필하기 때문이다.
한류스타 이영애나 이민호 역시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가수 아이유와 수지 역시 각각 히트곡 ‘좋은 날’과
영화 ‘건축학개론’이 매개가 돼 ‘국민 여동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부캐 놀이는 이런 문법의 보다 진보한 버전이다.
기존 캐릭터 구축은 작품 속 허구와 작품 밖 현실을 구분 지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리얼 버라이어티 혹은 관찰 예능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작품 속에나 존재할 법한 캐릭터가 현실 속으로 뛰어든 셈이다.
배우들도 출연하는 드라마 속 캐릭터로 SNS를 개설해 운영하는 등 대중과 새롭게 소통하고 있다.
SBS ‘하이에나’의 김혜수,
tvN ‘호텔 델루나’의 아이유,
MBC ‘그 남자의 기억법’의 문가영이
각각 극 중 캐릭터 이름으로 SNS를 만들고 직접 운영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대중도 인터넷상에서
아이디나 아바타를 통해 별도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런 놀이에 익숙해져 있다”며
“그리고 연예인들이 대중을 감쪽같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허술하게 또 다른 자아를 주장하는 B급 정서 역시 즐거움을 주는 포인트”라고 분석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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