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확대를 공개 언급했다.
이어 지난달 25일 교육개혁 관계 장관 회의 모두발언에서는 “입시 영향력이 크고 경쟁이 몰려있는
서울 상위권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이 그 신뢰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며
“서울의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수·정시 비중의 지나친 불균형 해소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조국 사태’ 이후 수시 제도에 대한 불신이 표면화되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교육계는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주문에 우려를 드러냈다.
진보성향 교수와 교사, 학부모 등 1500여명은 지난 4일 정시 확대를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정시 확대에 반대해온 시·도교육감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자체 대입 개편안까지 내놓았다.
앞서 지난달 31일 전국진학지도협의회와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3305명의 전국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69.7%가 ‘대입개편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며
정시확대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교육계와 정치권을 막론하고 정시확대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최근에 대학입시를 통과한 20대 청년들의 의견은 어떨까.
정시 혹은 수시로 직접 대입이라는 관문을 통과해본 이들이 겪은 정시와 수시의 공정성은 몇점 정도일까.
국민일보는 최근 5년 사이 ‘대한민국 입시’를 견뎌내고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20대
대학생 8명(수시입학 6명, 정시입학 2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교의 스펙 몰아주기…“항의 하니 공부 잘했어야지, 하더라”
학생 8명 중 5명은 “문제가 있지만, 두 제도만 비교하자면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답했다.
5명 중 2명은 수시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었다.
수시로 대학에 입학했는데도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답한 것이다.
반면 ‘정시가 공정하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공통으로 “수시가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수시 전형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복잡해서 저소득층이 접근하기 어렵고 고소득층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지적하는 건 과정의 공정성이다.
강태헌씨(학생부 종합전형·서울대학교 이공계열 2017년 입학)는 “정시가 고소득층에 더욱 유리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수시를 대비하는 걸 제대로 봤다면 그런 말을 못 할 것”이라며
“SKY나 카이스트, 포항공대에 입학한 이공계 학생들의 자기소개서에 고등학생이
쥐를 가지고 실험하거나 전자현미경을 쓰는 내용이 담겨있다.
저소득층 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기회를 잡겠나”라고 비판했다.
김민수(학생부 종합전형·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계열 2018년 입학)씨도
“자기소개서 첨삭, 앞으로의 대외 활동 계획 수립, 내신 관리 등등 이것저것 컨설팅 받으면 100만원은 훌쩍 넘긴다”며
]“스펙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주목받기 위해 화려하고 스케일 큰 대외활동을 하려면 당연히 자본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잘하는 학생에게 스펙을 몰아주는 고등학교의 관행도 비판했다.
김모씨(학생부 종합전형·2018년 S대 입학)은 “나한테 상을 줄 테니 일단 대회를 나오라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생활기록부를 보면 장려상이나 동상이 많다”며
“입시 결과가 잘 나와야 인재가 우리 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스펙을 몰아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스펙 몰아주기’는 “수시가 더 공정하다고”고 답한 2명의 학생들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권민서(특성화고 특별전형·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2019년 입학)씨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가
부당하게 학교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적이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네가 공부를 더 잘했어야지’라고 말했다더라”라고 밝혔다.
명확치 않은 입시 기준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모(정시·S대 문과계열 2015년 입학)씨는 “수시의 대표적인 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과 논술 전형은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다”며
“채점자의 주관적 평가가 필수불가결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합격자는 왜 떨어졌는지, 합격자는 왜 합격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수능은 대학에서 요구하는 사고력이 반영돼 있다.
그런데 수시로 합격한 친구들이 수능에서 훨씬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며
“사고력 대신 현행 수시 교육을 더 우선시한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쯤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정시가 유리하다는 건 관련 연구의 거의 일치된 결론이다.
대학교육협의회 자료를 보면 국가 장학금을 받는 대학생은 학종(수시의 일종) 입학생이 45.3%,
수능(정시) 입학생 35.2%로 학종이 훨씬 높았다.
정시 입학생 중 국가 장학금 대상이 되지 않는 고소득층이 많다는 뜻이다.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수시가 계층에 따른 영향을 정시보다 덜 받는 게 분명하다.
따라서 수시가 정시보다 더 공정하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대입을 겪는 이들이 말하는 건 이런 결과의 공정함이 아니다.
과정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지적하고 있다.
“정시 확대되면 일반고 SKY 못간다”
응답자 8명 중 2명은 “수시가 더 공정하다”고 했다.
이모씨(학생부종합전형·고려대학교 2019년 입학)는 “고등학교 내내 노력했다면 상응하는 결과가 생활기록부에 충분히 제시될 것이다.
생기부는 내신 시험과 학교생활 성실도를 기초로 작성되므로 공정하다”라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자사고 및 특목고와 일반고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차이는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대학이 차이를 구분하여 평가하고 있을 거라 본다”고 답했다.
이씨는 또 “입시 상담비용을 제외하면 수시가 돈도 훨씬 적게 드는 것 같다”며
“정시는 고등학교 3학년 1년 내내, 더 일찍 준비하고자 할 경우 2년 이상까지도 투자해야 하는 만큼
비용 면에서 부담이 더 높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모씨(학생부 종합전형·2018년 S대 입학)는 “정시가 확대되면 일반고에서 SKY를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실제 선생님들도 정시로 명문대 입학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며
“그나마 수시가 자본의 격차를 줄여주고 있는데 일부 사례를 기준으로 정시 확대를 하는 것은 후퇴하는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나머지 1명인 권씨(특성화고 특별전형·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2019년 입학)는 “공정한 제도는 없다”고 답했다.
그는 “수 만 명의 학생들 각자에게 맞는 전형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학교 활동을 좋아해서 수시가 더 공정하다는 판단하에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해나갔다.
반면 수능 준비를 선호하는 친구들도 많았다”고 답했다. ‘공정함’은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능 2번 보기, 컨설팅 단속…그들이 내놓은 해법
강씨(학생부 종합전형·서울대학교 이공계열 2017년 입학)는 ‘수능시험 난이도 상승’과 ‘수능 시험 두 번’을 제안했다.
그는 “현행 수능제도 역시 한 번에 고등학교 3년과 미래를 걸기 때문에 폐해가 있다.
수능을 두 번 보는 것은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며 “평균 점수로 하든 최고점으로 하든 방법은 추후 논의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는 또 “아울러 더 어려워지면 좋을 듯하다. 지금은 실수 하나하나가 치명적이다.
변별력을 주도록 문항을 배치해서 등급 간 격차를 키우면 실수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씨(정시·S대 문과계열 2015년 입학)는 수능시험 수험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첫 번째 수능 시험을 쳤던 학교의 시설이 굉장히 낡았다.
방송용 스피커는 교실에 2개밖에 없었고, 음질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
특히 영어 듣기를 할 때 잡음이 너무 많이 섞여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며
“같은 시간 안에서 같은 개수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능에서 환경의 문제가 발생하면
수험생들의 시간은 뺏기고 심리적인 압박감은 커진다”고 밝혔다.
이외에 인터넷 무료 강의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권씨(특성화고 특별전형·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2019년 입학)는 학교의 스펙 몰아주기를 방지하는 제도 마련을 주장했다.
그는 “고등학교가 실적에 눈이 멀어 몇몇 학생을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를 준비하는
많은 학생이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법이나 규제가 엄격히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학생부종합전형·고려대학교 2019년 입학)는 학교별 격차를 줄일 방안 모색을 촉구했다.
그는 “학교 레벨이 수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학생들 책임인가”라며
“학교마다 주어진 커리큘럼이 달라 생기부 질에 차이가 나고, 생기부가 입시에 미치는 영향을
보완할 수 있는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수시 컨설팅 단속 강화, 수시 합격 사례 공개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준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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