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물

송기원

참도 2019. 3. 1. 09:38



국선도 수련인 - 소설가 송기원
 
 
 
눈빛 맑은 동자승이 토굴 앞에 서있네

한 사람의 간략한 연대기가 이쯤 되고 보면 '극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과장은 아니리라.
작가 송기원(53).
탐미주의 문학에서 진보 문학까지 아우르며 온갖 기행을 일삼던 문단의 기인,
지금은 계룡산 대자암에 딸린 토굴에서 수행·정진하는 구도자까지 그이의 정체를 설명하는 단어는 폭넓다. 갑사에 딸린 내원암 뜰에서 짧은 머리에 잿빛 승복 차림의 송기원을 만났을 때 그 모든 수식어보다
'눈빛 맑은 동자승'이 떠오른 것은 웬일일까.
전체적으로 날렵한 몸피에 반지르르 윤이 나는 복숭아빛 얼굴을 보노라니 쉰셋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내원암에 내려오는데 꼭 대처에 나오는 것처럼 설렙니다."
그이가 머물고 있는 토굴은 내원암에서 다시 이십 분쯤 고갯길을 걷는 거리에 있으니 그도 그럴 만했다.
스님의 갤로퍼를 빌려 타고 경사진 숲길을 굽이굽이 올라 대자암까지 가는 데 한참이 걸렸다.
대자암에서 다시 오솔길을 걸어가니 보일러, 전기, 노트북까지 갖춘 토굴이 언덕 밑에 감춰져 있었다.
흙에서 뿜어 나오는 습기 때문에 곰팡내가 머릿속에 자욱이 스며들었지만,
정작 주인은 만성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조그만 탁자 위에 도스(DOS) 체제의 노트북 하나가 있고, 탁자 밑에는 불교 관련 책이 몇 권 보였다.
인도 여행에서 돌아와 일 년 동안 『안으로의 여행』을 쓴 곳이 바로 이 방. 간단한 이불과 벽에 걸린
옷 몇 벌, 그리고 문 밖엔 바로 나무들 밑동이 훤히 내다보였다. 마음 공부하기엔 그만이지 않은가.

신작  『안으로의 여행』(문이당 펴냄)을 보면 그이에게 마음 공부와 장소는 영혼의 짝패와 같은 것이다.
작가의 분신이라고 해야 할 주인공 박연호가 잡지사 기자를 그만두고 인도로 가서 내면을 들여다 볼 때도
 그저 그런 아쉬람을 택하지 않았다. 힌두교의 성지요,
 갠지스강의 발원지인 히말라야 근처의 강고트리까지 찾아가는데, 그곳은 9월부터 눈이 내리면
인적이 끊겨 다음해 5월까지는 자연스럽게 고립무원이 되는 천혜의 수련장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뒤 존재의 이중성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송기원의 성실함은
타고난 자질이 아닐 수 없었다.



스스로 선택한 영혼의 시험

다시 내원암으로 내려와 커다란 감나무 밑 평상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제일 먼저 국선도
수련과 인도 여행이라는, 언뜻 보기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 구도 편력부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가 90년에 소설가 김성동 씨를 따라 국선도 도장에 나간 이후, 존재의 화학적 변화를 겪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호흡 수련을 하면서 진동이 오고, 시커먼 가래를 사흘 동안 쏟아내다
 담배를 저절로 끊는가 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옛일이나 앞일을 보게 되면서 정신세계에 뭔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고 한다.

"국선도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태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선 몸이 변했지요.
1분 호흡의 한계에서 지금은 2분 호흡으로 넘어와 있습니다.
서른 번 호흡하면 한 시간이 그냥 지나간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전의 제 삶이 워낙 퇴폐적이고 강퍅해서 별도의 마음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인도에서 다양하게 명상 수련한 이야기를 꺼내며 그이는 행여나 국선도에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한 번 빚진 것을 잊지 않는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로서 당연한 걱정이리라.
 그 때문에 고마움을 갚고자 『청산』을 써서 일반인들이 막연히 뜬구름 속 얘기로 알고 있는 신선 세계
, 도의 세계를 조근조근 감칠맛 나게 밝혀 놓지 않았던가.

그이가 마음 들여다보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은 호흡 수련을 하다가 조금만 감정이 움직여도
흐름이 무너지기 일쑤여서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는 호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나서였다.
그런데 눈만 감으면 어둠 속에서 헛된 집착이나 황폐한 관계가 주던 절망감, 욕망, 자신에 대한 모멸감,
대상을 알 수 없는 살기(殺氣)가 떠올라 괴로웠다. 그이의 표현을 빌자면 "업장이 깊어서"였다.

호흡이 무너지고 환영에 시달리다 못해 술로 도피하기를 몇 번. 그이는 결국 정면 돌파를 결심한다.
시험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은 시험을 받는 것이라 했던가.
 송기원의 인도 여행 8개월은 이렇게 해서 기획된 영혼의 시험기였다.
"강고트리에서 끔찍한 장면들만 만나니까 명상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그런 생각들을 한 번 정식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내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살아온 세월이 더럽고 악취나는데 거기에 침을 뱉는 건 치사하지 않은가 싶었지요. 매일처럼 환영과 싸우면서 내 자신의 추악함을 인정하니까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여 어울려 놀다

바로 그 곳에서 그이는 국선도의 하단전보다 단전을 하나 더 내려 요가에서 말하는 6차크라
회음을 바라볼 장소로 삼았다.
자신의 삶이 그러했듯 마음을 내려(下心) 더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책도 필기구도 가져가지 않은 이국 땅에서 이십사 시간 내내 마음을 바라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으리라.
 
그이는 어둠 속에서 멀고 가까운 과거의 장면, 장면과 만나며 자신과 친해지다 못해 어울려 놀기에 이르렀다.
"내 안에 어떤 존재감이 느껴진 적이 있었어요.
한 살쯤 됐나 싶은 어린애였는데 누군가한테 마구 매달리다가 '앵…'하고 울음을 터뜨려요.
실제로 그 울음소리가 귀에 가득 들렸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어머니가 개가해 가면서 나를 잠시
외가에 맡겨두었는데 떨어지기 싫어 매달리던 광경이었어요.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인데 참 신기하지요."

소설에 나온 것처럼 사방이 잿빛인 고원지대 어느 고갯길에서 한 점 푸른 밭뙈기를 발견했을 때,
그이는 그 자그만 생명이 안간힘을 쓰며 매달리던 어린 시절의 자신 같아 실제로 버스 차창에 머리를
 박으며 오열했다. 의식 가장 밑바닥에 있던 자신의 아픔·갈증과 만나 어우러지자
그 후론 생각이 떠올라도 고통스럽지 않고,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었다.
송기원 자신이 바위로 된 섬이 되고 생각은 물이 되어 흘러가는 꼴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생각이 감정을 일으키지 않았다.


자신(自我)이 없어지는 체험을 하다

그쯤에서 그이는 강고트리를 떠나 안나푸르나산으로 향한다.
 아마도 무의식 가운데 다음 단계 공부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으리라.
해발 5,400 미터의 안나푸르나는 오르는 것 자체가 구도에 다름 아닌 험악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즈음에는 해가 지면 잠들었다가 밤 열두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세 시간
 명상에 잠기는 것이 일과처럼 돼 있었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고원에서 옷이 찢겨지고,
눈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시력을 잃어가며 그이는 무엇을 찾아 헤맨 것일까.
무엇이 그이의 삶을 그처럼 고양시키고 순연(純然)하게 했을까. 고통인가, 절망인가,
 아니면 죽음보다 깊은 애증이었을까.

"어느 날 유리창도 없는 통나무집에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가 열두 시쯤 퉁기듯 일어나 또 앉았는데,
글쎄 내가 안 보이는 겁니다. 피부 감각도 없어지고, 안팎 구별도 없고, '나'란 존재감도 없어지고,
 의식이나 생각의 흐름도 없고…… 깜깜했어요.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왈칵 두려워졌습니다.
한참 있으니까 저 먼 곳에서부터 밤에 들불 번져오듯 의식이 돌아오더군요."

그게 바로 무(無)일까.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게 혹시 깨달음일까.
그이는 날이 밝는 대로 이틀에 걸쳐 겨우 갈 길을 하루만에 걸어갔다.
 넋을 빼놓은 사람처럼 넘어지고 깨지며 걷고 또 걸은 것이다.
그 상태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자신을 내몰았기 때문이었다.

'내친김에 남방불교 쪽으로 가보자.' 운동화 앞창이 덜렁대도록 헤매며 그이가 다다른 곳은
 미얀마의 어느 명상센터였다. 그 곳의 명상 지도 스님은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바라보라고 일러주었다.
이름하여 위빠사나, 관(觀). 이미 했던 공부였다.
그 동안 어느 책에도 없는 자신만의 명상 공부를 한 것이었다.
 아침이면 큰 홀에 모여 '앉는 명상(sitting meditation)]이며 '걷는 명상(walking meditation)'을 했다.
 왼발 듬, 왼발 내리려 함, 왼발 내림, 오른발 듬, 오른발 내리려 함, 오른발 내림.
행동과 생각을 일치시켜 마음과 몸을 오롯이 한 곳으로 모으는 연습이었다.


단전의 열기가 피부를 태우다

깊은 집중에 이르기를 한 달여, 그이에게 또 한 번 일이 터진다.
어느 날 아침 손바닥에 물을 묻혀 뺨을 쓰다듬었는데 껍질이 후루룩 벗겨진 것이다.
다른 쪽 뺨을 만지자 이번에는 불에 덴 듯 타버렸다. 어깨에 닿으면 어깨의 피부가 벗겨지고,
 손바닥 닿는 곳마다 쓰라렸다.
"처음엔 주화입마(走火入魔)인가 싶었어요. 미얀마 스님들이 이틀에 한 번씩 개별 면담을 통해
지도를 해주었는데, 스님들도 무슨 일인지 몰라 당분간 쉬라고만 해요. 당연하죠.
그 사람들한테는 기(氣)라는 개념이 없으니."
호흡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계속 바라보자 자신도 모르게 열두 시간 이상 단전호흡이 돼버렸고, 그 결과 내부의 열기가 손바닥 끝으로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이는 귀국해 계룡산에 칩거하며 불교 공부를 하면서 안나푸르나에서 깜깜하게 자신이 사라져버리던
일이 무얼 뜻하는지 알아냈다고 한다. 모든 생각이 흘러나와 사라지는 무의식의 밑바닥,
그 심층을 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작은 나(小我)'를 벗어나 '진아(眞我)' 또는 '우주적인 감각'을 얻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무의식이야말로 커다란 생명의 덩어리요 가치이며, 에너지이고 창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로소 그걸 깨달은 거지요. 고통이나 컴플렉스야말로 나를 이끌어온 가장 큰 스승이었던 겁니다.
사생아라는 치부, 왜곡된 도덕 관념, 위선적인 삶,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가장 값진 보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백치에 가깝다고 그이는 단언한다.
자신을 짓누르던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나면 거기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
 바로 그때 우주 감각이 싹트고 모든 종교나 사상의 근본 마음이 싹튼다.
단전호흡에서 말하는 양신(陽神)이나 신선사상의 도(道), 그리스도의 사랑, 붓다의 자비,
유교의 인(仁)이 바로 이 무의식의 밑바탕을 생활 전역에 확대한 것이라는 얘기다.

무의식 속에 잠재한 무한한 능력을 깨닫고 나면 동물이나 일체 사물과도 생명 대 생명으로 만나는
 평등심이 회복된다. 분별심만 없애면 모든 것이 부처요, 모기 한 마리, 꽃 한 송이라도 버릴 것이 없다.
이처럼 우주 삼라만상의 값어치를 인정하는 평등 사상이 깊어져야 속도 조절 능력을 상실한
 자본주의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몫의 공부를 스승에게 미루지 말라

그이는 또 사람들이 초월세계나 도(道)에 대해 편견을 품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잘못된 명상이 낳은
 부작용이라며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명상이나 내면 탐구의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는데, 그게 바로 신비주의입니다.
나에게서 도망치는 태도, 현실 도피는 진정한 구도자의 자세가 아니지요.
 무당의 접신 상태나 기존의 종교들은 신과 인간을 상하관계로 설정한 것 아닙니까?

결국 자신이 간직한 무한한 잠재력의 싹을 잘라버리고 절대적인 어떤 존재에게
 제 몫의 공부를 맡겨버리는 꼴이지요. 진정한 정신세계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입니다."
이것은 분명 97년에 내놓은 『청산』과는 다른 생각이었다. 청산거사에게는 스승이 있었고,
 단계별 수련이나 마음 공부도 모두 스승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 행해지지 않았던가.
기자의 지적에 그이는 고개를 끄덕여 그 동안의 변화를 인정했다.
 『정감록』과 같은 비결서를 읽고 누군가 영적 스승이 나타나서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의 마음 공부를 놓쳐 버리는 어리석은 구도자들이 계룡산만 해도 적지 않다고 했다.
 기인이나 신선, 도인, 주문(呪文)에 대한 환상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허상이라는 것이다. 전생이나 후생에 대한 관심 역시 자신 안에 가장 큰 보물(고통이나 컴플렉스)을 보지 못하고, 현생의 삶을 무시하는 쪽으로 발전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부처님 생전에는 인도에서 워낙 윤회론이 왕성해 현생의 삶을 방기하다시피 하니까 오히려 윤회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한테도 현생의 생사 문제에 집중하라고 일렀어요. 윤회가 불교의 핵심이 된 건 부처님 사후 유식론이 일어나고 대승 불교가 세를 넓히면서 부터지요."

확실히 그이는 근본불교에 심취해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불교 역시 진아와 영혼의 또 다른 출입구일 뿐,
그이에게 모든 종교와 사상은 하나로 통합된다. 그래서 《월간 정신세계》에 바라는 점을 말해달라는
 주문에 그이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조언했다.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단체, 수련기관끼리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안타까워요.
 들어가는 문은 다양하지만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돼 있는데 상대의 장점을 대우하고 인정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없습니다. 《월간 정신세계》가 그 역할을 맡아야지요.
서로 공개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미신이나 신비적인 면을 제거할 수 있고 더욱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감정을 바라보기

그이는 요즘 『안으로의 여행』후속 편을 쓰느라 분주하다.
그 작업이 끝나면 2,500년 전 왕족 출신의 붓다와 오늘날의 비천한 민중 출신 붓다가 만나는 얘기인
『청년 붓다』를 쓰기 위해 인도에 다시 한 번 다녀올 계획이다.
올해 겨울, 그이는 스님과 함께 '정말 재미난 공부'인 탁발을 다녔다.
어린애 울음소리 하나 없고 노인들만 있는 촌구석으로 탁발을 다니는데, 스산하고 황량한 겨울 풍경이
안으로 밀려들더니 어느 순간 자신과 하나가 되더라고 했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무의식의 밑바닥이 보였습니다."
그럴 때면 깨달음과 일상 생활은 한 줄기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현실을 관통하며 껴안는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은 소설 작업에 그대로 이어진다.

"구도소설이라 못 박아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문학 자체가 구도의 과정 아닙니까?
지금 소설이 독자한테서 외면 받는 건 보이는 세계에 집착한 결과입니다. 외면 당해도 싸지요.
보이지 않는 세계, 무의식의 세계야말로 확장된 리얼리즘의 세계요, 소설의 본령이 돼야 마땅합니다."

그이는 자리를 정리하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구석이 있어 아직까지 토굴에서 지내고 있지만 확신이 들면
세상으로 나갈 거라고 했다. 믿지 못하다니? 그처럼 처절하게 자신의 밑바닥을 본 사람에게 두려움이
남아 있다니? 그러나 더 캐묻지 않기로 한다. 호흡을 놓아버리자 오히려 피부 호흡이 열렸다는 그이 아닌가. 마음 들여다보기 자체도 내던지고, 자신을 벗어나야겠다는 욕심마저도 버리겠다는 다짐이 오히려
 팽팽한 긴장으로 다가온다. 사로잡히고, 놓고, 마침내 일체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바라보기…
… 변함없이 세상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유명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 퍼핏과 점심55억 가상화폐 사업가쑨위천  (0) 2019.06.05
개미 박사 최재천  (0) 2019.05.22
빌게이츠 화장실 개선 노력  (0) 2018.11.16
김규환명장  (0) 2018.09.06
원로주먹 조창조 80순 출판기념회  (0) 201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