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최순실이 개성공단 중단 말했나"김유리 기자 입력 2016.11.29 10:00 댓글 504개
[인터뷰]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이종덕 영이노폼 대표,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 윗선 지시라고 미안하다고만 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면 그 때는 8일 밤이나 9일 오전이 될 거다.
통일부가 설 연휴인 이 이틀 동안 연달아 개성공단기업협회 에 전화를 걸었는데 하루만에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후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군사 작전하듯 한 순간에 진행됐다.
”
남북통일의 시금석으로 평가됐던 개성공단이 ‘잠정 중단’됐다. 2월10일 이후 11월28일 현재 293일째다. 남북은 그동안 교류가 전면 중단됐다. 급작스럽게 결정된 개성공단 잠정 중단 발표가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1단계 2차 모집에 선택돼 입주하게 됐던 이종덕 영 이너폼 대표는 28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새로 마련한 본사·공장에서 만나 “개성공단 입주는 사실상 ‘로또’였다”며
“지금은 화장실 휴지 조각보다 못한 것처럼 됐지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전문가가 경제인이나 산업부 장관 협의 한 마디 없이 가치가 무한한 개성공단을,
역사적인 공단을 지워버린 것이라 화가 난다”며 “처음에는 가슴에 쇳덩어리를 집어 넣은 듯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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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덕 영이너폼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999년 8월 ‘영몰드’로 창업해 2001년 현재 이름으로 법인 전환하며 건실하게 기업을 키웠다.
독일에서 전수받은 무봉제 접착 기술을 속옷에 적용해 상용화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2002년 경기도 광명시에 번듯한 사옥도 하나 마련했다.
이종덕 대표는 “평생의 업적이었고 노후 대비를 겸해서 본사 빌딩을 하나 마련했다”고 했다.
2007년 6월 개성공단 입주가 결정되고 정부 방침은 2차 선정 입주사부터 지원을 줄인다는 것이었다.
본사 빌딩을 팔고 법인을 통한 은행 대출도 최대한 “땡겼다”.
처가 쪽 돈도 끌어다 보탤 만큼 모든 투자를 개성공단에 집중했다.
잠정 중단 전까지 개성공단에 투자한 총액은 5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개성공단에 있는 동안 정말 열심히 기업을 키웠습니다.
2012년 최고 매출을 찍고 금강산 관광 중단 당시 철수해 피해를 봤던 2013년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내수에 더해 수출 기반을 마련하면서 캄보디아에 공장도
하나 더 냈죠. 직원도 늘리고 성장률은 두 자릿수로 상승했고요. 개성공단은
우리 기술력과 안정적이고 숙련된 인력, 통역이 필요 없는 언어 환경 등이 최적화된 공간이었죠.”
‘로또’라는 주위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입주했을 때만 해도 개성공단에 대한 ‘정치적’
리스크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종덕 대표는 “당시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라
정치적으로 리스크를 느낄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정부 브리핑 때도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다 후원한다’고 해 우리로선 ‘정부 우산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정부를 믿고
기분 좋게 입성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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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시절 받은 백만불 수출의 탑.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이종덕 대표는 불안 요인이 ‘핵실험’이 될 것으로 보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실 2008년 MB 정권이 관광객 사망사건에 대응하면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중단했다. 불안이 시작되긴 했다”며 “핵실험은 북한이 계획에 따라 꾸준히 진행해온 것이라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로 봤다”고 했다.
‘적지’인 북한 개성에 기업체를 둔 기업인의 판단이었다. 위험이 적어도 북한이 주장했던 핵실험에서 기인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남북관계를 연구했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정치인이라면 북한의 핵실험 정도는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던 것이다.
개성공단 잠정중단은 하루아침에 이뤄졌다. 북은 1월6일 4차 핵실험을 전격 실시했다. 남북관계 긴장이 고조되긴 했지만 개성공단까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한 달 후 여느 명절 연휴처럼 개성공단에 최소한의 주재원을 남기고 고향으로 떠났다.
설 연휴는 토·일요일을 포함해 2월8일 월요일부터 10일까지였다. 설 당일(2월8일) 오후 통일부에서 개성공단기업협회 담당자에게 ‘만나자’는 전화를 했다. ‘협회 임원들이 설 연휴 때문에 모두 고향에 내려가 있으니 설 끝나고 하자’고 했고 통일부 담당자도 ‘윗선에 그렇게 보고 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8일 통화 때까지는 긴장감이 하나도 없었다.”
분위기가 바뀐 건 하루가 채 지나기 전이었다. 9일 낮 통일부는 다시 개성공단기업협회 쪽에 연락했다. ‘오늘이라도 당장 만나야 한다’는 강경한 분위기였다.
이종덕 대표는 “9일 낮 전화에선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우리는 ‘주재 인원 숫자를 줄이자’는 협의 정도로 인식했다”며 “설 연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고 해서 서울로 모이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10일에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가 2월10일 오후 2시였다. 남북적집자회담본부로 이종덕 대표 등 협회 관계자들이 들어섰다. 이종덕 대표는 “이전 만남을 보면 통일부 실무자 명패 4개가 통일부 장관 양 옆으로 놓이는 데 그날은 통일부 장관 명패 옆에 아무것도 없었다” 며 “그 시간이 제일 불안했다”고 말했다.
“회담 시작 3분 전부터 명패가 놓였습니다. 이전과 달리 기획재정부·노동부 차관, 금융위원회 관계자 명패가 놓이는 거죠. 그 순간 ‘아 이게 뭔가 크게 잘못 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입술 터진 초췌한 모습으로 나왔어요.”
이후 대화는 알려진 대로다. 홍용표 장관은 개성공단 ‘잠정 중단’을 발표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측이 자산 정리를 위해서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한 달, 일주일, 그것도 안 되면 3일이라도 여유를 달라고 했으나 통일부는 완강했다. 통일부는 협회를 만난 세 시간 후인 같은 날 오후 5시 이 같은 내용을 공표했다.
이종덕 대표는 “자기도 어쩔 방법이 없다, 윗선 지시라고 했다. 장관은 우리 얼굴도 제대로 못 보면서 수정이 안 된다, 중단할 수밖에 없다, 다른 대안도 없고 협의할 게재도 없다는 말만했다”며 “참 황망했다. 그날 밤 회사마다 개성공단으로 한 명씩 밖에 못 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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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상회에서 팔던 제품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이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미안하지만 오늘이 끝’이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 당시 뭐가 그렇게 긴박한가 진짜 궁금했다. 지금까지 10여년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했지만 순식간에 이런 결정이 이뤄진 적이 없었다. 단계별로 목도 죄고 철수도 시켰는데 이렇게 하루 만에 결정되고 철수하는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여러 가지 녹취록이 공개되고 그러는거 보면 ‘그렇겠구나’,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는 “이해가 되니까 더 화가 나고 미치겠더라”며 “개성공단 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의 중대사를 회의 한마디 없이 결정했다. 통일부가 처음에 개성공단 중단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안먹히는 게 당연했다”고 황망해했다.
그는 “최순실이라는 비선세력에 의해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지금 보면 최순실이라는 전문성도 없는 사람이, 영적으로 얼마나 뛰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 한 명 때문에 그 큰 사업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종덕 대표에 따르면 “나오는 날도 북한은 정상적이었다”며 “물건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협조를 다 해줬고 개성공단 문 닫는 시간인 5시가 지나면서 몰수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이 무너지고 나서 그는 대체공장지로 케냐와 이디오피아, 베트남을 물색하러 갔다. 통일부와 함께였다. 개성공단 대신 베트남에 공장을 하나 열고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내수를 감당하기 위해 샘플실처럼 운영했던 서울 공장을 경기도 고양으로 옮겨 새로 열었다.
개성공단 잠정중단으로 이종덕 대표는 71억8000만원의 손해를 봤다. 증빙 자료를 첨부해 정부에 제출한 손해액이다. 정부는 지원한다면서 모두 대출로 돌렸다. 이종덕 대표도 신용대출 받은 30억원으로 베트남과 서울 공장을 다시 꾸렸다. 그는 “건실한 기업을 하루아침에 빚쟁이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마지못해 베트남과 경기도에 새로 공장을 냈지만 영 마뜩찮은 선택이었다. 이종덕 대표는 개성공단만 한 곳이 없다고 자부한다. 자유로운 언어 소통, 지난 10년 간 숙달된 인력, 저임금, 서울과 1시간 거리, 무관세에 무엇보다 ‘메이드인 코리아’(한국산 제품)를 붙일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임원으로 활동하는 이종덕 대표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 기업 절반은 개성공단 외 지역에 공장이 없었지만 향후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속한 30%는 대부분 생산 여력이 대폭 줄면서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만 이어가는 상황이라는 게 협회 쪽 집계다. 20% 가량만이 투자를 하고 제품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이종덕 대표도 30억원 가량 투자를 해놨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 개성공단 보험에서 무이자 대출 받은 돈이다. 개성공단에 재입주하면 이 30억원을 반납해야하는데 투자한 설비는 매몰비용이라 회수할 수도 없다.
“정부에서 보상받은 돈은 1원도 없다. 대출 받아서 공장 재가동했는데 개성공단이 열리면 이미 투자한 설비는 어떻게 하고 대출 받은 돈은 또 어떻게 갚아야할지 막막하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군사작전처럼 하면서 정부에선 통치행위였다고 하면서 보상은 하나도 안했다. 보험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하는데, 억장이 무너진다. 부채리스트를 보면 깜깜하다.”
그의 승용차에는 통일부 장관이 발급한 남북간 자동차 운행 승인 및 통행 차량 등록증명서가 부착돼 있다. 베트남 공장과 경기도 공장을 신설하며 새로 판 명함에도 여전히 ‘개성시 개성공업지구 1단계 28-4’ 주소와 전화번호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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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덕 대표의 차에 아직도 붙어 있는 남북간 자동차 운행 승인 및 통행 차량 등록증명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개성공단 잠정중단 300일이 되어가지만 한 번도 바꿔본 적 없는 통행 차량 등록증과 명함이다. 그는 개성공단이 “역사적인 곳”이라며 재가동 돼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년 6~8월 사이 재개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나오는 날 각 기업마다 한 명을 보냈다. 북한은 정상적으로 협조를 다 해줬다. 우리가 나온 5시 이후 몰수령을 내렸다. 최근 한 미국 언론에서 개성공단을 찍은 위성 사진을 잠정 중단 전과 비교한 사진을 봤는데 공장 위 원단도, 개성공단에서 운행했던 버스도 모두 그대로 있더라. 북한도 개성공단이 재개될 것으로 보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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