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물

대법관이 변해야 나라가변한다

참도 2015. 8. 8. 17:48

 

권순일 대법관의 ‘활약’이 법조계에서 조용히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년간 5건이나 주도한 전합 선고 중에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도 두 건이나 있다.

대법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그를 심층 조명했다.

독자 여러분, 양승태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 가운데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도 없으시겠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대법원을 담당하는 기자들도 못 외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전국의 2825명 판사 가운데도 대법관을 모두 외우는 사람이 드뭅니다.

 

 오히려 전·현직 미국 연방대법관인 긴즈버그니 스칼리아니 블랙먼이니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인생까지 자세히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독 우리 대법원에만 이런 대법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단일체가 아닙니다. 12명 대법관들이 투쟁하는 사상과 이론의 전쟁터입니다.

 대법원도 사람이 모인 곳이니 설득과 회유,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주간경향>은 최근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판결로 주목받는 한 대법관을 통해 사법부의 본모습을 공개합니다.

권순일 대법관이 후보자 시절이던 2014년 8월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그는 당시 “‘뚜렷한 재능이 없더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법학은 적합한 학문이다’라는 독일 법철학자의 글을 읽고 용기를 내어 법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말했다. / 정지윤 기자

 

변호사 성공보수 금지, 7개월 만에 선고지난 7월 23일 형사사건에서 변호사의 성공보수를 금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판결에 놀란 것은 현직 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곧바로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으로 접속해 주심 대법관과 상고된 날짜를 찾아봤다.

 ‘사건접수 1월 2일, 주심 대법관 권순일’. “이번에도 권 대법관……. 전합선고가 불과 7개월.

” 판사들은 권순일이라는 이름을 되뇌었고, 대법원 연구관 출신 판사들은 7개월 만의 전합선고에 놀라워했다.

 

대법관을 보좌하는 연구관 출신 부장판사들과 현직 연구관들의 설명이다. “법령이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사법부에 맡겨져 있다. 그런 면에서는 입법적 성격이 있다.

 미국에서 쓰는 법관법(法官法)이라는 말이 이거다.

우리의 경우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합이 그런 역할을 한다. 한 번 선고되면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

 그래서 전합은 매우 중요한 판결이다.

“대법관 6년에 남는 것은 전합뿐이다.” 퇴임한 대법관들이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많이 전합으로 사건을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다시 전·현직 연구관들이 설명이다.

“소부에서 합의에 실패했다고 모두 전합에서 선고하지는 않는다.

 전합에서 결론만 내고 다시 소부로 가져와 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합은 전합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오히려 소부에서 4명 전원일치 합의가 됐는데도 전합으로 가져가는 일이 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전합에 대한 욕심은 대법관만 있는 게 아니다. 가장 몸이 단 사람은 대법원장이다.

자기 재임시절이 전합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빛났던 얼 워렌 대법원장 시절을 가리켜 ‘워렌 코트’라고 한다.

 대법원장이 영예와 오욕을 감당하는 것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전직 연구관의 말이다.

 “회장(대법원장을 가리키는 대법원 내부의 은어)의 능력은 전합으로 결정된다

 

. 이용훈 대법원장도 양승태 대법원장도 같은 말을 하셨다.

 ‘대법관들에게 가능한 한 전합을 많이 발굴하라고 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두 분 말대로 전합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전합은 대법관의 성적표다. 그래서 <주간경향>이 그 성적표를 뽑아봤다. 지난 1년간 주심으로 선고한 숫자다.

 

 그 결과 권순일, 김용덕, 김소영 세 사람이 주도했다.

전체 19건 가운데 5, 4, 3건씩이었다.(그래프 참조) 권순일 대법관은 오는 9월이 취임 1년이다.

 얼마 전 박상옥 대법관이 취임하고서야 말석을 면했다. 취임과 동시에 두 달에 한 번씩 전합을 만들어낸 셈이다.

사건의 면면도 간단치가 않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조합 설립 허용, 형사사건 성공보수 금지가 대표적이다.

 6년에 하나 하기도 힘든 사건을 2개나 만들었다. 결과도 12대 1, 13대 0이다.

 

“대법관이 되면 한동안 멍한 상태가 된다. 대충 듣기는 했어도 생각보다 일이 너무나 많고,

 간단한 사건까지 보고서가 매우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을 기다리는 사건과 보고서가 엄청나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연간 30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나마 어설픈 대법관은 사건을 다 처리하지도 못하고 미제만 수북이 만든다.

 

 아무튼 대법관들이 3년쯤 지나면서야 결국에는 전합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가져갈 사건이 없다.

평소에 문제의식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4년쯤 넘어 우연히 한두 개 잡는다.

손에 들어온 전합을 해결하려면 자기 방에 있는 전속조가 아니라 전문분야 연구관이 모인 공동조에 보내야 한다.

여기에는 일이 산더미다. 최종적으로 보고서 올라오는 데 1년도 넘게 걸린다.

 잘못 짚으면 제대로 선고도 못한다. 그러다가 그냥 퇴임이다.”

 

“법관은 원래 보수적, 나도 마찬가지”취재 결과, 형사사건 성공보수 금지판결 사건은 당초 이유를 적지 않고 끝내는

‘심리불속행 기각’이 맞다고 보고서가 올라갔다.

하지만 권 대법관이 보고서를 내던지고 곧바로 전합으로 가져갔고, 대법관 전원을 설득해 선고했다.

“야구선수가 스트라이크를 기다리듯 기다렸다고 본다. 대법관 되기 전부터 성공보수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선고까지 7개월이면 보고서가 엄청나게 빨리 온 것이다.

 

 왜 그렇겠느냐. 대법원에 새치기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쟁점을 정확히 찍어서 지시했기 때문이다.

 안목과 법리가 대법관 능력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대법원에 정통한 한 부장판사의 설명이다.

이처럼 연구관을 부리지 못하면 대법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지난해 9월 권 대법관 취임 당시 대법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전임자가 남겨둔 미제가 수백 건이다.

권대(대법원 내부에서 특정 대법관을 부르는 방식으로 성에다 대법관의 대를 붙인다)가 그거 처리하려면 1년은 족히 걸린다.

 

아마 당분간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떻게 1000건에 육박하는 사건을 뛰어넘었을까. “대법관이 내용을 장악하고 있으면 지시를 정확히 내린다.

 권 대법관은 이런 식이었다. ‘판사님, 사건 복잡해서 힘들지요. 고민하지 말고 2개만 써오세요.

 파기환송하고 상고기각.’ 어차피 결론은 둘 중에 하나이니 결론과 근거만 써와라

 

, 판단도 자신이 하고 법리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권 대법관은 하급십 판사 시절 대학 시간강사의 노동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삼성그룹 이재용씨 남매들에게 수백억의 세금을 부과토록 했다.

삼성에 부과한 443억원 증여세 판결은 워낙에 치밀한 법리 때문에 삼성이 항소조차 포기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에도 전합 이외에 소부 주심 대법관으로서 ‘특정 집회 못 열게 먼저 낸 집회신고는 불법’,

 ‘상지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도 이사 선임 취소소송 가능’ 등의 판결을 내놨다.

 그런 그는 사석에서 “나는 진보 법관이 아니다. 법관은 본래 보수적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헌법에 따라 소수자를 보호하고 시장경제를 지지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에서 연수하고 상법분야 박사학위도 받은 그는 시장 지지가 강하다.

진보진영에서 비난받는 그의 주요 판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권 대법관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발동한 긴급조치 위반으로 연행돼 구금된 최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한 소부 판결의 주심이었다.

 

 “사실은 긴급조치 헌법위반 판결 결정을 수석연구관 시절 내가 보고했다.

당연히 유죄 판결까지 받거나 투옥된 사람은 배상하는 게 맞다. 하지만 당시를 살았다고 해서 피해자로 모두 인정한다면

나를 비롯해 상당수가 원고가 된다. 거칠게 말해서 고도성장기를 누려온 50~60대 과거 세대의 일에 대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지금 세대가 세금으로 배상하는 셈이다.”

 

 얼마 전 자신의 전속 연구관들에게 말한 내용이다.

한국 대법관은 왜 색깔 내지 못하나권 대법관은 지난 8월 3일 한국을 찾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을 만나

“결국 ‘매직 넘버 5’가 핵심”이라는 얘기를 나눴다. 연방대법관이 9명이라 5명이 모여 다수의견이 돼야 일이 된다는 얘기다.

 우리 대법관은 13명이니 7이 ‘매직 넘버’다. 실제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반대자’도 역사에 역할이 있고 대단히 훌륭한 일이지만,

 결국 모든 대법관은 자기 의견을 다수로 만들려고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려면 쟁쟁한 이론가들 앞에 잘난 체 나서서는 되지 않는다.

선배 대법관들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내 의견을 고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법원 합의라고 해서 논리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그가 처음에 강력한 의견을 들고 나오는 게 나중에 양보를 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가 전합을 가장 많이 열어 결론까지 가는 데는 기질이 작동했다는 평가도 많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부장판사의 설명이다.

 “권 대법관이 수석연구관으로 있던 때 재판연구관 마치고 부장 발령받아 나가는데 전별금을 주더라.

 

 요새는 그러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의외로 보스 기질이랄까, 수석연구관으로는 드물게 그런 게 있었다.”

 대법원 공보관 출신 부장판사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

신문에 대법원장을 맹비난하는 기사가 실려서 원장실에 불려가게 생겼는데 같이 가자고 하더라.

 대법원장에게 ‘그런 게 어차피 막아지는 게 아닙니다’라며 방어막을 쳐줬다.

후배들이 그를 도울 수밖에 없다. 지금 연구관들도 비슷한 심정일 거다.”

 

한편, 미국처럼 대법관 모두가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여러 지적이 있다.

 기존에는 관료 법관에 남성 일색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대법원은 그럴 만한 곳이 아니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법원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5~6년차 대법관들이 1년에 전합을 한 건도 못 만들고 있다.

 

 어쩌면 헌법재판소가 아닌 대법원에 그럴 만한 사건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안목과 능력이 있는 권순일을 중심으로 김용덕, 김소영 세 사람이 활약하는 것일 뿐이다.

” 하지만 법조인들은 양승태 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전원합의 사건을 재촉하면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조악하다’는 조악한 이유로 파기한 원세훈 사건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이다. 전합은 늘린다고 늘어나는 게 아니다.

전합은 전합다워야만 전합이기 때문이고, 이를 위해서는 좋은 대법관이 많아지면 된다.

그런 면에서 대법원장이 할 일은 좋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는 것이다.”

아쉬움 남긴 긴즈버그 미국 대법관 방한

 

지난 8월 3일부터 7일까지 있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의 한국 방문은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

그가 대중 앞에 나선 것은 5일 오후 대법원에서 있은 김소영 대법관과의 대담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고법원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이끌어내려는 듯한 질문을 두 차례나 했다.

하지만 긴즈버그는 “한국에는 헌법재판소가 있어 미국과 다르다”,

나라마다 어울리는 제도가 있다”고 답해 질문자를 당황케 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여성 판사는 “너무나 부끄럽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긴즈버그에게 저런 질문을 하느냐”고 했다.

그럼에도 긴즈버그를 대하는 한국 법조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 대법원이라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닌, 긴즈버그라는 구체적인 인물이 등장한 데 열광했다.

 

 연방대법관의 방한은 1987년 산드라 오코너 이후 28년 만이었다.

그렇지만 대담회가 끝나고 나온 청중석의 질문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대한 소감이나 미국 연방대법원에 대한 단편적인 것이었다.

의외였다. 한국 대법원에 대한 의견이나 한국의 인권에 대해 묻는 경우는 없었다.

한 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질문과 순서를 받아 미리 정해줬다.

 동료 판사와 변호사도 그런 식으로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비슷한 시기인 지난 7월에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일본을 방문했다.

최고재판소도 방문했지만 나흘간 교토대학에 머물면서 젊은 학자들과 미국 연방대법원 역사를 주제로 연속 토론을 벌였다.

그를 초청한 주체가 최고재판소였지만 대부분 시간을 연구자들에게 할애한 것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긴즈버그와 회담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지적도 많다.

 

3일 저녁 긴즈버그 환영 만찬에 참석한 법조계 인사는 “일본을 방문한 로버츠가 대법원장이라고 해도 긴즈버그와 급이 다르다.

긴즈버그는 미국에서 인권의 상징이다. 대통령이 무슨 일정이 있었는지 몰라도 만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교회연합과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 8월 6일 각각 성명과 논평을 발표하고 긴즈버그 대법관의 방한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동성결혼 합헌에 찬성했던 긴즈버그 대법관이 한국에 와서까지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며

소송 중인 김조광수·김승환씨를 만나고 트랜스젠더를 초청해 격려했다

. 이것은 한국의 법질서와 윤리가치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므로 삼가야 한다.

 자신의 편향적 행동이 한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비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긴즈버그의 한국 방문은 참 다채로웠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