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감독, “송강호 선배 업어드릴까요?” [인터뷰] OSEN 2014-01-19 12:21:02
[OSEN=정유진 기자] 양우석 감독은 겸손한 달변가였다. 많은 인터뷰를 하며 지쳤을 법도 한데 자신의 첫 감독 데뷔작 ‘변호인’에 대해 마치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미뤄오기라도 했다는 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젊은 시절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겪은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영화화 한 '변호인'은 지난해 12월 18일 개봉해 많은 관객들의 사랑 속에 연일 기록을 세우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결과에 따르면 '변호인'은 지난 18일 하루 동안 20만 6,754명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995만 5,051명을 기록했으며 이로써 19일 천만 관객 돌파를 확실시 하게 됐다.
지난 10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양우석 감독은 연일 기록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별달리 들 뜬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다행이다”며 안도하는 모습은 그의 말대로 정치영화로 해석될 오해와 편견에 대한 우려와 긴장이 아직 풀리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1. 송강호 캐스팅, 시나리오가 간 줄도 몰랐다
영화 ‘변호인’의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배우 송강호일 것이다. 송강호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 역을 맡아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줬다. 관객들은 그의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했고, 80년대 세무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평범한 사람 송우석 변호사에게 열광했다.
그러나 ‘변호인’의 각본을 직접 쓴 양우석 감독은 “송강호에게 시나리오가 간 줄은 몰랐었다”라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자신이 감독을 맡게 되면서 독립영화까지도 각오했던 터였다. 때문에 국민배우 송강호가 캐스팅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연출을 하자고 제안 받은 게 얼마 안 됐고 내 시나리오 간 줄도 몰랐다. (웃음) 우연히 오라고 해서 가니 송강호 선배가 있었다. 나는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알았다. 송강호를 만난다고 하더라. ‘왜 만나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며칠 뒤 출연을 결정하셨다. 정말 감사했다. 내 지인은 송강호 선배를 업고 다녀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실제 촬영장에서 한 번 업어드릴까요? 하고 다가갔는데 징그럽다면서 저리가라고 했다.(웃음)”
갹본이 만들어지고 연출자를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직접 각본을 썼던 양우석 감독에게 메가폰이 넘어갔고 독립영화도 각오한다는 마음으로 영화 제작에 돌입했다.
“이제 와서 덮는 건 정말 미성숙한 거라 생각했다. 독립영화도 상관없으니 만들어보자 했는데 송강호의 합류가 결정됐다. 이후 상업 영화로 틀이 갖춰졌다. 사실 송강호 선배가 상업영화로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캐스팅 결정 후 투자를 망설였던 배급사들이 먼저 연락이 오면서 완전히 상황이 역전 되더라. 송강호라는 배우가 가진 그 신뢰감이 마치 영화에 보증을 서준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양 감독은 첫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임시완을 캐스팅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많은 분들이 각오와 노력을 보였지만, 임시완은 그런 노력과 각오가 뛰어난 중에 한 분이었다. 우리가 내걸었던 조건이 부산 출신이었는데 임시완은 부산 출신일 뿐 아니라 주인공 진우와 비슷한 부산 공대를 다녔더라. 또 김영애 선생님과 모자 관계라 해도 될 정도로 닮았다.”
#2. 오랫동안 준비해온 故노무현 모티브 영화..포기할 생각도
‘변호인’은 오랫동안 양우석 감독의 벽장 속에서 숙성된 작품이다. 그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그의 자료를 모으며 스토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고졸 출신이 사법고시를 통과한 건 역사상 10명이 안 될 것이다. 그런 이력과 더불어 나중에는 그분이 부산에서 어마어마하게 성공한 이력도 알게 되고, 80년대 그런 사건을 만나 인권 변호사가 된 것을 알게 됐다"며 "그런데 이분은 한 번 돌변한 뒤 변하지 않고, 7-8년을 끊임없이 왜 재야라고 하지 않나? 그런 자리에서 인권변호사로 7-8년을 살았다. 수입료 1-2위 하던 사람이 한 번 변한 뒤 그대로 산거다."
그러나 오래 준비했던 시나리오도 한 순간 빛을 볼 수 없을 위기를 맞이했다. 대선에 도전한 당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
"대통령의 이야기로 만들면 용비어천가가 될 것 아닌가. 30년 뒤에나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근·현대사를 뒤져가며 여태까지 모았던 신문 스크랩들 그런 것도 수포가 됐구나 싶었다. 이사갈 때마다 '이걸 옮겨야 되나?' 생각하고 컴퓨터가 바뀔 때마다 '이거 옮겨야 하나' 고민했다. 내가 모은 파일들도 차차 없어져 가고, 기사를 스크랩한 것도 없어져 가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이후 어떤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고 노 전 대통령이 고인이 됐다. 그러던 차에 젊은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20대 후반, 30대들을 보며 안타까웠던 건 육체적 피로가 아닌 뭔가 피곤한 것에 짓눌려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변호인’은 누구보다 팍팍한 현실 앞에 도전해 볼 생각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영화였다. 양우석 감독은 자신의 생각보다 빨리 영화화하게 됐다며 악순환을 혁파하고 나와야 발전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려고 온 나라가 미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한테도 어릴 때부터 '이렇게 해서 취직하겠어?'라 말하고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직의 전당이 됐다. 믿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며 모두가 피로에 찌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조건보다 악조건이 50년대 전 후에도 있었고, 80년대 서슬 퍼런 정권 가운데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혁파하고 나와야 발전이 있는 거다.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고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웹툰 형식도 생각했었다.”
#3. 결국 성찰에 대한 이야기
양우석 감독이 말하는 ‘변호인’은 결국 성찰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송우석처럼 잘못된 현실을 본 후 자신의 신념에 대해 반문하고 의심하고, 성찰하는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차동영(곽도원 분) 경감은 주인공 송우석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차동영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 송우석은 차동영과 다를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책을 다 들춰 보고, 의심하고, 반문하고 마음에 들어온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신념을 회의하고 성찰한다. 결국 두 사람이 다른 길을 가게 된 결정적 원인은 성찰이다. 그 사이에 사무장이나 동료 변호사들도 있었고 판사도 있었다.”
양 감독은 우리 사회의 문제로 ‘문맥이 상실되는 것’을 꼬집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퇴행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더욱 더 피곤에 찌들어 가고 있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 문맥이 많이 상실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이나 단어 하나를 가져와서 주사위 몇 개 흔들고 주사위 놀이 하듯 프레임을 걸고 얘기하는 경향성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런 경향성이 계속되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죽는다. ‘상상하면 불온한 거 아니야?’ 생각하게 되는 거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죽으면서 사회는 마비된다.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도 퇴행된다. 이런 퇴행이 우리 사회에 지금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점이 성찰이라고 말했다. ‘변호인’ 속 송우석이 성찰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깨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실제 인생을 보면 대통령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이 분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건 80년대, 돈이 최고의 가치라 생각하고 살아오다 기본적인 인권과 가치를 살리는 게 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생활인에서 법조인으로 탄생한 그 순간이다. 그 때 모든 게 바뀌었다. 그 시기를 고민했던 실존적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건을 혁파하고 독재라는 정치적 조건을 혁파하고 인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나가는 모습. 지금 우리 사회를 피곤에 찌들게 하는 것들도 이렇게 같이 이해하고 성찰하면 깨 나갈 수 있다 생각한다.”
양우석 감독은 영화 무대인사 때 본 3대 가족 관객들을 자기도 잊을 수 없다 했다. 가족 단위로 온 관객들을 보며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변호인'을 통해 이야기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자녀 세대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시대를 다시 보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뭉클하다며 감동을 드러냈다.
"첫 영화를 워낙 우당탕탕 만들게 돼서 차기작에 대한 생각을 못 해봤다. 진중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단 '변호인'을 넘 긴장하며 만들어서 그런지 이제 긴장은 안 하고 싶다. 가벼운 얘기가 될 것이다.(웃음)"
eujenej@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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