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핵심가치는 '전문성' 아닌 '굴종' 돼버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원세훈 전 원장을 이렇게 불렀다. 애초 촛불집회로 이명박 정부가 위기를 겪은 뒤인 2009년 2월 대통령의 최측근인 그가 '낙하산'으로 원장에 낙점된 것을 겨냥한 말이었다. 하지만 4년 1개월 동안 '좌파 척결'을 명분으로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 개입을 사실상 강요하고,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 삼아 '불도저'처럼 인사권을 휘두르며 정보기관을 사유화한 그를 상징하는 말로 굳어졌다.
"제주 4·3 진압, 정부가 심했지"
말한마디에 좌파로 몰려 징계
■ 원 전 원장의 '공포정치'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원 전 원장은 취임 초부터 '공포정치'로 국정원을 자신에게 충성하는 조직으로 재편했다. 2009년 5월 국정원 수사국의 윤아무개 단장(2급)은 징계를 받았다. 감찰실 직원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제주 4·3 진압은 정부 쪽에서 심하게 한 측면이 있다"고 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감찰실은 이 발언을 '좌파적'이라고 몰았고, 원 전 원장은 윤 단장을 대기발령시켰다. 윤 단장은 수사국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이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간첩 조직 수사와 관련해서는 윤 단장만한 전문가가 없었다. 수사국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황당한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그 이후 국정원에서는 '점심때 다른 직원들하고 밥도 먹지 말아야 하냐'는 푸념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대기발령을 받은 윤 단장은 결국 국정원을 떠났다. 수많은 간첩 조직을 수사해온 국정원 고위 간부가 '좌파'로 몰려 쫓겨난 것이다.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2009년 9월 수사국에서 파트장(4급)을 맡고 있던 강아무개씨는 부하 직원의 보고 내용을 검토하던 중 '지난 좌파 정권 10년'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불법으로 세워진 정부도 아닌데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강씨는 "지난 정권 10년으로 문구를 바꾸자"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들은 한 직원이 강씨의 발언을 감찰실에 전했고, 그는 결국 지역 출장소로 좌천됐다.
국정원 5급 직원인 김아무개씨는 술자리에서 원 전 원장을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2011년 9월29일 해임됐다. 김씨는 2010년 11월 국정원 직원 10여명과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는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서울시장할 때 똘마니 하다가 여기 와서 뭘 알겠냐"는 말을 했다. 국정원 내에서 '원 전 원장이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국정원은 김씨의 발언을 문제 삼아 상관을 모욕했다며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 처분을 했다.
이처럼 징계를 남발했던 원 전 원장이지만, 자신의 심복만큼은 각별히 챙겼다. 대선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18일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인사를 단행했다. 대선 전날 국정원 인사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원 전 원장은 "정치권에 줄대기를 하려고 하는 정치적인 직원들이 많아 아예 내가 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날 승진한 사람은 원 전 원장이 서울시 부시장으로 일하던 시절 서울시를 담당했던 정보관 이아무개씨 등을 비롯한 측근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김정일 사망·북 미사일 발사 등
원세훈 재임때 번번이 물먹어
■ 법도 제도도 바꾸며 '굴종' 요구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바란 것은 '전문성'보다 '굴종'이었다. 관용심사위원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원 전 원장은 징계를 받은 직원 중 부서장 추천을 받아 일부를 구제해 주겠다며 관용심사위원회를 만들었다. '자신의 잘못을 빌면 관용을 베풀겠다'는 취지다. 대부분의 직원은 이런 조처를 달갑지 않게 바라봤다.
징계 사례를 담아 전 직원들에게 배포하던 <감찰회보> 발간도 잦아졌다. 분기별로 한번씩 나오던 감찰회보가 원 전 원장 부임 이후 한달에 한번꼴로 나왔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빌라는 이야기였다"고 했다.
원 전 원장은 직원 징계를 쉽게 하기 위해 법을 바꾸기도 했다. 2009년 5월29일 국정원 중간 간부인 이아무개씨는 징계위원회에 불려가 '강등' 처분을 받았다. 이씨가 알고 지내던 한 여성이 '혼인빙자간음'으로 국정원에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씨가 일본에서 연수받던 시절 이 여성에게 인터넷 등에 이미 공개되어 있던 일본 도쿄 총련 사무실 위치 등을 말한 것에 대해서 비밀누설죄까지 덮어씌웠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은 '강등'이 너무 가볍다며 징계위 재소집을 명령했다. 결국 이씨는 10여일 뒤 2차 징계위에서 '해임'됐다. 하지만 지난해 4월13일 대법원은 이씨의 해임이 부당하다고 최종 판결했다. 국정원이 1차 징계위의 징계가 가볍다고 2차 징계위를 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국정원은 지난해 9월21일 국정원직원법 시행령 '제41조의 2'를 신설해 2차 징계위를 열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불법이 안 통하자 아예 법령을 새로 만든 것이다.
DJ정부땐 호남 출신 대거 발탁
이명박 정부땐 TK 승승장구
■ '인사전횡'·'충성강요'에 망가지는 정보기관
원 전 원장의 '일방적 충성 강요'와 '황당한 인사전횡'은 정보기관의 핵심 자산인 정보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해외 정보망의 붕괴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취임한 뒤 해외파트 직원들 50여명을 국내로 불러들였다. 인사 대상엔 해외 발령을 받은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직원까지 포함됐다. 원 전 원장은 그 빈자리를 자신의 측근 등으로 채웠다. 해외파트 근무 경력은 국정원 인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해외 파견 직원의 경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정보원을 만든다. 하지만 그 정보원을 담당하는 직원이 바뀌면 정보원도 사라진다. 원 전 원장이 이 같은 정보업무의 특성을 모른 채 측근 인사만 고집해 상당한 자원을 잃었다"고 말했다. 해외 정보망의 붕괴는 북한 정보 수집에도 영향을 끼쳤다. 국정원이 수집하는 북한 정보의 상당수는 해외를 거쳐 들어오기 때문이다. 원세훈 전 원장 재임 동안 국정원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북한 미사일 발사 등 대북 정보에 '깜깜이'가 된 것은 이런 인사 전횡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국정원장이나 정권 실세와의 친소 관계, 지연과 학연, 정치적 성향 등을 기준으로 인사권을 휘두르며 정권에 '맹목적 충성'을 강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만의 일은 아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침을 겪어왔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호남 출신들이 대거 발탁됐고, 한동안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한동안 국정원에서는 티케이(TK·대구경북) 출신이 승승장구했다"고 말했다. 이런 '학습효과'에 원 전 원장의 독선적인 인사가 더해지자 국정원 직원들 가운데는 지역 향우회 모임이나 동문회에 기웃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전문성'보다는 인맥과 원장에 대한 충성이 생존을 위해 핵심 가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에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직원이 많다. 뛰어난 능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이 다수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보답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환봉 기자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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