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를 사용하다 보면 전원은 분명히 들어왔는데 모니터에는 검은 화면만 나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화면에 뭔가 메시지라도 뜬다면 대강이라도 원인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아예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는다면 전원 플러그가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 전원부가 고장이 난 것이라고 짐작할 만 하건만, 전원은 들어오는데 화면만 먹통이라면 참으로 답답할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모니터의 고장일 수도 있고 본체 내에 있는 일부 부품의 손상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PC의 구성품 들은 대부분 품질이 안정화가 되었고 특히 CPU나 램(메모리)같은 반도체 기반의 부품은 여간 해서는 쉽게 고장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먹통 증상이 일어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품 간의 접촉불량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해결할 수 있다.
PC의 내부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몇 가지의 구성품으로 모듈(module)화가 되어있으며, 접촉불량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도 불과 몇 군데에 불과하다. 그리고 각 구성품(모듈)은 메인보드(주기판)에 위치한 슬롯에 꽂는 식으로 조립하므로 다시 빼는 것도 간단하다.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자가 수리가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접촉불량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도 몇 군데에 불과하다. 특히 램을 장착하는 램 슬롯, 그리고 그래픽카드를 장착하는 PCI익스프레스 슬롯이 대표적이다. 만약 이러한 슬롯에 접촉불량이 발생하면 PC에 전원은 들어오더라도 화면에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는다.
PC의 주요 부품이 슬롯에 비스듬히 꽂혀있거나 완전히 삽입이 되지 않은 경우는 당연히 접촉불량이다. 하지만 부품의 장착이 확실히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접촉불량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이 때는 슬롯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의 접점이 제대로 신호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는 해당 부품을 빼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램 접촉불량은 대단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접촉불량을 해결하는 신공, '지우개'
PC 주요 부품의 접점은 대개 구리와 같은 전도성이 높은 금속물질로 이루어져있다. 이런 물질들은 대기 중의 산소나 습기와 접촉하면 표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산화막이 생성되곤 한다. 이 때문에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부품인데도 정작 메인보드에 꽂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때는 해당 부품을 빼서 슬롯과 접촉하는 접점부분을 깨끗이 닦아 준 후에 다시 꽂으면 정상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접점을 닦는 수단으로 가장 유용하면서도 쓰기 간편한 것이 바로 지우개다. 고무지우개, 플라스틱지우개 모두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지우개는 본래 연필글씨를 지우는데 쓰는 것이지만 PC 부품의 접점에 발생한 산화막을 제거하는데도 매우 유용하다. 부품을 뺀 후에 접점 부위를 지우개로 열심히 문질러주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지우개 가루는 확실히 제거해야 한다. 가루가 남아있으면 다시 부품을 장착할 때 합선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품 분리 전에 반드시 전원 차단, 에탄올 사용도 병행 가능
그리고 또 한가지 주의할 점은 부품을 빼기 전에 PC의 전원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PC 본체의 전원 코드는 물론, 본체와 연결된 모니터나 프린터와 같은 주변기기의 전원 코드 역시 확실히 빼놓도록 하자. 안 그러면 부품 탈부착 과정에서 정전기가 발생해 더 큰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부품의 접점에 지우개질을 하는 것 만으로도 접촉불량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면 소독용 알코올(에탄올)을 추가로 준비하자. 알코올을 천이나 화장솜, 면봉 등에 묻힌 후에 이것으로 접점 부분을 닦아주면 접촉불량을 해결하는데 한층 도움이 된다. 다만, 에탄올이 아닌 물이나 공업용 알코올(메탄올), 아세톤 등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물은 건조가 느려서 합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메탄올은 유해물질이며, 아세톤은 기판을 녹여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300원으로 수리비 10만원을 아낀다
이런 과정을 거친 부품을 장착한 후에 전원을 켜면 상당수 PC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일명 '지우개신공'은 PC판매점이나 사설 수리점에서 상당히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일부 수리점의 경우, 이렇게 간단히 해결이 가능한 접촉불량 건에 대해서도 부품 교체와 같은 필요 이상의 대처를 하기도 한다. 특히 메인보드 교체의 경우 최소 10만원 정도의 높은 비용이 요구되므로 소비자들의 부담이 크다. 이런 사례는 수리기사 자신의 실력과 노하우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PC 관련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악용해 발생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따라서 어느 날 갑자기 PC의 전원을 켰는데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면 수리기사를 부르기 전에 램이나 그래픽카드의 접촉 불량을 의심해보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우개 하나면 족하다. 불과 300원 정도의 투자로 10만원의 수리비를 아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이미 10년, 20년 이상 '용산 바닥'에서 인정받으며 전해지고 있는 노하우임을 잊지 말자.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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