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찬 부사장
그런 삼성이 또 한번의 학력 파괴를 보여줬다. 9일 고졸 공채 최종 합격자 발표에서다. 당초 삼성은 600명을 뽑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700명으로 늘렸다. 이에 따라 올해 고졸 채용 전체 규모도 9000명에서 100명 더 늘어나게 됐다. 삼성전자 원기찬(52) 인사팀장(부사장)은 “선발자 중 20%는 대졸 출신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갖춰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될 정도로 뛰어났다”며 “이번 공채를 통해 응시자들의 우수한 잠재 역량과 열정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놀라운 말을 덧붙였다. “학력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바뀌려면 5~10년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이번 공채를 진행하면서 3~5년이면 사회의 물줄기가 바뀔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나이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소신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인천의 한 인문계 여고에 재학 중인 김모(18)양의 학업 성적을 보면 웬만한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과감히 방향을 바꿔 삼성SDS 근무를 앞두고 있다. 그는 지원 이유를 묻는 면접관에게 “대학에서 이론 공부를 하는 대신 현장에서 실무를 통해 업무 능력을 키워 회계분야의 리더가 되겠다”고 말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삼성전자 원 팀장은 “이번에 뽑은 고졸 신입사원들을 보면, 나 스스로도 저렇게 강한 소신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라고 자문할 만큼 주관이 뚜렷했다”고 토로했다. 원 팀장은 고졸 사원으로 입사하기 위한 몇 가지 조언도 했다. 우선 “고졸직에 전문대졸이나 대졸 학력자가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직무 배치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다 기존 대졸 사원과 갈등을 빚을 수 있어서다. 그는 이어 “고졸 공채의 1차 관문 격인 필기시험은 학교 교과 과정과 일치한다기보다는 상식 차원의 것들이 많다”며 “대신 면접과정에선 지원자의 성장과정만 보는 게 아니라 즉석 실기 테스트 같은 걸 할 수도 있는 만큼 관련 분야 전공자가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