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문제잇

구제역 농촌은 감옥살이

참도 2011. 1. 6. 01:28

소 저승사자가 마당까지 온듯” 일주일째 곡기끊은 아버지

본지 김창영 기자 부모의 ‘구제역 사투기’

경향신문 | 김창영 기자 | 입력 2011.01.05 18:47 | 수정 2011.01.05 22:51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경상

 


아버지(64)는 일주일째 곡기를 끊은 채 하루종일 외양간의 소들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허기를 달래는 것은 겨우 술 몇 모금뿐이다. 아버지에게 소는 평생을 함께한 또 다른 자식이었다. 기자 나이 43세가 돼서야 소가 우리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지난 주말 충남 대천을 거쳐 청주시내 처가에 들른 뒤 전화를 했다. 여느 때 같으면 "(방학 때니) 애들 시골에서 일주일 정도 푹 쉬게 하라"고 했을 아버지는 "올 때 차 소독 철저히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금세 다시 전화가 울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되겠다. 충남에 갔다면 거기도 구제역이 걸린 곳인데…. 소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엔 그냥 올라가라"고 했다. 집 앞에서 '문전박대'당한 기분이었다.

소는 우리 4남매를 대학에 보냈고, 3형제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줬다. 대학 등록금 낼 무렵이면 아버지는 소를 끌고 우시장에 나갔다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곤 했다. 취하지 않고서는 자식 같은 소를 팔았다는 안타까움을 씻어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충북 청주시 외곽 오동동의 축사. 한때 200마리에 달했던 소는 지금 13마리로 줄었다. 아버지는 "사료값이 너무 올라 키울수록 적자인 데다 힘도 부친다"며 몇 년 전부터 소를 내다팔았다. 그 돈으로 막내는 한우전문식당을 냈고, 신혼집을 마련했다. 남은 소는 막내 여동생 혼수용이다.

아버지는 요즘 '소 저승사자'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저승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목줄을 죄는 형국이다. 지난 3일 구제역 양성판정을 받은 충남 천안시 병천면 송전리는 고향 집에서 16㎞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5일에는 채 10㎞도 안되는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농가에서 구제역 판정이 내려졌다. 구제역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셈이다.

평생 소를 키워 인근 농가에서 '수의사보다 낫다'는 평을 듣는 아버지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마을 길목을 차단해 출입을 통제하고, 축사를 방역한 뒤에는 하루종일 소가 제대로 먹는지, 침은 흘리지 않는지 지켜보는 게 전부다.

아버지는 "다 뚫리고 우리집 앞마당까지 온 것 같은 기분"이라면서 "살처분한 뒤에는 3년 동안 소도 못 키우고, 반경 500m에서는 축산허가도 받아야 한다는데 말이 되느냐"라고 되물었다.

마을 어른들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변고"라며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소 키우는 20여 농가 앞에는 '외부인 출입금지' 푯말이 섰다. 농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외부로 나갔다 들어온 사실이 드러나면 나중에 보상 등에 불이익을 주기로 합의한 탓이다. 마땅히 쓸 데도 없지만 밖에 나갈 수 없으니 돈이 떨어져도 찾을 길이 없다. 감옥살이나 마찬가지다. 시골이어서 집집마다 쌀과 김치 등 먹을 것은 있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를 키우지 않은 농가들도 서로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왕래조차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어느 틈엔가 인적 없는 유령마을처럼 변했다. 매일 "그 집은 이상 없느냐"는 전화가 아침인사다. 뉴스에서 구제역 소식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다음 차례는 우리 마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뇌경색으로 입원했을 때 "내가 여물을 줘야 소가 잘 먹고 잘 큰다"며 퇴원을 강행했던 아버지는 당시 '술을 끊는다'고 약속했지만 구제역 때문에 다시 술을 입에 댔다. 어머니는 "일주일째 밥은 입에도 대지 않고 예전에 삼촌이 갖다놓은 소주 한 박스를 다 마셨다"고 말했다.

소도 그렇지만 아버지 걱정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를 한다. 5일 낮에는 전화기 저편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명절이 걱정인데…. 서울에서 오려면 차도 밀리는데 잘됐지 뭐. 올해는 내려올 생각 마라. 되레 미안하다. 바쁠 텐데 자꾸 전화하지 말고. 일 열심히 하고."

< 김창영 기자 bodang@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