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은 옳다면 전부를 다 던지던 사람”
한겨레 | 입력 2010.05.19 20:30 | 누가 봤을까? 40대 남성, 경상
[한겨레] [노무현 1주기] 노무현과 함께한 문재인
"'참여정부 공과' 성찰·복기가 우리사회의 몫"
노무현과 문재인. 양지든 음지든 늘 함께 했지만 그들은 너무 달랐다. 노무현이 뜨거웠다면 문재인은 서늘하다. 노무현이 세상에 '경계'를 두지 않는 바람 같았다면, 문재인은 땅에 뿌리를 묻고 묵묵히 서 있는 나무와 닮았다. 노무현이 새로운 항구를 찾아 항해를 계속하는 배였다면, 문재인은 언제든지 배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 항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엿새 앞둔 지난 17일, 추모 행사에 참석하러 서울로 올라온 그를 목동 방송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의외로 "한때는 모든 게 노무현 책임이더니, 서거 뒤에는 성찰과 반성을 건너뛰고 있다"며 "추모는 고마운 일이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테지만 참여정부의 공과를 성찰·복기하는 것 또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도 했다. 두분은 어떤 사이였나?
"친구라는 말은 너무 외람된 말이고, 내가 선배로 모셨다. 그 분과의 만남으로 인해 제 삶이 '지금의 삶'으로 규정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의 '원칙'이란 건 단순히 자신이 불리하더라도 의를 좇아 선택한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저만 해도 변호사니까 민주화운동 하는 사람들 지원해주고 사건 생기면 변호해주는 정도로 역할을 한정짓는데, 그 분은 한계를 두지 않고 자신이 옳다면 전부를 다 바쳤다. 전부를 다 던지는 그런 모습, 그런 건 제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모습이었다."
"친노세력이 부각된건 현 정부 실정의 결과"
- 자서전 < 운명이다 > 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추모 공연·전시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그 분의 죽음 자체가 참 아팠다. 그 아픔 만큼 분노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이란 사람의 가치, 그 진정성을 소중히 여기게 되면서 지켜나가야 한다는 다짐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때 느꼈던 아픔, 분노, 다짐이 우리 마음 속에 내재화돼 있고 고비고비 마다 그런 것이 표출된다고 생각한다."
- 선거구도가 갈수록 현 정권 심판이냐, 지난 정부 심판이냐로 짜이고 있다.
"친노 세력이 현 정권 심판세력의 중심으로 부각된 것은 현 정부의 실정이 만든 결과다. 현 정부의 실정은 과거 참여정부에서 이뤄졌던 국가균형발전, 남북관계 개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친노를 대안세력으로 찾게 된 거다."
- 만약 참여정부 때 천안함 침몰 사고가 났다면 어떻게 했을까?
"천안함 사태를 참여정부의 책임 운운하는 건 속임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가 파탄나버린 것 자체가 참여정부와 대조적이다. 우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를 내실있게 구성하고 이를 통해 북핵문제 등 안보상·외교상 엄중한 문제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잘 감당해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해체해버리는 등 천안함 사태 때 허둥지둥 한 것은 안보무능이다."
"참여정부 민심 얻기 미흡 국민 충분히 설득했어야"
- 추모 정국이긴 하지만, 참여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얘기해달라.
"참여정부 5년에 대한 치열한 성찰, 잘잘못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복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끝나고 정권재창출에 실패하자, 진보개혁 진영이나 학계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그냥 노무현 책임론으로 막 흘러가더라. 참 아쉬웠다. 그러더니 대통령 서거하고 나서는 또 그런 성찰이나 반성이 필요없는 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민심을 잡지 못했다. 진보나 발전이 좀 더디 가더라도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민심을 얻으면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했었는데 우리는 너무 서두르거나 너무 오만하거나 너무 서툴렀다. 우리가 씨를 뿌리고 만들었던 정책들의 결실을 위해서도 정권 재창출이 필요했는데 그걸 못했다. 그게 가장 큰 실패다. 또 (10년간) 정권을 잡는 2번의 성공을 거뒀지만 우리 개혁진보 진영의 힘이란 건 참 미약한 것이어서 다들 조심스럽게 지혜를 모아가야 했는데, 안이해졌다고 할까, 사분오열됐다. 노 전 대통령 추모는 대단히 고마운 일이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테지만 참여정부 공과를 성찰·복기하는 것 또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몫이다."
- 노 전 대통령도 양극화나 복지에 대해서는 후회했다.
"양극화라는 말을 처음 쓴 건 참여정부였다. 양극화라는 문제에 처음 도전한 것인데, 양극화가 참여정부 들어서 처음 생긴 것처럼 오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양극화 문제를 더욱 절실하게 받아들이면서 국가의 총역량을 거기에 쏟아부었으면 좀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 부동산 문제도 아쉬워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는 참여정부 때 만든 것이고 그게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때 우리나라에서 효과를 봤던 거다. 우리가 부동산 가격을 잡는 대책들을 초기에 종합적으로 했더라면 조기에 성공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동산값 상승을 막겠다는 청와대 의지와 달리 대한민국 경제관료들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큰일이라는 굳은 신념이 있다. 그러다보니 번번이 한계에 부닥쳤다."
- 검찰 개혁은?
"정권 초반부 '검사와의 대화'는 참 아쉬운 기회였다. 평검사들과의 공개적인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검찰개혁 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지길 기대했는데, 그 자리에 나간 검사들은 인사문제만 얘기했고 대통령도 '막가자는 거죠', 이렇게 돼 버렸다. 검찰 개혁을 위해 수사권 조정, 공직자비리수사처 2가지를 추진했는데 당시 야당의 반대로 못하고 말았다."
'언제 보고 싶냐' 질문에 "아직도 상실감 커" 눈물
- 노 전 대통령 뒤를 잇는 정치인으로는 어떤 분이 있을까?
"우리 쪽 가장 어른이자 큰누님 같은 한명숙 전 총리가 계시다. 대통령께서는 한 전 총리가 퇴임할 때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가라고 권유했다. 본인의 리더십이 대결적이라서 불필요한 잡음을 일으킨 데 반해, 한 전 총리의 온화함과 인내심, 부드러운 지도력이 새 시대의 리더십으로 맞다고 생각했다."
- 노 전 대통령의 염원이 지역주의 극복이었는데, 요즘엔 그에 관한 논의 자체가 없다.
"모두 함께 노력을 기울인다면 고쳐지지 않을 리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서울의 진보개혁 쪽에선 그 주제의 옳음은 인정하면서도 우선 순위에선 절실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앙중심주의적 사고다. 지역에 살아보면 그 폐해가 절실한데, 서울에서 쳐다보면 영호남 양쪽 모두 비슷해, 절실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국가균형발전도 마찬가지다. 우리 지적 풍토의 척박함이랄까, 얇은 거다."
인터뷰 말미에,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이 언제 가장 보고 싶냐고. 곧 그의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1년 전 장례식 땐 바위처럼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의 물꼬가 조금씩 터진 걸까. "제가 좀 참을성이 많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맞을 때도 비명을 한번도 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엔 느닷없이, 한마디 질문에도 격발이 된다. 우리가 다들 내상이 깊다. 상실감도 크고. 아직은 벗어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눈물을 그러모으며, 그는 붉게 충혈된 두 눈을 두어번 크게 깜박였다. 인터뷰/ 김의겸 선임기자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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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공과' 성찰·복기가 우리사회의 몫"
노무현과 문재인. 양지든 음지든 늘 함께 했지만 그들은 너무 달랐다. 노무현이 뜨거웠다면 문재인은 서늘하다. 노무현이 세상에 '경계'를 두지 않는 바람 같았다면, 문재인은 땅에 뿌리를 묻고 묵묵히 서 있는 나무와 닮았다. 노무현이 새로운 항구를 찾아 항해를 계속하는 배였다면, 문재인은 언제든지 배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 항구였다.
-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도 했다. 두분은 어떤 사이였나?
"친구라는 말은 너무 외람된 말이고, 내가 선배로 모셨다. 그 분과의 만남으로 인해 제 삶이 '지금의 삶'으로 규정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의 '원칙'이란 건 단순히 자신이 불리하더라도 의를 좇아 선택한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저만 해도 변호사니까 민주화운동 하는 사람들 지원해주고 사건 생기면 변호해주는 정도로 역할을 한정짓는데, 그 분은 한계를 두지 않고 자신이 옳다면 전부를 다 바쳤다. 전부를 다 던지는 그런 모습, 그런 건 제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모습이었다."
"친노세력이 부각된건 현 정부 실정의 결과"
- 자서전 < 운명이다 > 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추모 공연·전시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그 분의 죽음 자체가 참 아팠다. 그 아픔 만큼 분노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이란 사람의 가치, 그 진정성을 소중히 여기게 되면서 지켜나가야 한다는 다짐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때 느꼈던 아픔, 분노, 다짐이 우리 마음 속에 내재화돼 있고 고비고비 마다 그런 것이 표출된다고 생각한다."
- 선거구도가 갈수록 현 정권 심판이냐, 지난 정부 심판이냐로 짜이고 있다.
"친노 세력이 현 정권 심판세력의 중심으로 부각된 것은 현 정부의 실정이 만든 결과다. 현 정부의 실정은 과거 참여정부에서 이뤄졌던 국가균형발전, 남북관계 개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친노를 대안세력으로 찾게 된 거다."
- 만약 참여정부 때 천안함 침몰 사고가 났다면 어떻게 했을까?
"천안함 사태를 참여정부의 책임 운운하는 건 속임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가 파탄나버린 것 자체가 참여정부와 대조적이다. 우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를 내실있게 구성하고 이를 통해 북핵문제 등 안보상·외교상 엄중한 문제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잘 감당해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해체해버리는 등 천안함 사태 때 허둥지둥 한 것은 안보무능이다."
"참여정부 민심 얻기 미흡 국민 충분히 설득했어야"
- 추모 정국이긴 하지만, 참여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얘기해달라.
"참여정부 5년에 대한 치열한 성찰, 잘잘못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복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끝나고 정권재창출에 실패하자, 진보개혁 진영이나 학계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그냥 노무현 책임론으로 막 흘러가더라. 참 아쉬웠다. 그러더니 대통령 서거하고 나서는 또 그런 성찰이나 반성이 필요없는 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민심을 잡지 못했다. 진보나 발전이 좀 더디 가더라도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민심을 얻으면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했었는데 우리는 너무 서두르거나 너무 오만하거나 너무 서툴렀다. 우리가 씨를 뿌리고 만들었던 정책들의 결실을 위해서도 정권 재창출이 필요했는데 그걸 못했다. 그게 가장 큰 실패다. 또 (10년간) 정권을 잡는 2번의 성공을 거뒀지만 우리 개혁진보 진영의 힘이란 건 참 미약한 것이어서 다들 조심스럽게 지혜를 모아가야 했는데, 안이해졌다고 할까, 사분오열됐다. 노 전 대통령 추모는 대단히 고마운 일이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테지만 참여정부 공과를 성찰·복기하는 것 또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몫이다."
- 노 전 대통령도 양극화나 복지에 대해서는 후회했다.
"양극화라는 말을 처음 쓴 건 참여정부였다. 양극화라는 문제에 처음 도전한 것인데, 양극화가 참여정부 들어서 처음 생긴 것처럼 오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양극화 문제를 더욱 절실하게 받아들이면서 국가의 총역량을 거기에 쏟아부었으면 좀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 부동산 문제도 아쉬워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는 참여정부 때 만든 것이고 그게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때 우리나라에서 효과를 봤던 거다. 우리가 부동산 가격을 잡는 대책들을 초기에 종합적으로 했더라면 조기에 성공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동산값 상승을 막겠다는 청와대 의지와 달리 대한민국 경제관료들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큰일이라는 굳은 신념이 있다. 그러다보니 번번이 한계에 부닥쳤다."
- 검찰 개혁은?
"정권 초반부 '검사와의 대화'는 참 아쉬운 기회였다. 평검사들과의 공개적인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검찰개혁 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지길 기대했는데, 그 자리에 나간 검사들은 인사문제만 얘기했고 대통령도 '막가자는 거죠', 이렇게 돼 버렸다. 검찰 개혁을 위해 수사권 조정, 공직자비리수사처 2가지를 추진했는데 당시 야당의 반대로 못하고 말았다."
'언제 보고 싶냐' 질문에 "아직도 상실감 커" 눈물
- 노 전 대통령 뒤를 잇는 정치인으로는 어떤 분이 있을까?
"우리 쪽 가장 어른이자 큰누님 같은 한명숙 전 총리가 계시다. 대통령께서는 한 전 총리가 퇴임할 때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가라고 권유했다. 본인의 리더십이 대결적이라서 불필요한 잡음을 일으킨 데 반해, 한 전 총리의 온화함과 인내심, 부드러운 지도력이 새 시대의 리더십으로 맞다고 생각했다."
- 노 전 대통령의 염원이 지역주의 극복이었는데, 요즘엔 그에 관한 논의 자체가 없다.
"모두 함께 노력을 기울인다면 고쳐지지 않을 리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서울의 진보개혁 쪽에선 그 주제의 옳음은 인정하면서도 우선 순위에선 절실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앙중심주의적 사고다. 지역에 살아보면 그 폐해가 절실한데, 서울에서 쳐다보면 영호남 양쪽 모두 비슷해, 절실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국가균형발전도 마찬가지다. 우리 지적 풍토의 척박함이랄까, 얇은 거다."
인터뷰 말미에,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이 언제 가장 보고 싶냐고. 곧 그의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1년 전 장례식 땐 바위처럼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의 물꼬가 조금씩 터진 걸까. "제가 좀 참을성이 많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맞을 때도 비명을 한번도 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엔 느닷없이, 한마디 질문에도 격발이 된다. 우리가 다들 내상이 깊다. 상실감도 크고. 아직은 벗어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눈물을 그러모으며, 그는 붉게 충혈된 두 눈을 두어번 크게 깜박였다. 인터뷰/ 김의겸 선임기자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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