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패싱 인사 29건 분석해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곧 서른 명째다.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고위 인사(장관급 이상) 얘기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문성과 도덕성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 문 대통령이 청문회 하루 만인 10일 임명했다.
황 장관은 29번째 '야당 패싱'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2005년 이후 야당 패싱·임명 강행 사례는 노무현 정부 3명,
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 '
역대 정부를 전부 합친 것에 육박한다'는 경고음은 효력이 없는 듯하다.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지적이 비등하다.
14일 한국일보는 29명의 사례를 들여다 봤다.
인사청문법상 국회에서 인사청문 절차가 완료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의
기한을 정해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하게 된다.
얼마의 시간을 더 줄 지는 대통령 자유다.
문 대통령이 부여한 재송부 기한은 1인당 평균 4.8일.
'야당을 설득하고 민심에 설명하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보기엔 어렵다.
청문보고서 마감 기한이 끝나면 더 기다리지 못하고 다음날 즉각 임명하는 패턴이 문재인 정부 내내 반복됐다.
더 눈에 띄는 건 문 대통령의 태도 변화다.
정권 초반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소상히 설명했다.
최근 들어선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文, 줄 수 있는 '국회의 시간' 10일... 다 채운 건 1번뿐
국회는 인사청문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 청문 절차를 마쳐야 한다.
국회가 거부하거나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에서 다시 기한을 준다.
열흘이란 야당에겐 '숙고의 시간'이며, 대통령과 여당에겐 '설득의 시간'이다.
양쪽 모두에겐 '협치의 시간'이다.
문 대통령이 이 기한을 열흘을 꽉 채워 준 적은 극히 드물었다.
2018년 11월 임명된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이 거의 유일했다.
조 전 장관은 당시 자녀 위장전입, 증여세 탈루, 다운계약서 작성 등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4ㆍ15 총선 이후 '거대 여당'이 탄생한 이후로는
'청문보고서를 보내달라'고 다시 요청할 필요조차 사라졌다.
18개 국회 상임위를 독식한 여당이 단독으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명된 것이 5명(이인영 통일부 장관ㆍ박지원 국가정보원장ㆍ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ㆍ정의용 외교부 장관ㆍ황희 문체부 장관)이다.
이 5명을 제외한 24명만 따지면, 문 대통령이 국회에 준 시간은 평균 4.8일에 불과했다.
나흘의 말미를 준 경우(7번)가 가장 많았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019년 9월 "이전 정부(이명박ㆍ박근혜 정부)는
매우 형식적인 하루를 줬다"며 '상대적 우월함'을 부각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해도 현 정부는 뒷걸음질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3번 요청했는데,
2번은 10일을 모두 보장했다.
국회 마감 시한 지나면? 하루 만에 '총알 임명'
지난해 총선 전에는 '국회 보고서 채택 불발→대통령 임명 강행' 수순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임명된 사례가 총 23명에 이른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그 마지막 사례로, 문 대통령은 추 전 장관 청문보고서
재송부 기한을 2020년 1월 1일로 줬고, 다음날 바로 임명했다.
추 전 장관처럼 23명 중 13명(56.5%)은 재송부 요청 마감 바로 다음날 임명를 재가했다.
전체 평균으로 봐도 문 대통령이 준 '국회의 시간'이 끝난 뒤
실제 임명을 하기까지는 평균적으로 1.8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야당이 반대하는 인사를 임명하는 데 '주저한 시간'이 이틀도 채 되지 않았단 것이다.
심지어 여기엔 착시가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 6명을 한꺼번에 임명할 때는 3일을 썼으나,
이 중 이틀은 휴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8일 청와대 본관에서 강경화 신임 외교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강 장관은 야당 반대에도 임명된 첫 번째 국무위원이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임명장 수여식에서 "도저히 외교부 장관 자리를 비워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당 쪽에서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며 양해를 구했다. 청와대 제공
"야당 양해를…" 말했던 文, 이젠 언급조차 없다
문 대통령이 청문회와 야당을 대하는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임기 초반 문 대통령은 야당의 반대에 유감을 표했을지언정,
청문 정국에서의 야당 역할을 인정했다.
인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적어도 '바람직하지 않은 인사'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가령 2017년 7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안보 상황이 과거 어느 때보다 엄중한 그런 상황이어서 오랫동안
새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사실 참 애가 탔다.
당장 현안들이 많다."
이듬해 10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할 때도 비슷했다.
"국회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가운데 임명장을 줄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을 임명하던 2017년 6월엔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외교부 장관 자리를 도저히 비워둘 수 없었다.
야당이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대통령과 야당의 인사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다르다고 해서 '협치가 없다'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문 대통령 발언에서 '야당의 존재'는 상당 부분 지워졌다.
민심이 극렬하게 반대할 때만 입을 뗐다.
2019년 9월 조국 전 장관 임명 때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인사청문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야당을 우회 비난했고, 지난해 12월 변창흠 국토부 장관을 임명할 때
"'구의역 김군' 관련 발언은 충분히 비판 받을 만 했다"고 질책했다.
'청문회 무용론' 알지만... "문제를 문제로 봐야" 지적
인사청문회가 '정부 고위 인사를 공개적으로 검증한다'는 취지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정책 검증보다 후보자 흠집내기에 골몰하는 경향도 크다.
"야당이 '무조건 반대'만 외칠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데스노트'처럼 확실한 기준을 세우고 반대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이라는 얘기도 꾸준히 나온다.
그럼에도 인사권자의 '독주'가 당연시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인사권 행사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설득과 타협이라는
내용적 측면'이 무시된 민주주의를 이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래도 되니까'라고 생각해서
문 대통령이 야당 동의 없는 임명을 반복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으며
"너무 자주 반복되니 무뎌져서 더이상 문제 의식조차 느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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