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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고향과 족보

참도 2021. 1. 12. 12:29

조국·추미애와 대립해온 윤석열(尹錫悅·61) 검찰총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 전국적인 '윤석열 현상'으로 커졌다.

윤석열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첫째, 현직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 주자 여론조사에서 1, 2위로 거론되는 것은 전례가 없다.

 

현직 검사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신선하게 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라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굴러가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일 수도 있다.
둘째,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현직 검사도 윤석열이 처음이다.

웬만한 고위 공직자는 정권에 줄 대기 바쁘고 적당히 타협해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행태가 흔하다.

권력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다고 집권 여당이 핍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현직 검찰총장 대권 주자 거론에 파평 윤씨 후손들 갑론을박 한창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 잡아주길"끝까지 꼿꼿한 선비로 남아주길"

 

윤 총장 부친 고향은 충남 논산 16세기 이후 윤씨들 뿌리 내려
송시열과 대립 윤증이 '9대 종조부'임금이 내린 벼슬도 마다한 가문 전통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지만 좌천됐고,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관권 개입 의혹 등을 수사하다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다.

하지만 권력의 집요한 몰아내기에도 버티고 살아남았다.

그의 임기는 7월 24일이다.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 후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던

윤 총장이 대선주자로 나설지, 평범한 법조인으로 돌아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민심의 향배에 따라 아직 1년 이상 남은 대권 풍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작 더 궁금한 것은 권력 앞에 고개를 치켜든 '배짱 검사' 윤석열 그 자체다.

우리는 정작 윤석열을 잘 모른다. 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 단서를 찾기 위해 윤석열의 뿌리를 찾아가 봤다.

 

충남 논산시 노성(魯城)면에 모여사는 파평(경기도 파주) 윤씨 가문 사람들도 만나봤다.
윤석열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지만,

부친 윤기중(90) 연세대 명예교수는 충남 공주농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윤씨 문중이 2005년 설립한 백록(白鹿)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윤 명예교수가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출신이니 윤 총장의 뿌리는 공주가 아니라 논산인 셈이다.

 

파평 윤씨 25세 명재 윤증 종손 37세 윤완식씨가 윤석열 검찰총장 집안 족보를 설명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파평 윤씨 25세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종손 37세 윤완식(65)씨를 만나 족보부터 살펴봤다.

35세인 윤석열의 시조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개국공신 윤신달(尹莘達)이다.

하지만 시조 묘는 특이하게도 파주가 아닌 경북 포항시 기계면 봉계동에 있다.

 

고려 왕조 출범 이후 윤신달은 동경(경주)에 대도독으로 파견돼

몰락한 신라 유민을 다스리다 현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동북 9성을 쌓아 여진족을 평정한 윤관(尹瓘)이 윤신달의 현손(5세손)이자 파평 윤씨 중시조다.


윤석열의 직계 조상이 논산에 뿌리내린 것은 21세 윤돈(尹暾)이

1538년 처의 고향 니산현(尼山縣·노성면)에 정착하면서부터다.

노성면 일대는 공자와 유가적 전통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노성면·니구산(尼丘山)·궐리사(闕里祠)는 모두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 니구산 궐리촌에서 이름을 따왔다.

논산 정착 이후 불과 100여년 만에 노성의 파평 윤씨는

연산의 광산 김씨, 회덕의 은진 송씨와 더불어 호서삼대족(湖西三大族)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윤씨 들이 논산에서 빠르게 정착한 배경에 대해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윤여갑 국학 자료조사위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논산에 처음 정착한 윤돈의 아들 윤창세(尹昌世)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왜군과 싸웠고,

 

그의 3남 윤전(尹烇)은 병자호란 와중에 순국했다.

많은 조상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으니 요즘으로 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한 셈이다.

당시 조상들이 고향에 사립대학 성격의 종학당(宗學堂)을 세워 널리 인재를 모아 교육했고

 

노성에서만 42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윤석열과 추미애의 대리전 양상으로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치열하게 다투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치열했던 당쟁(黨爭)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이던 훈구파에 밀려 지방에서 학문을 닦던 사림파는

선조 때 동인(이황·조식 등)과 서인(이이·성혼 등)으로 나뉜다.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분화한다.

 

서인은 숙종 때 송시열(宋時烈)의 노론(老論)과

윤증(尹拯)의 소론(少論)으로 갈려 정치적으로 대립한다.
항간에는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위세에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바른 소리를 했던

 

소론 영수 윤증이 윤석열의 직계 조상으로 알려졌지만, 일부 와전된 것이다.

윤여갑 조사위원은 "정확히 말하면 윤증은

윤석열의 직계 할아버지가 아니고 9대조 종(從)조부"라고 전했다.

 

이런 사실은 족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논산에 처음 정착한 윤돈의 손자 문정공 윤황(尹煌)은

사간원 대사간(오늘날 감사원장)으로 활약했고

 

청나라와의 화친에 반대하다 유배당했다.

윤황의 여덟 아들 중에서 넷째 윤문거(尹文擧)의 직계 후손이 윤석열이다.

윤문거는 효종·현종 양대에 걸쳐 임금이 사헌부 대사헌(오늘날 검찰총장) 벼슬을 열 번이나 내렸지만 고사했다.

 

윤황의 다섯째 아들 윤선거(尹宣擧)의 장남이 윤증이다.

윤증의 아들과 손자는 사헌부 대사헌으로 봉직했다.

같은 집안이지만 윤석열 직계 조상은 '은둔파'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영조·정조의 탕평책 덕분에 소론 일부가 관직에 나갔지만,

이마저도 조선 후기 왕실 외척의 세도정치가 활개 치면서 벼슬길이 막힌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0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조선 후기 벌열 연구』와 『명재고택』의 저자인 차장섭 강원대 교수는

"임금이 불러도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아 '백의 정승(白衣政丞)'으로 불렸던 윤증을 비롯한

윤씨 가문의 깐깐한 선비 정신이 직간접적으로 후손의 DNA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벼슬을 고사한 직계 조상과 달리 윤석열은 현대판 과거제도인 사법고시에 스스로 도전해 검사가 됐다.

서울 법대 재학 시절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교내 모의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아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일화가 있다.

 

이 사건의 파문이 커져 강원도 오대산으로 한동안 도피했고

민주화가 이뤄진 1991년 9전 10기 끝에 사시에 합격했다.

천신만고 끝에 검사가 되고 권력의 핍박에도 버틴 윤석열이 '추·윤 갈등' 와중에

 

급기야 대권 주자 반열에까지 올랐으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복룡 건국대 명예교수(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는 "현직 검찰총장이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현상은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다"며

 

"(윤석열을 앞세워) 복수를 바라는 지지 세력에 휘둘리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성급하게 거론되는 '윤석열 충청 대망론'을 놓고

논산에 사는 파평 윤씨 후손들도 요즘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후손들은 윤 총장이 2008년 논산지청장 시절에 종중 묘소와 유적을

두루 참배했다며 윤석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권력 눈치 보는 것은 우리 윤가에겐 치욕이다."

 

"불의를 보고도 5초 안에 화내지 않으면 윤가가 아니다."

"뻔히 드러난 권력 비리를 수사하지 않으면 윤가가 아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모여사는 파평 윤씨 후손들은 '윤석열 충청 대망론'에 대해 갑론을박했다.

사진 속 서예 작품 '淸風(청풍)'은 노정 윤두식 백록학회 이사장의 작품이다. 장세정 기자

 

그런데 윤 총장의 대권 도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달랐다.

윤여진 노성 종중 총무유사는 "정권 눈치를 안 보고 잘해온 것처럼

국민이 원해서 대통령이 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윤여갑 조사위원은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제대로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반면 서예가인 노정(魯亭) 윤두식 백록학회 이사장은

"임금이 주는 높은 벼슬을 물리친 조상의 피를 고려하면 우리 윤가는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선비 정신을 지키며 사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라고 했다.

윤여인 노성 종중 운영위원은 "우리 윤가는 긴 거는 긴 거고 아닌 건 아닌 거다.

대통령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평생 벼슬을 고사한 윤증의 호를 딴 '명재고택'을 지키는 종손 윤완식씨는

"우리 집안은 밥과 국만 끓이고 작은 과일과 생선 토막으로 소박하게 제사상을 차린다.

추석 때도 송편 대신 겉과 속이 같은 백설기를 올린다"는

 

말로 '윤석열 대망론'에 대한 대답을 갈음했다.

아름다운 한옥으로 손꼽히는 명재고택에 밤새 하얀 눈이 수북이 내려 발걸음을 내딛기가 조심스러웠다.

논산에서 지척인 공주 마곡사에서 머리를 깎았던 백범 김구 선생이

 

생전에 애송했던 '야설(野雪)'이란 옛 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호를 딴 명재고택(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밤새 함박눈이 내렸다. 장세정 기자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테니)

노론 영수 송시열과 대립한 소론 영수 윤증의 호를 딴 명재고택에 흰눈이 수북이 쌓인 모습. 장세정 기자



[출처: 중앙일보] "윤가는 나서는 성격 아니다"…尹대망론에 갈린 파평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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