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고향 경기 양평 개군에 갔더니 여기도 논 바닥이 하우스로 변한다
점점 더 늘어난다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보조금이 나와서 더 늘어 났다고 한다
논에서 쌀이 돈이 안돼니 하우스 농사로 기우는 것이다
문제는 하우스 농사가 이미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보조금이 나와도 자비부담이 있다
대부분 소농들 영세농들 자비 ! 내 돈이 아니다 대출한 돈이다
작년에 하우스 농사짓던 농민들 돈 벌었냐고 물어보니 1년동안 결산해 보니 별로 라고 한다
저금할 돈도 못 벌었다고 한다 겨우 생산비를 건진 사람들이 태반이다
일부 대농 하우스 자본 전문가 빼고
문제는 올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논에 하우스 농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불경기로 외식업도 안된다
올해 야채 생산량이 늘어나면
어쩌면 폭락이라는 농민들도 많다
아래 농사꾼 처럼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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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전업농사꾼이 된지 3년이 다 되어갑니다.
지난 3년의 농사에서 얻은 것과 배운 것이 무척 많은데 무엇보다 큰 배움은 위대한 ‘자연의 힘’입니다.
자연에 도전하지 말라는 둥의 카피를 통해서 막연하게나마 위대한 줄은 알았지만 자연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농사를 지어보니 정말 인간은 대자연 속에서 한낱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함을 느낍니다.
우리 인간이 언제부터 살균살충제, 제초제, 비닐을 써서 농사를 지었길래, 이런 게 없으면 농사가 안 된다는 것을 마치 진리처럼 떠받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도전으로 저는 지난 3년여간 제 땅에 어떤 해로운 물질도 전혀 투입하지 않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조상 농부님들이 농사짓던 생태순환적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봤는데 결국 전통방식과 현대적 관행농법의 차이는 ‘수확량’ 입니다.
즉 관행농법으로 얻은 것은 증가된 수확량이요, 잃은 것은 농산물에 담긴 생명력과 영양소입니다. 농약과 고농축의 화학비료를 먹여 두둑에 비닐을 씌워 재배한 작물은 모양도 좋고 수확량이 많습니다. 여기에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제초제까지 뿌렸으니 비료를 온전히 다 섭취한 농작물은 덩치도 큽니다.
반면에 우리 논밭의 작물은 수확량이 형편없습니다. 비닐대신 전년도 논에서 가져온 짚을 깔고, 해충이 보여도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한동안 작물에 피해를 주긴 했지만, 마치 데모를 진압하는 전경부대처럼 그 해충의 천적이 나타나서 순식간에 해충이 말살되더군요.
그러면 그 천적은 어찌되었을까요? 아마 알을 낳고 어딘가에 몰래 정착을 했거나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났거나, 그 천적의 천적에 의해 일시적으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고리가 살아있음을 직접 확인해보니 무척 기뻤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 이구나 싶더군요. 이런 조건에서 자란 우리 농작물은 무척 건강합니다. 올해는 가뭄과 태풍 등으로 작황이 시원치 않지만, 배추와 무는 영하 4~5도까지 내려가도 동해(凍害)를 입지 않았습니다.
거름도 없이 ‘헤어리베치’라는 녹비작물만으로 밑거름 삼아 재배한 우리 쌀은 도정해서 아무데나 보관해 두어도 바구미가 한번도 생기지 않았고 만성아토피성인 피부를 가진 제 체질도 거의 치유되었습니다.
고추는 진딧물과 탄저병으로 올해는 망쳤나 싶었지만 어느새 저절로 병든 잎과 고추를 떨어뜨리고 생생하게 살아나있습니다. 육쪽마늘과 생강은 그 깊은 향과 단단함이 놀라울 정도라 그 맛을 보신 분 몇 분은 시중가격의 2배가 넘는데도
수확하려면 한참 먼 내년의 것을 벌써 예약하는 분이 계실 정도입니다. 아내는 우리가 1년내내 먹을 생강차를 만들기 위해 10Kg은 남겨뒀어야 하는데, 뭐가 그리도 신나서 5Kg밖에 안 남기고 죄다 팔았느냐고 하면서 한바탕 잔소리를 합니다.
자연(自然)을 그대로 직역하면 ‘스스로 그러함’ 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비단 농작물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자연의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제 알아서 완벽하게 돌아가는 듯싶습니다. 야생의 모든 동물은 어느 정도 몸이 자라면 -즉, 성년이 되면-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완전한 독립을 합니다. 다 커서도 다시 어미 품으로 돌아가서 생계를 책임지라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남은 삶은 독립한 자기책임입니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들의 경우 철저히 우두머리의 지휘 책임하에서 외부의 침입에 단결하여 저항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두머리가 노쇠하거나 죽으면 자기들 세계에서 인정되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새로운 우두머리가 정해집니다.
그 우두머리는 자기의 이익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무리를 이끌며 목숨을 다 바쳐 사투를 벌입니다. 생태고리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우리 인간은 이런 자연의 섭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배가 부르면 더는 욕심내지 않는 동물과는 달리, 충분히 배부르고 가졌음에도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합니다.
성년이 되어도 여전히 부모 슬하에서 놀고 먹으려고 합니다. 그런 자식을 애잔하게 보살피며 독립을 못하게 하는 것도 인간부모들입니다. 자연(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도록 자식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기릅니다. 고가의 유모차, 명품 옷, 유명한 유치원, 명문대학과 대기업취업희망 등등은 부모의 그릇된 욕심입니다. 자식은 자기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부모의 요구에 의해 학교와 학원을 억지로 다니고,
자기 인생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에 의해 시험합격용의 공부를 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16년간 공부한 것은 남는 게 없고, 성년이 되어도 독립을 못합니다. 그 책임은 자기가 아니라 부모에게 있으니까 죽을 때까지 캥거루새끼로 살더라도 별로 거리낌이 없지요.
결과적으로 이런 인간의 모습은 가장 우월한 포식자이긴 하되, 가장 짧은 種으로 그 문명을 마감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류의 역사는 겨우 200만년이잖습니까?
우리가 우둔하다고 여긴 공룡만 하더라도 2억년이 넘고, 단세포 동물이나 파충류 양서류, 심지어 모기는 그 생존역사가 수십 억년입니다만 인류는 앞으로 100년이나 더 살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각종 재해를 차치하더라도 지금처럼 먹고 소비하다가는 아마 50년도 버티기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부로서, 지금도 全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식량난이 심히 우려됩니다.
매일 먹어야 할 입은 지금도 65억이 넘는데다가 경작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 들고 있습니다. 65억의 입 중에서도 중국, 인도 같은 나라의 입은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먹으려는 경쟁시스템 속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경작지만 보더라도 갈수록 논밭이 오염되고 지력이 떨어져서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뭄, 태풍, 온도 변화 등 약간의 기후변화에도 농작물은 금방 병이 들거나 죽어버립니다. 육지에서 버린 오물과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수산자원도 고갈 위기라지요?
그래서 저는 더 많은 인간들이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왕이면 농촌으로 돌아가야겠지요. 농촌은 지금 심각한 고령화로 인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 빈자리를 농기계를 가진 이들이 때우고 있습니다만, 농기계를 이용한 농사는 절대로 생태적인 농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대규모의 기계적 농사를 지으려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내는 농약과 비닐이 필요할 테지요.
올해는 남의 노는 밭을 얻어서 몇 가지 작물을 재배해봤습니다만, 생태적 방법으로 남의 밭까지 재배하긴 힘들더군요. 그 밭의 생태기능이 회복될까 싶어서 잔뜩 풀 농사만 짓느라 수확량은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먹을 만한 작물은 야생동물에게 전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제가 여력이 있었으면 밭 둘레에 높직한 방어그물이라도 쳐놨겠습니다만, 그 비용과 노동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언젠가는 속절없이 돌려줘야 할 남의 밭인지라 그런 투자를 하기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렇게 노는 땅이 우리 마을만 해도 내년에는 5천여평은 넘을 것 같습니다. 각종농기계를 다 가진 이웃 마을 농부도 우리 마을의 노는 밭에서 농사짓기를 꺼려합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 안 된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저것 다 따져서 돈이 되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떠맡아서 농사지으려 할 것입니다. 귀농하려는 많은 도시인들도 귀농하면 무엇을 하겠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특용작물이나 관상용작물을 하려고 합니다.
기왕이면 돈이 되는 것을 농사지으려고 하는 심리는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될 것 같은 이런 작물들은 귀농해서 빚까지 얻어 시설투자를 해서 막상 본격적으로 수확해서 팔 때쯤 되면 똥값이 되기 쉽습니다.
오히려 점점 돈이 되는 작물은 많은 이들이 기피하는 경종농사(밭 갈고 씨 뿌려 수확하는 농사)입니다. 지역마다 시기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마늘과 고추만 보더라도 불과 2~3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올라있는 상태이고,
고구마도 50% 이상 가격이 올라있습니다. 최근 3년간의 특용작물과 양념류, 감자, 고구마, 콩, 잡곡 같은 식량작물의 가격동향을 비교해보면 금방 아실 것입니다. 심지어 참깨, 녹두, 수수, 율무, 팥 등은 국산으로는 도시인들이 구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인이라면 모두 먹는 식량, 양념이 되는 작물은 작금의 농촌에서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농사지을 사람도 없고, 지력저하로 재배도 힘들고, 기껏 힘들게 재배해서 팔려고 하면 너무 비싸다면서 정부와 소비자들은 수입산으로 대체합니다.
경기가 나빠져서 더욱 국산농산물을 사먹기가 부담스럽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한편으로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그 소비자들의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위 농산물지출은 가계소득의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대신 얼마든지 통제하고 줄일 수 있는, 그러면서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외식비, 통신비, 자동차유지비, 미용 및 간식,의류비 등에 지출하는 비중은 아직도 농산물지출의 몇 배가 넘습니다. 그전에는 이런 모순을 잘 몰랐는데, 농사꾼이 되고 나니까 확연히 들여다보이더군요.
‘경제’라는 것이 두발 자전거와도 같아서 계속 전진(성장)하지 않으면 쓰러지게 되어있답니다. 그런데 꾸준한 성장을 하기에는 우리나라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85%가 넘는 도시인들의 소비가 생산을 한참 앞지르기 때문입니다.
자신부터 찬찬히 점검해보시면 금방 알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생산해내는 데 할애하는 시간과 무엇인가를 소비하거나 빈둥대는 시간을 따져보세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회사에서 받는 돈보다 더 많은 생산성을 낸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성장은 이제 구조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불과 20여년전만 해도 소비와 생산이 비슷했고, 그전에는 생산성이 훨씬 앞섰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보더라도 틈만 나면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찾아하셨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이시점에서 다시 도시인의 위치라면, 주저 없이 농촌으로 가겠습니다. 모든 것은 순환합니다.
화려한 문명도시는 정점을 찍고 추락할 것이요, 추락을 거듭해온 농촌은 다시 기회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중국의 중산층만 되더라도 자국 농산물을 믿지 못하고 한국의 질 좋은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답니다.
쌀은 아직 멀었지만 잡곡과 양념채소의 농사는 큰 투자가 필요치 않은데, 부지런히 제대로 농사를 지어내면 평당 2만원 이상의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기농이면 50~100% 이상은 소득이 높아집니다.
어떠신가요? 건강과 체력, 그리고 강인한 의지만 뒷받침된다면 남은 평생을 걸고 해 볼만 하지 않습니까?
<지난 달초, 기계로 갈지도 않고, 쇠스랑으로 거칠게 밭을 일구어 올 6월 수확한 육쪽마늘 중 잘생긴 놈만 골라 다시 심었습니다. 그리고 검은비닐을 씌우지 않고, 대신 우리 논의 볏짚과, 수확하여 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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