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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에서 묵비권 행사가 정답

참도 2019. 12. 4. 11:20

헌법 제12조 3항은 영장 신청권을 검사에게 인정한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2는 경찰이 영장을 신청할 때는 검사를 거칠 것을 요구한다.

같은 법 제196조는 검찰에게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부여한다.

우리 법률이 검찰 쪽에 우월적 지위를 부여한 것은 검찰의 인권 보호 기능에 대한 기대감과 관련이 있다.

법률 전문가인 검사들이 경찰의 불법·부당한 수사로부터 국민 인권을 지켜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검찰은 그 같은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터무니없는 간첩 조작도 벌이고, 과도한 표적 수사도 벌이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그래서 국민의 불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런 불신이 검찰개혁 촛불집회로 표출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묵비권을 행사한 것도 그런 점에서 납득할 만하다.

 검찰은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일이 적지 않았다.

 검찰에 가서 잘못 말했다가 불이익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찰에서는 입을 다물고 법정에서 죄다 말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수사관의 임의동행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죄가 없고 떳떳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검찰에 가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다.

이 경우, 검사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검사라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검찰이 표적 수사를 벌이는 중이라면, 그 같은 순순한 행동은 좀 위험하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검사 앞에서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해도, 자신을 법적으로 잘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검사의 홈그라운드인 검찰청에서 검사의 전문 분야인 법률문제를 놓고,

거기다가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피의자가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는 쉽지 않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검사의 의도에 휘말려 들어 오히려 죄를 뒤집어쓸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미필적 고의라는 게 있다. 이재상 이화여대 교수의 <형법총론>은

"행위자가 구성요건적 결과의 발생을 확실하게 인식한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예견하고 행위한 경우를 말한다"고 정의한다.

살인의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갖고 행동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서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위 책은 미필적 고의의 또 다른 예로 "하인이 주인으로부터 꾸중을 듣고 화가 나서 볏짚을 쌓아둔 데서 담배를 피우면서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불이 나도 좋다고 생각하고 담배를 피우다가

화재를 낸 경우에 살인죄 또는 방화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법률 지식이 없는 사람이 혹시라도 악의적인 검사를 만나게 되면, 이 같은 미필적 고의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예컨대, 목재공장 사장한테서 뇌물을 받은 검사가 '노조 설립을 추진 중인 직원 하나를 처벌해 달라'는 부정 청탁을 받고

그 노동자를 수사할 때도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사장과 갈등을 빚어 감정이 격앙된 노동자한테 검사가 "사장과 싸운 뒤 사무실 옆 목재더미 옆에서 담배를 피운 사실이 있냐?"며

 "거기서 담배를 피우면 불이 나서 사무실로 번질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넌지시 물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노동자가 "내가 알 게 뭐요! 불이 나든 말든"이라는 식으로 무심코 대꾸해 버린다면,

검사가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저울질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미필적 고의의 법리를 전혀 모르는 노동자라면, 나중에 자기가 방화죄나 살인미수죄로 기소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될 수도 있다.

경찰에서 한 진술과 달리 검찰에서 한 진술은 '피의자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만 인정되면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따라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노동자가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해석될 만한 진술을 검사 앞에서 했기 때문에,

 무심코 내뱉은 그 한마디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단순히 분을 삭이려고 담배를 피웠을지라도,

 악의적인 검사를 만나게 되면 엉뚱한 재앙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금태섭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2006년 9월 10일 자 <한겨레>에 기고한 '피의자가 됐을 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글에서 "약자인 피해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 두 가지 있다"면서

 "첫째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는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것이다"라고 한 뒤 이렇게 풀이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억울함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설사 죄를 지은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유리한 점을 찾아내서 수사에 대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파멸로 이끄는 길에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예외는 없다
 

포토라인 설치된 서울중앙지검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 조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소환을 대비해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 설치된 포토라인(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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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구속하겠다는 각오로 수사하는 검사의 귀에는 유죄 입증에 유리한 진술만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피의자가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의 방어수단이 죄다 노출돼 검사에게 빌미가 잡힐 수도 있다. 그래서 검찰에 가면 묵비권을 행사하든가 변호인을 대동하라는 권유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만 해당하는 권유가 아니다. 검찰에 가는 누구한테나 다 해당한다.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거나 법을 잘 아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11월 25일,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그가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한명숙 총리가 주재하는 오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활용해, 검찰은 한명숙 쪽으로 비자금이 흘러갔을 가능성을 집중 추궁했다.

만약 곽영욱이 묵비권을 행사했더라면, 엉뚱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오점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검찰 수사에 휘말려, 5만 달러를 한명숙에게 제공했다는 허위 진술을 하고 말았다. 황창하 전 총리 비서관이 쓴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은 그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곽영욱이 검찰 수사 때 있었던 일을 법정에서 폭로하는 대목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곽 사장은 법정에서 '검사님이 너희들 전주고등학교 나온 놈들 대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정치인 대라고 그랬고'라고 증언했다. (중략) '검사님께서 처음에 정치인들을 불으라고 해서 불었는데, 그것이 시효가 오버되었다고 했습니다' 등의 증언을 했다.

이러한 증언은 처음부터 검찰의 수사가 정치인들을 타깃으로 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곽 사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한 총리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두 번 부정한 바 있다. 처음에는 10만 달러, 다음으로 3만 달러라고 진술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마지막에 5만 달러를 주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곽 사장의 이 마지막 진술을 바탕으로 공소를 제기했다."

 
한명숙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는 2013년 3월 대법원 무죄판결로 해소됐다. 곽영욱이 검찰 조사에 휘말려든 결과로, 엉뚱한 사람이 오랫동안 고생을 했던 것이다.

검사 출신도 '검찰에 가면 입 다물라'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품는 이가 있다. 전직 검사인 김용원 변호사다. 검찰이 노무현을 죄인으로 만들려고 작정한 상황에서 김해에서 서울까지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가서 10시간 가까이 우병우 검사한테 열심히 진술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그는 안타까워한다.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라는 저서에서 그는 약간 격앙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멋지게 해명을 해봤자 이명박 정권에 봉사하는 검찰이 그를 불기소할 리 없었다. 검찰의 그에 대한 소환은 공소를 제기하기로 하는 결론이 미리 나 있었음을 의미한다. (중략) 노무현 대통령은 공소제기를 당한 뒤 법정에 가서 진술해야 할 내용을 쓸데없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이다."

 
김용원 변호사는 노무현이 몇 마디 말로 혐의를 부인한 뒤 침묵을 지켰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이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진술한 후 담배나 피우면서 검사가 뭐라고 질문하든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검찰 조사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소제기를 당한 뒤 검찰의 증거 제시를 봐가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어야 했다."

 
이렇게 검사 생활을 했던 사람들까지도 '검찰에 가면 입 다물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어떤 평판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까지 검사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잘 반영해준다. 경찰을 견제하고 인권을 보호할 검찰이 도리어 국민을 억압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 많았기에 이런 평가를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검찰청 입구 포토라인에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습니다'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청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기자들 앞에서는 입을 닫고 검사 앞에서는 입을 연다.

기자들 앞에서 입을 닫는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검사 앞에 가서 입을 열겠다는 그들의 전략은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잘못된 전략이다. '검찰 조사에 묵비권으로 대응하고 나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원칙이다. 슬픈 말이지만, 그게 지금은 원칙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돼 검찰 개혁이 이루어진 뒤라면 모를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성실하게 조사받겠다'는 말과 함께 변호사도 없이 검찰청 청사로 용감하게 뛰어드는 것은, 얼굴 가리개도 없이 벌집에 다가서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