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같은 카트만두 한국어학원
[서울신문][2019 이주민 리포트-코리안드림의 배신] (2) 두 얼굴의 한국
네팔에서 한국어는 ‘권력’이다.
올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보겠다며 접수증을 끊은 네팔인은 모두 9만 2376명.
이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어야 한국의 공장, 농장 등에서 고된 일이라도 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올해 한국 국가직 7급 공채 필기시험 접수자(3만 5238명)보다 약 2.5배 많다.
한국의 ‘N포세대’ 청춘들이 공무원증에 목숨 걸 듯
가난한 삶에 지친 네팔 청년들은 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해 젊음을 바친다.
이들은 한국어만 배울 뿐 정작 일하다 다치거나 억울한 일을 겪을 때 대처법 등은 잘 모른 채 한국에 온다고 말한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27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한 한국어 학원에서 네팔 청년 10명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긴(네팔) 공장도 없고 일자리도 없어요.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에 가면 월 30만~40만원 벌지만
한국에서는 170만원 정도는 벌 수 있대요.”
카트만두 뉴바네쇼 거리에 있는 ‘바사 번다르’(네팔어로 ‘언어의 창고’라는 뜻) 한국어 학원에서 만난 칼키 어닐(22)은
네팔 청년층의 ‘코리안드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닐과 같이 공부하는 수문 마탕(21)은 “원래는 네팔 공무원이 되고 싶었지만
‘빽’이 없으면 어렵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면서 “고교 졸업 뒤 한국어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주노동의 나라’인 네팔에서 꽤 특별한 위치에 있다.
24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네팔에서 한국어능력시험에 원서를 접수한 인원은 2008년 3만 1530명에서
올해 9만 2376명으로 약 3배 늘었다.
이주노동지역 중 한국을 선호하는 네팔 청년층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네팔 주간지인 ‘네팔리 타임스’에 따르면 네팔에서는 네 가정 중 한 가정꼴로 해외에서 일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
‘기회의 땅’으로 알려지다 보니 카트만두에는 한국어 학원이 성업 중이다.
카트만두의 한국 고용허가센터(EPS)에 따르면 이 도시의 한국어 학원은 816곳이나 된다.
가장 큰 한국어 학원 ‘신화’의 수강생은 1000여명이다.
시험 준비를 하는 모습은 우리 취업준비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에서 한국어 학원을 하는 슈만 타파(28) 원장은 “
수업은 오전 7~10시나 오후 4~5시쯤 진행한다”면서 “
수강생들이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이른 아침에 공부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1년에 1만 7000루피(약 18만원)에 달하는 학원비를 감당하려면 책상 앞에만 앉아 있을 수 없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바지르 부다토키(41)는 “제조업 분야로 이주노동을 가려면 1~2문제,
농업 분야는 3문제 넘게 틀리면 탈락한다”면서 “
제조업이 돈을 더 주기에 커트라인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빚을 지는 청년도 많다.
“1년간 시험 준비에 120만~200만원쯤 들다 보니 가족이나 친척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는 하소연이 적지 않았다.
한국행에 실패하면 빚더미에 앉아 인생이 꼬인다.
네팔 청년들에게 이주노동 도전이 큰 모험인 이유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게 된다면 20만원 안팎의 생활비만 빼고 번 돈 대부분을 가족에게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1960~1970년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독일행을 택했던 우리 파독광부나 간호사들과 비슷하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해도 바로 한국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 사업주가 고용센터의 추천(3배수)을 받아 적합한 자를 선택하기 때문에 합격했더라도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다.
시험 성적의 유효기간은 2년이다.
금쪽같은 20대 초반에 기다리기만 하다가 자격이 사라지는 청년들도 있다.
2년 전 한국어시험에 합격한 시리지나 구릉(24·여)과 은지니 구릉(23·여)은
“사람들은 ‘언제 한국에 가느냐’고 묻는데 초조하다.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한국행을 확정지은 노동자들은 네팔 EPS 트레이닝센터에서 1주일간 교육을 받는다.
트레이닝센터에서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38시간),
보험 및 산업안전 보건, 근로자의 심리적 피해와 방안(7시간) 등을 배운다.
그러나 서선영 연세대 사회학과 전임연구원은 “한국 문화를 배울 때 작업장에서 얼마나 위계질서를 잘 따라야 하는지
등을 중점 학습하며 노동권이나 인권에 대한 교육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전 교육 과정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예컨대 교육 때 네팔 내 노조나 인권단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어 학원장인 닐 컨터 시레스타(45)는 “트레이닝센터에서는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
‘데모하지 말라’고 배운다”고 전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필수 교육시간(45시간)은 양 국가 간 양해각서(MOU)를 맺어 진행한다”면서도 “
현지에서 현지 강사들이 교육하는 부분까지 산업인력공단에서 개입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제주도 돼지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고클 샤마(23)는 지난 2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
걱정도 된다. 그래도 잘 배우며 일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 이를 전해 들은 그의 한국어 선생님은 “한 달 뒤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전화가 올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카트만두·포카라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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