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윤일병

세월호 잠수사 사망

참도 2016. 6. 17. 17:06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참가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43)씨가 17일 오전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기 고양소방서는 17일 오전 7시52분께 경기 고양시 용두동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쓰러진 채 숨져 있는 김씨를 발견해 경찰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새벽 3시께 지인한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고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유족 진술 등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을 의뢰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뒤 7일 만에 수중 선체 수색 작업에 합류해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던 김씨는 지난해 12월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참사 수습 현장의 혼선 등 문제점을 증언했다. 그는 당시 청문회 현장에서 정부 책임자들이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하자 “나는 당시 생각이 다 난다. 잊을 수도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고위 공무원들은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나”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김씨는 수색 작업으로 얻은 잠수병으로 잠수를 할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면서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에 함께해 왔다. 또한 지난 4·13 총선 당시에는 ‘세월호 변호사’로 불리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차량을 운전하는 등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김씨의 빈소는 서울시립서북병원에 차려졌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다음은 숨진 김관홍 잠수사가 지난해 9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국민안전처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내용.

정청래 위원(정): 해난 사고에 또 하나의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시신을 수습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 참고인 나와 주세요. 저분은 세월호 48m, 심야에 10㎝밖에 보이지 않는 그런 곳에서 세월호 시신 25구를 수습하신 분입니다. 김관홍 씨 맞지요?

김관홍 잠수사(김): 안녕하십니까? 잠수사 김관홍입니다.

정: 세월호 참사가 나고 민간잠수사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모였지요?

김: 예, 그렇습니다.

정: 몇 분 정도 모였습니까?

김: 사고 발생 17일부터 저희 형제들이 모이기 시작해 가지고 제가 23일 날 그 당시에는 일곱, 여덟 분밖에 안 계셨고, 5월 10일이 넘어서야 25명이 채워졌습니다.

정: 그분들이 시신을 수습을 몇 구 하셨습니까?

김: 저희가 총 11구를 남기고 나왔으니까 292구, SSU와 292구를 저희 리베로 바지 위에서 인양했습니다.

정: 그렇습니다. 선체로 해경잠수부가 들어갔습니까, 못 들어갔습니까?

김: 해경잠수부는 들어갈 능력도 장비도 안 됐습니다.

정: 선체로 진입한 것은 다 민간잠수사였지요?

김: 예.

정: 그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 속에서 듣기로는 엉켜 있어서 단원고 학생들이나 이런 분들을 한 분 한 분 떼어내는 데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다고 그러는데 그 상황을 좀 말씀해 주세요.

김: 희생자들은 극심한 공포와 낮은 수온과 그리고 수압에 의해서 아주아주 고통스럽게 사망하셨습니다. 이 얘기는 제가 이 자리를 빌려 처음 말씀드리나 저희 잠수사들이 수중에서 보아 왔던 희생자들은 눈으로 본 게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만져지고 느끼고 냄새로…. 그들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한 구 한 구 엉켜서, 저희 손으로 한 구 한 구 달래 가면서 한 구 한 구 안아서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어머니한테 가야 되지 않느냐. 아버지한테 가야 되지 않느냐’ 이렇게 달랬을 때 엉킨 손이 풀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민간잠수사들이 구해 왔는데 결국 지금 이 민간잠수사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김: 5월 5일 해경에 의해서 들어온 민간 다이버 두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 중에 한 분이 5월 6일 날 첫 잠수에서 사망하셨습니다. 그 사망 이유가 민간잠수 선임이셨던 공우영 형님께서 저희 민간잠수사를 책임지고 있다고 하셔서 그분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형사 고발을 했습니다.

정: 공 잠수사가 돌아가신 분을 인솔했습니까?

김: 아닙니다. 저희는 어떤 권한도 능력도 없었고 만약에 그 형님이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그러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 그러니까 해경이 결국은 잠수도 허락하고 다 한 거지요?

김: 체계가 잡힌 후 해경의 일방적인… 내용도 모르는 분들이,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저희에게 일방적으로 강요와 지시만 했습니다.

정: 그렇습니다. 공 잠수사는, 잠수사들이 굉장히 기술과 능력이 여러 가지 있기 때문에 융합하기가 힘든데 그분이 오면 그분의 리더십을 다 인정하고 있지요?

김: 현재 현업에 종사하는 잠수사 중에 경력과 인지도는 최고의 형님입니다.

정: 그분이기 때문에 잠수사들이 자연스럽게 따른 거지요?

김: 저희 투입된 잠수사들은 개별적으로 사업자가 있고 현장에 입찰 또는 이런 것으로 들어가지만 그 형님이기 때문에 그 형님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 자, 그런데 그중에서 잠수사 사망 사건이 발생했는데 공 잠수사 그분에게 모든 책임을 지금 덮어씌우기 하고 있는 거지요?

김: 예, 그렇습니다.

정: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김: 사망사고가 난 이후 누군가 책임을 져야 된다는 그런 것 때문에 저희가 일단 쫓겨나고 공우영 형님을 형사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꾼 다음에 저희한테 다시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요. 그것을 정부가 했습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왜 저희 민간잠수사입니까? 저희는 거기 그 현장에 돈을 벌려고 간 게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자발적으로 저희 마음이 아파서 간 거지 돈을 벌려고 간 그런 현장이 아닙니다.

정: 지금 김관홍 잠수사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계시지요?

김: 예, 그렇습니다.

정: 본인의 지금 피해 상황을 좀 말씀해 주세요.

김: 저는 4월30일 날 사고로 인해 죽었다 깨어났습니다. 5월 3일 날 다시 투입해서, 그 전에 일단 저도 진단이 나왔지만 허리디스크 두 군데, 목디스크 한 군데, 어깨회전근막 그리고 트라우마…. 그리고 저는 골괴사가 안 나왔지만 다른 형님 여덟 분은 골괴사로 고생하십니다. 그중에 한 분은 치료를 받았고 한 분은 치료받지 못했습니다. 12월 말까지 전부 일괄적으로 치료를 마치라 해서 그게… 일괄적으로 그게 되지 않습니다. 치료 중단되고….

정: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국가를 대신해서 선체로 들어가신 분들은 해경이 아닙니다, 이 민간잠수사예요. 시신 290여 구를 수습해 왔어요. 그런데 잠수사 한 분이 사망했습니다. 그 책임을 그 리더였던 그분에게 지금 덮어씌워 가지고 재판을 걸고 있어요, 책임지라고. 이게 국가가 할 짓입니까? 이분들의 아픔을 감싸 안는 국민안전처가 되기 바랍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보세요, 장관님!

박인용 국민안전처장관: 이 내용을 보고를 받았는데 저는 법적인 지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게 재판 중이기 때문에 제가 법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장관으로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 자, 제 시간은 끝났지만 혹시 하실 말씀 더 있으면 잠깐 하고 들어가십시오.

김: 저희 법적인 논리 몰라요. 돈을 벌려고 간 현장이 아닙니다. 돈을 벌려고 간 현장이었으면 우리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한 번밖에 들어가면 안 되는 그 수심에서 많게는 네 번, 다섯 번…. 법리 논리 모릅니다. 제발 상식과 통념에서 판단을 하셔야지, 법리 논리? 저희가 간 게, 양심적으로 간 게 죄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타인한테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