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연합 배후를 두고 국정원에 의혹의 눈길이 쏠렸다. 국정원의 사정을 잘 아는 여러 인사에 따르면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에 어버이연합 지원이 강화되었다. 당시 국정원 내부의 무리한 인사 조처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종북’이라 욕하고,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장 앞에서 자장면을 먹고, 정신대에 끌려간 할머니들에게 “그만하라”고 행패를 부리고, 역사 교과서 태스크포스 사무실 앞에서 경찰서장을 때리고,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화형식을 하고, 서울시청 앞에서 “원순이 이년, 나와라” 하며 집회를 열고, 김무성·유승민을 찍어내라고 소리치고, 진보 인사에게 무죄를 내린 판사 집에 몰려가고…. 이명박 정부 이후 어버이연합의 활약상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모든 게 돈과 정보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동안 어버이연합 배후를 두고 국정원에 의혹의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어버이연합 게이트 수사를 맡은 검찰은 한 달 넘게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 내곡동에 위치한 국정원 건물 전경. |
<시사IN>은 어버이연합이 국정원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여러 인사들의 증언을 확보했다. 이들은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로, 익명으로 취재에 응했다. 먼저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의 증언이다. “어버이연합과 관련해서 현재 국내 정보수집 ㅊ국장 산하 사회단체 담당팀에서 작업하고 있다. 국정원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시위 때마다 예산이 나가고 협조자에게 돈도 지불한다. 노무현·김대중 정부에서는 국정원이 시민단체 관리를 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시작했다. 어버이연합은 원세훈 원장 때 지원이 강화되면서 확 떴다.”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또 다른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건전 단체는 사회3팀 관할이다. 건전 단체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은 국정원만이 갖고 있다. 어버이연합을 관리하는 부서는 원래부터 있었다. 그런데 원세훈 원장 시절 국정원에서 어버이연합 지원이 강화됐다. 대학생포럼 관리도 국정원이 하는 것으로 안다.” ‘건전 단체’는 국정원에서 보수 단체를 지칭할 때 쓰는 용어다. 국정원과 어버이연합의 커넥션 의혹에 대해 국정원은 “어버이연합과 국정원은 무관하다”라고 <시사IN>에 공식 해명했다.
<시사IN> 취재에 따르면 국정원의 보수 단체 지원 계기는 2008년 촛불집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보수 단체 우군화 작업의 일환이었다.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인사는 “전직 직원 가운데 ㅅ이 방송에 나와서 국정원과 원세훈 원장을 비판했다. 원세훈 원장이 감찰실을 통해 조사를 지시했다. ㅅ의 비판 발언을 자제시키고 그가 관계하던 어버이연합을 우군화시켰다. 초반에는 사회팀장이 맡아 역할을 하다가 지방으로 전보됐다”라고 말했다.
우군화 작업 대상은 연예인들도 비켜가지 않았다. 당시 국정원에는 연예TF팀이 꾸려졌다. 경제팀장·사회팀장 등이 참여해서 진보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 관리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사회를 본 김제동씨에 대한 사찰이 이때 이루어졌다. ㄱ, ㅇ, ㄱ, ㄹ 직원 등이 이 TF팀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했다.
정권 보위에 매달린 국정원의 행태는 ‘이명박 국정원’에서 씨가 뿌려졌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은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다. 하지만 실세가 아니었기에 ‘이상득 라인’에 밀리고, ‘최시중 라인’에 치였다. 현직 국정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사찰을 당하기도 했다. 2010년 11월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국정원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이 행정관이 김 원장을 사찰했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부산 출신인 김성호 원장이 친노 성향, 부산·경남(PK) 출신만 챙긴다면서 이 행정관이 이종찬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김성호 원장 체제의 문제점’을 보고했다. 일부 국정원 직원들은 김 원장이 다니는 일식당을 조사하고, 원장을 ‘미감(미행·감청)’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9년 2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측근인 원세훈 전 행안부 장관(오른쪽)을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
특별정신교육과 국내정보 수집 부서원 물갈이
2009년 2월 국정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원세훈 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교체되었다. 다음은 원 전 원장을 잘 아는 인사의 증언이다. “원세훈 원장의 첫 국정원 간부 인사 기준은 호남과 PK 물갈이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잘나가던 인사들이 대거 지방으로 좌천되거나 특별정신교육 대상이 되었다. 특별정신교육은 해병대 캠프에서 이뤄졌는데 그 방법은 삼청교육대와 유사했다. 국정원 고위직 ㄱ씨와 ㅇ 과장·ㄱ·ㅂ·ㅈ·ㅇ·ㅊ 직원 등이 만든 살생부를 근거로 4급 이상 간부 직원들을 차출해 해병대 교육을 보냈다.”
해병대 교육 커리큘럼은 국정원 인사팀에서 교육담당 과장을 맡고 있던 ㅇ씨가 짰다고 한다. 대구·경북(TK) 출신인 그는 이명박 정부 초기 김성호 원장 시절 몇몇 TK 출신 국정원 직원과 함께 비밀리에 ‘호남(김대중)· PK(노무현) 살생부’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원세훈 원장이 부임하면서 그 살생부가 현실화되었다. 살생부에 든 이들은 2~4급 국정원 직원 가운데 80여 명으로 알려졌다.
특별정신교육과 함께 이뤄진 원세훈 원장의 인사 특명은 해외에 파견된 직원과 연수생 물갈이였다. 소환 대상자 선정 작업 역시 인사정보 자료를 관리하고 있던 인사팀 ㅇ과장이 주도했다고 한다. 원세훈 원장은 취임 뒤 곧바로 차장 인사를 통해 친위체제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TK 출신이 약진했고, 이들과 ㅇ과장이 해외 파견 직원과 연수생 소환 대상자 명단도 작성했다고 한다. 해외 파견 직원 가운데는 정보 수집 목적으로 해외 반한 교민단체나 인사와 접촉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소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또 다른 인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 내 TK 출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정보 보고를 했다는 이유도 소환 사유가 됐다”라고 말했다. 2009년 4~5월에 이뤄진 소환의 대상자는 5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소환된 자리를 원 원장은 자신의 측근과 영포라인 등 TK 출신으로 교체했다.
ⓒ연합뉴스 2012년 2월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검증을 요구하며 어버이연합이 시위를 벌였다. |
원 원장은 이렇게 파격적인 스타일로 이미 자리 잡았던 국정원의 시스템 인사를 무너뜨렸다. 파격 인사의 백미는 국내정보 수집 부서원 전원 물갈이였다. 원 원장은 자신의 측근 ㅇ에게, 수사·대북·해외·정보·분석 등 능력과 경력을 고려하지 않는 쇄신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원세훈 원장은 국내정보수집국 정보를 믿지 않았다. ‘원장 자리는 원내 정보뿐 아니라 밖에서도 들어오는데 확인하면 원 첩보는 50%가 가짜더라’고 불신이 심했다”라고 말했다. 잇단 원세훈 스타일 인사로 국정원 안에서는 파면·해임자가 속출했다. 인사 시기도 제멋대로였다. 정년과 연금이 달려 있는 법정 승진 시기는 공무원에겐 가장 민감한 사안인데 이마저도 무너졌다. 국정원 내부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반대로 원세훈 원장의 지배 체제는 공고해졌다. 국정원 직원들은 지금도 원세훈 전 원장이 이끈 4년1개월을 ‘동토의 왕국’이라고 부른다(18쪽 딸린 기사 참조).
조직을 장악한 원세훈 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을 종북몰이에 나서도록 내몰았다. 당시 국정원 안에서 유명한 지도가 있다. 대공수사국에서 만든 ‘종북·좌파 지도’다. 국정원 내에서도 보수적으로 평가받는 수사국이 주도했다. 진보적인 시민단체가 망라됐다. 그 안에는 전교조도 포함됐다. 원 원장은 이 지도를 극찬했고, 신봉했다고 한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의 증언이다.
“원세훈 국정원의 최고 과제, 가장 큰 특명은 종북·좌파 세력 척결이었다. 정권에 반대 목소리만 내면 무조건 종북·좌파로 몰아가라는 지침은 이때부터 생겼다.” 그는 또 “종북·좌파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보도된 데는 국정원 언론팀의 활동도 한몫했다”라고 귀띔했다. 국정원에서 심리전단을 확대하고 물적·인적 지원을 늘리는 댓글 공작의 싹이 튼 것도 이즈음이었다. 원 원장은 매달 여는 부서장 회의와 매일 하는 모닝 브리핑에서 주로 강조했다.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원 전 원장은 좌파·종북 세력이 넘쳐나는 다음 아고라나 진보 언론 사이트에 들어가 반대 댓글을 올리라고 지시하면서 자신도 퇴근하면 공관에서 직접 댓글에 대한 찬반 클릭을 한다는 말도 했다”라고 전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이석현 의원이 국회에서 ‘국정원 직원의 김성호 원장 사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국정원 정문에서 일어난 ‘BMW 돌진 사건’
국정원이 종북몰이에 동원되는 사이 정작 중요한 정보활동이 무너졌다. 2010년 3월 리비아에서 국정원 직원이 간첩 혐의를 받고 억류되는가 하면, 2010년 5월 프랑크 라뤼 유엔 특별보고관을 미행하다 사진이 찍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2011년 2월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머물던 롯데호텔에 침입해 노트북을 훔치다 현장에서 발각돼 세계 정보기관 역사에 남을 해프닝을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원 원장이 외사방첩국의 ‘특방(특수방첩)’ 활동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정원 상황을 잘 아는 또 다른 인사는 “당시 원장이 미국에 나가 있었다. 원장이 별다른 이유 없이 미국에 너무 자주 나가 수행원을 떼어놓고 사라지는 통에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2011년 12월19일 낮 12시 북한 조선중앙TV는 특별방송을 했다. ‘김정일 사망.’ 원세훈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12월19일 텔레비전을 보고 사망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원세훈의 국정원’ 내부 상황을 잘 아는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보 기강 와해는 원 전 원장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지금도 직원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와 관련한 사례가 적지 않다. 원장 취임 직후, 술 취한 운전자가 BMW 승용차를 몰고 국정원 정문을 통과한 보안 사고가 터졌다. 그 운전자는 국정원 방호원을 피해 본관 화장실에 숨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방호원들은 바로 지방으로 전보 조치됐다. 원 원장은 쫓아가지 않은 직원까지 징계를 내렸다. BMW 돌진 사건 이후 국정원의 출입문은 5개로 줄었고, 보안검색대를 강화했다. 출입문을 줄이다 보니, 직원들 출근 때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비 오는 날은 주차장까지 줄이 이어지는 장사진이 연출되기도 했다. 사저 경비를 하는 방호원들은 원 원장의 눈 밖에 나 인사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CCTV에 방호원의 근무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원 원장의 부인 이 아무개씨의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한 번은 방호원이 원장 부인을 알아보지 못해 인사를 하지 않았다. 곧바로 그 방호 직원은 인사 조치되었다.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경기도에서 충남으로, 전국으로 인사가 났다. 이를 비관해 자살한 방호원도 있었다. 반면 원 원장의 부인 이 아무개씨 친척은 국정원 계약직 ‘라급’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국정원장은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내 관저에서 지내야 한다. 경호와 보안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원 원장은 도곡동 타워팰리스 옆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건물 18층 한 층을 통째로 관저로 사용하려 했다. 그곳은 주거용 공간이 아니었다. 이 건물은 업무 시설 및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돼 주거 시설을 지으려면 관할 구청에 건물 용도변경 신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 절차를 생략했다. 보안과 예산 문제 때문에 직원들도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원 원장은 자신의 친구인 한 대기업 건설사 사장을 직접 불러 인테리어를 지시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용도 변경 후, 직원들은 냉장고에 음료수까지 채워 원장 부인에게 허가를 맡아야 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2013년 1월4일 불법 정치개입 의혹을 받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수서경찰서에 출석했다. |
2010년 하반기에는 국정원 내부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직원들은 이를 ‘어린이집 손녀 사건’이라고 부른다. 원 원장의 손녀가 원장 공관에 왔다가 국정원 후문 바로 앞에 있는 직원 어린이집 놀이터에 놀러 갔다. 하필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이라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원 원장 손녀는 어린이집 밖 모래밭에서 혼자 놀다가 돌아갔다. 머리에 모래를 뒤집어쓰고 들어온 손녀를 본 원 원장의 부인이 노발대발했다. 해프닝인데도 이 사건은 특별감사로 이어졌다. 어린이집 관리 회사마저 바뀌었다. 어린이집 담당 간부는 지방으로 전보 조처됐다.
취임 초기 원 원장은 직원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를 즐겼다. 하지만 직원들이 식당에서 자기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를 자주 냈다고 한다. 취임 6~7개월 이후부터는 집무실 안에서 밥을 먹었다. 원 전 원장을 잘 아는 한 인사의 증언이다.
“원 원장은 ‘원장 보고 인사도 안 한다’라며 자주 화를 냈다. 한 번은 국정원 안에 있는 중앙동 지하 1층 파리바게트에서 원장이 커피를 마시는데 직원 한 명이 테이블에 있는 의자 하나를 말없이 가져갔다. 이 일로 원 원장이 엄청 화를 냈다. 행정 관료 출신으로 정보를 다루는 직원들이 놀고먹는다는 강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으로 시작해 국정원으로 끝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이탈리아 해킹팀 도감청 프로그램 도입 등 매년 의혹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채동욱 검찰총장의 뒷조사에 연루된 직원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주도한 대공수사팀 권 과장은 검찰 조사를 받던 중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기도했다. 병원 측에서는 권 과장이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권 과장은 지금도 국정원 수사국에서 일하고 있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공작을 했으면 성공을 하든지, 실패를 했으면 말을 말든지…. 국정원이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면서 조직은 계속 무기력하게 죽어가고만 있다. 이는 국익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현재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 ㅊ, ㅇ, ㅂ, ㅎ 등이 ‘신TK 실세’로 떠올랐다. 이들은 국가 보위보다는 정권 보위에 치중한다. 간첩 잡기보다는 ‘종북 세력 때려잡기’가 더 중요해지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정희상·주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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