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엔 이틀 앞으로 다가온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주관할 장례위원회가 꾸려졌다. 정부는 유족 측과 협의를 거쳐 황교안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총 2222명 규모의 장례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이중엔 YS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공동대표를 맡았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창립멤버 350여명도 있다. YS의 상도동계와 DJ 동교동계 인사들이 두루 포함됐다는 뜻이다.
명단이 발표된 직후인 오후4시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빈소에 있던 기자들에게 "김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대국민 메시지가 '통합과 화합'이라며 "그래서 대통령 뜻에 따라 가시는 길을 통합과 화합차원에서 모셨다"고 말했다.
오후 5시27분 시민사회 원로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빈소를 찾았다. 그는 방명록에 "위대한 생애,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빈소에 약 15분간 머무른 뒤 나오는 그를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이 배웅했다. 손 전 고문은 사흘째 빈소로 출근하고 있다. 손 전 고문이 기자들에게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냐"고 거들자 백 소장이 앞으로 나섰다.
▶백기완 소장="자기 소신대로 일생을 사셔온 분이야.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사신, 정말로 빼어난 분이라고 생각해요. 정말로 명복을 빕니다. 1987년도에 군사독재 끝장을 위해서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로 되어야 한다고 눈물로 호소할 때에도 김영삼 선생님이 기꺼이 응해줬던 생각이 나. 군사독재 끝장을 낼때다! 라고 하니까 눈물을 글썽이시더라고…"
늦은 오후에도 여야 의원들이 빈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5시41분엔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오후 5시57분엔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새정치연합 전순옥 의원이 빈소를 찾았다.
▶정두언 의원="(YS는) 화끈하고 시원한 정치를 한 분이예요. 요새는 정치가 너무 쫀쫀하고 답답해. 지금 이 양반이 독재를 깨고 민주 시대를 연 분인데 우리 정치는 그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그 과거 권위주위시대로. 민주화시대를 만든지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보니 더 거꾸로 가."
▶전순옥 의원="(빈소 안에서) 손 전 고문을 만나 오랜만에 반가워서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님은 제가 논문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러 갔을때에도 매우 잘 대해주신 분입니다. 제 어머니하고 친한 사이셨고요."
이들이 빈소를 빠져나간 뒤인 오후 6시30분. YS를 36년간 수행한 김기수 비서관(1급)이 YS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함께였다.
▶김기수 비서관="(YS 자주 가신 칼국수 집은) 거기 성북동 국수집이 원조고 소호정도 가시긴 가셨어. 소호정은 나중에 생겼어. 갈비탕은 전혀 아니야. 갈비탕은 옛날에 여럿이 많이 먹으려면 설렁탕을 많이 먹었다는 거지. 행사에. 선거할 때도 그렇고. 음식이 100~200명 먹으려면 뭐 그러니까."
▶이원종 전 수석="난 정치를 그 분에게 많이 배웠어요. 청와대 정무수석을 하러 갔더니 사무실 번호가 0003이야. 나중에 핸드폰이 나왔을 때 아는 사람이 있어서 핸드폰 끝자리 번호도 0003으로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됐어요."
오후 6시42분엔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빈소를 찾았다. 조문을 마친 정 전 의원이 다실에서 손 전 상임고문과 조우했다.
▶정봉주 전 의원="대표님, 내년 총선 후에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던데요~?"
▶손학규 전 고문="에이, 그런 일 절대 없다. 그런말 하면 여기서 (기자들이) 또 소설쓴다니까."
오후 8시가 넘은 시각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은 그칠 줄 몰랐다. 오후 8시30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빈소에 들어섰다. 김 전 실장은 15대 총선에서 YS의 공천을 받아 정계에 진출한 인연이 있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이 김 전 실장을 발견하곤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15분 뒤엔 역시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YS로부터 공천을 받아 여의도에 입성했던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기춘 전 실장="늙은 사람은, 나는 젊어봤다 이거야. 너희는 늙어봤냐."
▶이인제 최고위원="허허(웃음)."
▶김기춘 전 실장="늙은 사람하고 젊은 사람, 노장청(老壯靑)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여야 해."
김 전 실장은 이날 빈소에서 2시간 넘게 머무르다 오후 10시25분에서야 이 최고위원과 함께 빈소를 나섰다.
▶김기춘 전 실장="당연히 조문해야지. 우리 고향(경남 거제) 대선배님인데. 민주화 하시는 데 크게 헌신하신 훌륭한 국가원수 아닙니까. 당연히 조문해야지요. 김 전 대통령께서는 산업화로 이룬 토양 위에서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룩했습니다. 난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날 오전 9시17분 빈소를 찾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12시간이 지난 오후 9시25분에서야 빈소를 떠났다. 박 전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메시지였던 '통합과 화합'을 강조한 뒤 귀가했다.
▶박관용 전 의장="YS와 DJ 두 사람은 원래부터 협력과 더불어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어요. 다 같이 싸워야할 때는 싸웠고, 각자 일해야 할 때는 일했고. 이제는 이렇게 장례식에서 동교동과 상도동이 합동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 투쟁의 선두였던 그분이 가셨단 얘기는 지역 갈등이 없어지고 새로운 화합으로 가는 새로운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각 빈소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많은 의원들이 와서 상주 노릇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화합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날 하루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7800여명이다. 빈소가 차려진지 사흘째인 이날까지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2만여명을 넘어섰다.
김경희·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