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건강

니시건강법

참도 2015. 9. 23. 17:46

02 니시 선생이 스스로 건강법을 창안하기까지

병약한 소년, 건강전문가가 되다

니시건강법을 창안한 니시 가츠조 선생은 약 130년 전, 일본에서 태어난 분이다. 선생이 독자적인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건강법을 창안한 것은 1920년대의 일이다. 이미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건강법이 현대 의학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니시 선생은 과연 어떻게 자신만의 건강법을 만들게 되었을까?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 건강법이 홀리스틱 의학의 전신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니시 선생은 1884년 3월 15일 일본의 카나가와현(현) 다카자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똑똑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부유한 집안에서 너무 곱게 자라난 탓일까. 니시 선생은 9살 무렵부터 만성설사와 감기에 시달리게 되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해도 차도가 없었고, 다른 의사에게 찾아가도 병은 악화될 뿐이었다. 조금만 공부를 해도 설사와 미열에 시달렸고 성적은 점점 나빠졌다.

당시 명의로 이름이 높았던 사사키 박사는 소년 니시에게 스무 살까지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한창 꿈 많은 소년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선고였을 것이다. 이처럼 니시 선생은 의사에게조차 버림 받은 가망 없는 환자였다.

16살이 되자 니시 선생은 자신의 건강은 자기 힘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굳게 결심했다. 니시 선생은 이제까지의 의사의 처방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제껏 의사의 말을 충실히 따라왔던 니시 선생이었다. 그러나 병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고, 몸은 더욱 쇠약해질 뿐이었다. 그렇다면 의사의 처방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소년 니시 가츠조는 감히 의사와 현대의학의 권위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의사가 말하는 것을 반대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니시 선생을 괴롭히던 많은 병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만성 설사였다. 사사키 선생은 설사를 할 때에는 반드시 끓인 물을 먹으라고 주의시켜왔다. 생수에는 세균이 있기 때문에 설사를 더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니시 선생은 늘 엽차나 끓여서 식힌 물만을 마셔왔지만 설사는 낫지 않았다.

니시 선생은 우선 이것을 거꾸로 실해해보기로 했다. 처음 끓이지 않은 생수를 마실 때에는 겁이 났다. 컵에 든 물속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우글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생수를 조금씩 마셔보았다. 뱃속에서 구루룩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조금씩 굳은 변을 볼 수 있었다. 조금씩 양을 늘려 생수를 마시자 지금껏 선생을 괴롭히던 설사가 낫기 시작했다. 믿기 어려운 결과였다. 설사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 지금껏 피해왔던 생수가 설사를 멎게 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생수는 끊인 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제까지는 조금만 낯선 음식을 먹어도 곧 설사를 했기 때문에 늘 조심해왔다. 그러나 생수를 먹기 시작하면서 니시 선생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새로이 깨달았다.

이 일로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니시 선생은 다른 증상에도 이처럼 자신만의 ‘거꾸로 요법’을 써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감기에 걸기로 했다. 곧 몸이 덜덜 떨려오며 열이 났다.

계속 몸을 차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이불을 덮어 쓰고 땀을 흠뻑 흘렸다. 그러고 나자 목이 말라서 생수를 마시고 밀감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감기가 나아버렸다.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니시건강법에서는 체내에 있는 노폐물을 밖으로 배설하는 증상이 감기라고 여긴다. 감기에 걸렸을 때에는 땀을 흘려 노폐물을 배출하고 수분과 비타민을 보충하면 낫는다. 니시 선생은 이처럼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효과적인 감기치료법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2,3년간 스스로의 건강법을 개발하며 니시 선생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선생은 그러는 동안 직업학교에서 토목학을 전공했다. 니시 선생은 토목기사로도 일본사회에서 크게 알려졌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토목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당대의 명의에게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소년이 건강한 청년이자 사회의 버팀목으로 성장한 것이다.

선생은 토목학을 전공하는 틈틈이 의학을 공부했으며, 20대 중반이 되자 웬만한 병은 자신의 건강법으로 처리할 자신이 생겼다. 니시 선생은 자기처럼 만성질병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건강법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심 때문에 망설여졌다.

‘내가 만든 건강법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보편적인 건강법이 아니라 오직 나에게만 맞는 건강법이 아닐까.’

니시 선생은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우선은 동서고금의 모든 의서와 문헌을 연구하기로 했다. 영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 등 많은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 니시 선생은 약 7만여 권의 의학서적을 연구하여 니시 건강법의 학문적 기초를 세웠다.

그 뿐 아니라 기존의 건강법을 직접 시도해 보기에 이른다. 추운 날씨에 냉수욕을 하고 수 개월간 익히지 않은 채소만 먹고 지내기도 했다. 자신의 몸을 던져 기존의 건강법을 검증한 셈이다.

니시 건강법의 확립에 이르기까지 연구했던 건강법이 무려 362가지나 되었다니 그의 노력과 열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오카다식 정좌법, 자강술(자강술), 후지타식 심신조화법, 에마식기합술, 이시이 생기법, 사카모도 굴신도, 스틸 박사의 정골치료법, 토마스 박사의 자연요법, 앨범 박사의 척주조작법, 테스트 박사의 근원요법, 파머씨의 척주정정법, 머레이 박사의 정체술, 핏제랄드 박사의 분체(분체)요법 등이 니시 선생이 연구하고 실행한 건강법들이다.

니시 가츠조는 동서고금의 건강법을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17가지로 분류했다. 니시건강법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현재에도 의의를 가진 분류이기 때문에 소개하기로 한다.

근육주의 - 학교체육, 자강술(자강술 : 전신에 기를 돌려 경락흐 름을 활발하게 만드는 체조법을 이용한 자연치료법)

골격주의 - 정골치료법, 자세교정법

피부주의 - 나체요법, 일광욕, 냉수욕, 건포마찰

척수주의 - 카이로프락틱, 지압요법

복부주의 - 단식요법, 저작법

세균주의 - 세균을 모든 병의 원흉으로 본다.

식양주의 - 식양(식양)만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본다. 현미식을 주로 권한다.

호흡주의 - 심호흡, 복식호흡건강법, 인도철학에서 유래된 건강법 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신경주의 - 침이나 뜸의 부류가 이에 속하며 신경반사운동을 이 용한다.

정신주의 - 암시요법, 정신요법

종교주의 - 크리스천사이언스와 신흥종교의 건강론

약제주의 - 현대의학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음수주의 - 성수, 약수, 감천수를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건강론

자연주의 - 정신의 건강은 눈(눈)에 나타나므로 안구를 컨트롤함 으로써 건강해진다는 건강론

코주의 - 만병은 코의 점막에 드러난다는 건강론

족주의 - 발이 건강의 기초

니시 선생이 의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건강한 생활을 하자 주변의 환자들이 그 비결을 묻기 시작했다. 니시 선생이 자신의 건강법을 가르쳐주자, 환자들은 건강을 회복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니시 선생은 자신의 건강법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927년 니시 선생은 그가 창안한 건강법을 세상에 발표했다. 그의 나이 44세, 22년간 의학을 연구하고 나서였다.

1944년 규슈대학 의학부에서의 강의를 계기로 그의 건강법은 ‘니시 건강법’이라 불리게 되었다. 니시 선생이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의 제자들 중에는 74명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서구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조차 그의 건강법에 동조했을 뿐 아니라, 그의 제자가 되어 니시건강법을 전파했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니시건강법의 가장 큰 특징은 인체를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점에 있다.

서구현대의학은 몸을 부분희 총체로만 파악한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모든 기관이 총체적으로 연결된 유기체이다. 니시 선생은 자신의 병약한 몸을 건강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설사나 감기를 낫게 하는 것은 포괄적인 신체의 밸런스와 관련된 문제이며, 지엽적인 신체기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서양의 분석적인 의학에 얽매인 의료전문가가 아니었다는 점 역시 그의 연구에 도움이 되었으르라. 스스로를 치유하려했던 허약한 젊은이의 노력이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등불을 밝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