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기업은 박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신기수(2007년 별세) 전 회장이 경영했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거물이던 신씨는 1979년 10·26 뒤 박 대통령에게 300평 규모의 ‘성북동 집’을 마련해준 인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부터 이름이 자주 거론됐다.
신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부모님 유품을 보관할 수 있으니 성북동으로 이사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집을 지어 줬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부모님이 유일하게 남긴 재산인 서울 중구 신당동 집으로 동생들과 이사했으나 집이 좁아서 꼼짝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 사정을 알던 신 회장이 제의를 했고, 그걸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순전히 호의로 집을 지어 줬다는 얘기인데,
신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탁이 있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1980년 5월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는데, 신씨도 새 이사로 임명됐다.이후 경남기업은 영남대병원 등의 공사를 수주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검증 청문회에서 신씨가 영남대 이사가 된 것에 대해 “내가 추천한 게 아니다.
하지만 재단 이사 선임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영입되는 경우가 드물고 지인을 통해 영입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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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치권에서는 경남기업이 박 대통령의 성북동 집을 지어준 것과 영남대 공사를 수주한 게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씨는 2007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 “성북동 집 가격이 얼마나 된다고 내가 영남대병원 공사를 달라고 요구했겠나.
성북동 집이 있던 일대는 원래 대한교육보험(지금의 교보생명) 소유여서 흔히 ‘대교단지’라고 불렸다.
대한교육보험에서 그 땅을 등기 분할해 팔았는데 분양이 잘 안 됐다. 박 전 대표 집도 그 중 하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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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1979년 박 대통령이 총재를 맡았던 구국봉사단 운영위원도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구국봉사단은 박 대통령을 끈질기게 따라다닌 ‘루머’의 주인공인 최태민 목사가 이끌었던 조직이다.
신씨는 또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주로 활동했던 ‘구국봉사단-영남대-육영재단-정수장학회’에 신씨 이름이 모두 오른 것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인 1984년 국가안전기획부는 신씨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고,그는 그해 6월 경남기업 경영권을 포기했다.
경남기업은 1988년 대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가 2003년 성완종 회장이 경영하던 대아건설에 인수됐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