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윤일병

세월호 1주기 정진영

참도 2015. 4. 13. 15:43

[문화연예 세월호 기획 ⑩] "진영논리 벗어나 약자의 아픔에 공명할 때 희망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문화·예술·언론·연예계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이 '세월호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④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⑤ "단상 위 대통령과 무릎 꿇은 母…내겐 충격적"
⑥ 배우 최민수, "세월호 참사는 미래에 대한 수장식"
⑦ '세월호 1주기'…다큐 영화 '다이빙벨'이 남긴 것
⑧ 형제자매들…"부모님 앞에서 슬픈 내색 못해요"
⑨ [르포] '아고라' 된 광화문 광장…꿈틀거리는 시민들


⑩ 배우 정진영 "세월호는 '비극'…유가족 발언 '경청'해야"
(계속)

배우 정진영(사진=모베라픽처스 제공)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소위 인지도 있는 배우들의 입장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그것이 기사화 된다는 전제가 깔렸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여전히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 '사건'을 바로 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모아보자는 기획은,

연예계 인사를 섭외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탄력을 받지 못했다.

인터뷰를 거절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굳이 나서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러 배우와 접촉했지만, 당사자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소속사 선에서 "죄송한데 어렵다"는 말을 건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를 두고 뭐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사회적 발언을 했다가 소위

 '빨간색 낙인'이 찍혀 당장의 일거리를 내려놔야 했다는 이들의 소식을 최근 몇 년 새 적잖게 들어 온 까닭이다.

 며칠 전 전화 통화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발언을 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게 된 현실이 서글프다"는 한 영화계 인사의 한탄은 일리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배우 정진영(50)은 마지막 보루였다. 평소 민감한 사회 현안이 있을 때마다 소신 발언과 행동을 보여 온 데다,

 믿음을 주는 연기력까지 갖춰 '개념 배우'로 불리는 그다.

최근 다소 이른 아침, 배우 정진영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촬영 스케줄 때문에 바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터였지만,

 앞서 배우들 섭외가 여러 차례 불발되면서 조바심이 인 까닭이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곧바로 인터뷰의 취지를 설명하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답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조바심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 "매도된 유가족들·'이미 지난 일'이란 식 반응 몹시 안타까워"

배우 정진영. 왼쪽부터 영화 '강남 1970' '국제시장' '찌라시'.

그날 밤 9시 30분쯤 문자 메시지 한 통이 왔다. '정진영입니다. 너무 늦었지요? 촬영이 이제 끝나서요. 12시까지 안 잘 테니,

그 전에 아무 때나 전화 주시면 됩니다.'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짓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차례의 신호가 가고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자주 들어

온 묵직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 왔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더욱이 오랜 촬영을 막 마치고

고된 몸으로 전화를 받았을 그였기에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 곧바로 질문을 이어갔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심경이 어떠냐'는 물음에 그는 "글쎄요…"라고 운을 뗀 뒤 또렷한 음성으로 답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커다란 비극에서 얻어야 할 교훈들, 한국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점들이 얼마나 고쳐졌는지 의문입니다."

정진영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굉장히 큰 아픔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분들께서 계속 '진실규명' '참사를 잊지 말자'고 외치시는 것을 되새겨 봤으면 합니다.

 분명 되새기기 싫은 아픔일 텐데도 그분들께서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했으면 해요."

그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주변을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이 크다고 했다.

"모두가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며 아파할 겁니다. 어떤 분이라도 아파할 거라 확신해요.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찌할 것인가'

 '이미 벌어진 일 갖고 왜 계속 얘기하냐' '무슨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은 안타깝습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유가족분들의 현재 모습에 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특별법 재정 국면에서 그분들이 금전, 특혜 등을 바라는 것처럼 매도된 측면이 크니까요."

◇ "세상은 길게 봤을 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무력화 정부 시행령(안) 폐기 및 세월호 인양촉구 416시간 농성 선포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유가족들이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이러한 환경에서 상처입은 유가족들의 발언을 경청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요구된다는 것이 정진영의 당부다.

"그분들이 바라는 것은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억울하게 짦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는지를 밝히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폐부를 드러내는 것이 진실규명일 텐데, 몇몇 해당 공무원과 선원들에 대한 재판이나

처벌로 끝나는 것이 과연 진실규명인지 생각해 봐야겠죠. 분명 아닙니다."

1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 없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공감하는 정진영은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한국 사회를 질타했다.

"현재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법 찾기를 '진보'냐 '보수'냐, '여'냐 '야'냐와 같은 진영논리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진영으로 나뉘면 답이 나올 수 없으니까요. 비극을 두고 아파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비극 앞에서 정쟁이라니….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건낸 교훈들을 놓치고 있어 안타깝고 슬프다"며

 말을 잇던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지 "아…" 하고 한숨만 쉴 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희망을 보느냐'는 물음에 정진영은 "세상은 장기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인간이 그렇게 살아 왔으니 좋은 쪽으로 가려고 애쓸 거라 믿어요. 물론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보면 현재는 밝지 않은 국면입니다.

끔찍한 일임에도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자고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람으로서 이대로 그냥 잊으면 안 되는 일이니까요."

정진영은 "한국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우리 사회를 두고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이 함께,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할 운명체"라는 표현을 썼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약자의 아픔에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에 비전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세상은 그냥 좋아지지 않습니다.

'너'와 '나'를 막론하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그 첫발이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아픈 마음에 귀기울이는 것이겠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아픔을 이해해 주는 마음에 눈뜨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