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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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 버
예 스 터 데 이
노래 비틀즈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예전엔 나의 모든 시름들이 멀리 사라져 버린 듯 했는데 Now it looks as thought they're here to stay 이제 그 시름들이 마치 여기 내 곁에 다시 밀려오는 것 같아요 Oh, I believe in yesterday 오, 그 때가 좋았었는데
Suddenly 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갑자기 예전 내 모습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There's a shadow hanging over me 어두운 그림자가 내게 드리워지고 있어요 Oh, yesterday came suddenly 오, 갑자기 지난 날의 추억들이 밀려와요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왜 그녀가 떠나야 했는지 난 몰라요, she wouldn't say 그녀는 아무 말도 하려하지 않았어요 I said something wrong 내가 무언가 잘못 말했나봐요 now I long for yesterday 지금 이 순간 지난 날이 자꾸만 그리워져요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예전엔 사랑은 아주 쉬운 게임 같았어요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이제 난 어디든 숨을 곳이 필요해요 Oh, I believe in yesterday 오, 그때가 좋았었는데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왜 그녀가 떠나야 했는지 난 몰라요, she wouldn't say 그녀는 아무 말도 하려하지 않았어요 I said something wrong 내가 무언가 잘못 말했나봐요 now I long for yesterday 지금 이 순간 지난 날이 자꾸만 그리워져요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예전엔 사랑은 아주 쉬운 게임 같았어요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이제 난 어디든 숨을 곳이 필요해요 Oh, I believe in yesterday 오, 그때가 좋았었는데
존 레논
렛잇비 Let it be
헤이쥬 Hey jude
Hey jude는 존레논이 오노요코랑 결혼할려고 원래 부인과 이혼할려고 할때 존레논의아들이 딱했보여 폴메카트니가 만든 노래라 하네요
1964.2.7 미국 첫 방문, 음악으로 세상을 평정하다 1964년 2월 7일 비틀즈를 태운 비행기가 런던 공항을 출발하자, 미국 WMCA 방송은 마라톤 중계하듯 이 세기의 밴드가 자국에 당도하는 모습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비틀즈 시간으로 오전 6시 30분입니다. 그들은 30분 전에 런던을 떠났습니다. 뉴욕을 향해 대서양을 건너오고 있는 중이군요. 비틀즈 주변의 온도는 32도입니다.”
영국 출발부터 미국 도착까지 일거수일투족 생중계 이날 오후 1시 35분, 비틀즈는 미국 뉴욕에 있는 케네디 공항에 내렸다. 1만 명이 넘는 10대들이 공항을 가득 메우고 함성을 질렀다. 괴성을 질러대는 팬들 사이를 뚫고 비틀즈가 공항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도착했다. 링고 스타의 대답이었다.
이틀 뒤인 2월 9일 밤 비틀즈가 출연한 TV프로그램 ‘에드 설리번쇼’가 방송됐다. 이날 방송은 7천3백만 명이 시청했다. 당시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에드 설리번쇼’가 방영되는 동안 뉴욕에서는 자동차 휠캡 도난 사고조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전역에서 10대가 일으킨 주요 범죄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이다. 비틀즈가 미국에서 공연한 1964년 2월 첫 주, 그들의 노래는 미국 히트 차트 1위에 올랐다. 이어 4월 4일자 빌보드 차트는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비틀즈의 노래가 차지했다. 1964년 미국 싱글 레코드 판매의 60%는 비틀즈의 노래였다. ‘브리티쉬 인베이젼(영국의 침략)’이란 말이 무리가 아니었다. 비틀즈는 음악으로 미국을 완전히 점령했다.
리버풀 노동자가 가정에서 태어난 네 명의 청년 비틀즈는 존 레논(John W. Lennon 1940.10.9~1980.12.8), 폴 매카트니(James Paul McCartney 1942.6.18~ ),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2~2001.11.29), 링고 스타(Ringo Starr 본명 Richard Starkey 1940.7.7~) 등 네 명의 영국 리버풀 출신 청년이 모여 결성한 그룹이다. 리버풀 출신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네 젊은이는 여러 경로를 거쳐 비틀즈라는 거대한 대중음악의 활화산 속으로 모여 들었다. 비틀즈가 언제 출범했는 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른바 비틀즈 유일의 공인 전기로 평가 받는 ‘더 비틀즈(대교베텔스만)’의 저자 헌터 데이비스가 기록한 바를 좇아가면, 존 레논은 분명하게 엘비스 프레슬리로부터 영향을 받고 음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존 레논은 “어린 시절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이라고 밝히고 있다.
네 명의 멤버 중 존과 폴이 만난 것을 비틀즈 출범의 한 계기라고 한다면, 리버풀 인스티튜트에서 존이 폴을 만난 1957년 7월 6일을 꼽을 수 있다. 존은 이 날을 “바로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날. 내가 폴을 만난 바로 그날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비틀즈란 이름을 정식으로 쓰기 시작한 날을 비틀즈의 출범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좀 더 흘러 1959년이 되어야 한다. 리버풀의 퀴리뱅크 고등학교에 다니던 존은 스쿨밴드 ‘쿼리멘’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존과 폴 모두 리버풀 인스티튜트로 진학하면서 더 이상 ‘쿼리멘’이란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이들은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서로 다른 색깔의 셔츠를 입고 왔다고 해서 ‘레인보우스(The Rainbows)’ 어떤 때는 ‘문독스(The Moondogs)'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지방 도시 라이브 클럽의 최고 인기 밴드 '실버 비틀즈' 1959년에 이르러서야 이들은 ‘비틀즈’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딱정벌레(beetles)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나는 그 철자를 BEAT-les로 바꾸어 써보았다. 비트(beat)음악을 연상시키는 말장난이었다.”라고 존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당시 밴드 이름은 길어야 한다는 유행에 따라 ‘키다리 존과 실버 비틀즈(Long John and the Silver Beatles)'라고 붙였다. 그리고 한 오디션에서 이름을 물었을 때 ’실버 비틀즈‘라고 말한 뒤부터 ’실버 비틀즈‘는 1959년 내내 이들의 이름이 됐다. 어쨌든 ‘실버 비틀즈’로 활동하던 이들은 1960년 독일 함부르크로 옮겨가 연주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이들의 멤버는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과 드러머로 피트 베스트, 베이스로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등이었다. 비틀즈는 함부르크에서 1960년 12월 초까지 머물렀다. 조지는 당시 겨우 17세로 아직 미성년자여서 학생여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1960년 12월 리버풀로 돌아온 비틀즈는 리버풀 중심가의 최고 라이브 클럽으로 자리잡고 있던 캐번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1961년 1월부터 1962년 2월까지 1년여 동안 이들은 모두 292회의 공연을 가지며 리버풀 최고의 밴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영국의 한 지방도시의 인기 밴드일 뿐이었다.
“노래 한 곡 해주시겠어요?”
“돈을 먼저 주셔야죠” 존 레논이 대답했다.
“여러분을 나이 든 세대에 대한 사회적인 반항의 일부라고 할 수 있나요?”
“지저분한 거짓말이군요.”
“베토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멋진 분이죠. 특히 그 분이 쓴 시는 정말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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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에게 발탁돼 멤버 교체와 함께 성공가도를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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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놓는 곡마다 빅히트 치며 전세계 팝 음악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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