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방법

[스크랩] 5개월 동안의 안거(安居) - 자연농사를 체험하며

참도 2014. 8. 23. 14:04

5개월 동안의 안거(安居)

 

1. 숲에서 길을 찾다

 

해땅물자연농장에서 지난 5월 1일부터 시작한 자연농사 실습이 9월 30일 오늘로 막을 내렸다. 신록의 계절 5월에 시작한 실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개월이란 세월이 지나가다니 세월 참 빠르다.

 

나는 원래 역마살이 낀 여행가이다. 더욱이 아내는 나보다 몇 배나 여행을 더 좋아하는 여행광이다. 두 사람 다 역마살 끼어도 보통의 역마살이 낀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단 하루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쏘아 다녀야만 직성이 풀리는 부부이다. 그런 내가 5개월 동안이나 발목이 잡혀 자연농사 실습을 받다니 아내도 나 자신도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5개월 동안의 긴 안거(安居)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연농사>라는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또 하나의 멋진 여행이기도 했다.

 

 

▲낮은 야산에 들러싸인 해땅물자연농장. 벼이삭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위기가 다가오거나 힘들 때마다 숲을 찾았다.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 뒤쪽에는 오룡산이라는 낮은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외로울 땐 이 산을 오르곤 했다. 어린 시절 산을 오르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산은 나를 심신을 치유해 주곤 했다.

 

해땅물자연농장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인 약 4000여 평에 달하는 논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잣나무와 참나무로 둘러싸인 농장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한 느낌을 준다. 300여 평의 텃밭을 일구어 농사를 텃밭 짓고 있는 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사를 짓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또 다른 숲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잡초와 함께 자라나는 벼

 

홍려석 선생님과 인연은 작년 연천군에서 실시한 귀농교육을 받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자연농사>에 대한 홍 선생님의 2시간 강의는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퇴비도, 비료도, 농약도 치지 않고, 심지어 풀도 뽑지 않고, 해와 땅과 물로만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신비한 밭에 서서>(가와구치 요시카즈 저)란 책을 읽고 4000여 평의 버려진 땅을 삽 한 자루로 일구어 9년 째 해와 땅과 물로만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나는 홍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후 바로 서점에서 <신비한 밭에 서서>란 책을 사 들고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들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하여주는 어떤 점화 역할을 하여주었다.

 

 

▲노랗게 영글어 가는 조

 

나도 이곳 연천으로 이사를 와서 200여 평의 자갈밭과 산 밑에 노는 땅 100여 평을 괭이와 삽으로 일구어 텃밭농사를 짓고 있었다. 홍 선생님의 규모에 비하면 10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초로의 나이에 들어선 나에게는 이 농사도 아주 버거운 농사다. 어쩌면 나는 그와 동병상련의 길을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지은 채소와 곡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도시를 떠나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이 있는 청정지역 연천으로 귀농을 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내 스스로 지은 싱싱한 채소를 밥상에 올리고 싶었다.

 

홍 선생님이 짓고 있는 자연농사에 대해서 나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농사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제도적으로 기회가 온 것이다. 연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선도농장 실습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통지 받은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해땅물자연농장에 실습을 신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5개월간의 안거에 돌입을 하게 되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지 않았던가?

 

2. 무엇을 배웠는가?

 

하여튼… 나는 5월 1일부터 매일 해땅물자연농장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선도농장 실습은 하루 8시간, 한 달에 20일을 실습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기 농사를 지으며 매일 8시간씩 실습을 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나는 아침 5시경에 일어나 우리 집 텃밭 농사를 살펴보고, 아침식사를 한 후 9시에 해땅물자연농장으로 가는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야생화와 나비, 벌 등 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자연농장

 

해땅물자연농장의 홍려석 선생님은 해가 뜨면 농장으로 출근을 하여 해가 져서 어두워야 농장을 떠났다. 여름철에는 아침 7시 전후에 출근을 하여 저녁 8시까지 일을 했다. 홍 선생님은 참으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5년 동안 한 알의 수확도 건지지 못한 농장을 버티고 나오지 않았을까? 이렇게 일을 한지 벌서 1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나는 해땅물자연농장에서 홍 선생님이 하는 일을 지켜보며, 자연과 친해지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내가 최초에 배운 것은 풀 베기였다. 손가락으로 풀을 하나하나 작물과 가려내어 베어내는 작업은 그야말로 고도의 수행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풀을 베며 때로는 명상에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숲을 거시적으로 보아왔다면 이곳 해땅물자연농장에서는 숲 속의 나무, 풀, 그리고 작물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미시적인 안목을 키우는 눈을 뜨게 되었다.

 

 

▲벼이삭 속에서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기고라니

 

자연농사란 어떤 것인가?

 

우선 자연농사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홍 선생님은 자연농사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해땅물자연농장에서는 농작물과 잡초, 벌레가 서로 공생하며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생명 순환의 농사를 짓고 있다. 일본의 가와구치 요시카노가 쓴 <신비한 밭에 서서>란 농사법의 근거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해땅물자연농장의 <자연농사 짓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 된다.

 

-밭을 갈지 않고 (무경운 無耕耘),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도 사용하지 않으며 (무비료 無肥料),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무농약 無農藥),

-풀을 뽑지 않는 (무제초 無除草)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콩밭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는 무당벌레

 

첫째, 땅을 가는 것은 밭의 자연스러운 생명 순환을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기계로 땅을 갈지 않더라도 식물의 뿌리, 미생물 그리고 땅속의 작은 동물들의 활동으로 물리적, 화학적 땅 갈이가 저절로 행해지게 되어 밭이 필요로 하는 배수성과 보수성은 날로 좋아지게 된다.

 

둘째,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를 쓰지 않는 것도 역시 밭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위한 것이다. 밭에서 나지 않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밭에 넣을 경우 밭의 자연스러운 생명 순환은 깨지게 된다. 작물이 필요로 하는 최적의 영양분은 밭이 스스로 만들어 간다.

 

셋째, 농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은, 자연은 항상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병충해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비료나 퇴비, 미생물 등을 인위적으로 투여할 때 밭 본연의 순환이 깨져 작물은 병약해지고 병충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풀을 뽑지 않는 것은 풀들의 중대한 사명과 역할 때문이다. 풀로 인하여 밭의 영원한 생명은 유지된다. 아니 지구 전체의 생명도 그럴 것이다. 작물에 있어 풀은 적절한 습도와 빛 가림, 때로는 온도까지도 유지해 작물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또한 풀은 많은 미생물과 벌레에게 먹이를 제공하여 작물에 끼칠 피해도 줄인다. 풀을 뽑아내지 않고, 다만 작물이 풀에 치이지 않도록 때때로 잘라줌으로써 작물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편을 들어주는 것뿐이다.

 

연초에 작물배치와 작물재배계획을 세운다

 

해땅물자연농장은 약 4000여 평의 논과 밭에 60여 가지가 넘는 채소와 벼, 콩, 조, 호밀, 사과 등을 재배하고 있다. 해땅물자연농장은 <본밭> <길밭> <산밭> <논밭>으로 구분을 하고 있다. 본밭에는 사과와 콩, 길밭에는 60여 가지의 채소, 산밭에는 고추, 나물, 돼지감자, 채소류, 논밭에는 벼, 보리 등을 재배하고 있다. 홍 선생님은 이 농장에 매년 첨부자료와 같이 <작물배치계획>과 <작물재배계획>을 세워 농사를 짓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계획이다. 농부는 1년의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각 토양에 맞는 작물을 선택하여 농사를 지어야만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나 역시 실습을 한 후로 나름대로 300여 평의 텃밭에 작물배치계획과 재배계획을 세워 농사를 짓고 있다. 실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농사에 적용을 해보아야 실습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풀을 베어 낼 것인가?

 

▲잡초를 한 올 한 올 가려내어 풀을 베어내야 작물에 손상이 없다.

 

자연농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은 풀을 베어내는 일이다. 홍 선생님은 풀을 베어내는 것은 작물이 잘 자라도록 작물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물과 풀을 동등하게 취급을 하되 풀을 뽑지 않고 다만, 작물이 풀에 치이지 않도록 베어서 바로 그 자리에 놓아둔다.

 

그렇게 하면 풀이 땅을 덮어 보습, 보온 효과를 하게 되며 토양을 건강하고 기름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통 5년이 지나면 그 동안 화학비료, 퇴비, 농약, 제초제 등이 토양에서 빠져나가 걸러지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해땅물자연농장에서도 5년이 지나면서부터 토마토 등 일부 작물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산에 흙처럼 비옥하게 변한다고 한다.

 

산에 나무는 거름도 농약도 그 어떤 도움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난다. 나무는 누가 돌보아ᅟ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벽하다. 채소와 벼도 그 자체대로 완벽하다. 다만 채소류는 나무에 비하면 너무 연약해서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풀에 햇빛이 가려서 생장이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풀을 잘라서 햇볕을 쏘여주고 바람이 통하게 해주어야 한다.

 

때문에 자연농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은 풀을 적당하게 베어주는 작업이다, 너무 짧게 베어내면 벌레가 먹을 풀이 없어져 작물에 피해를 많이 주게 되며, 보습 보온 효과가 떨어진다. 그러므로 풀을 작물보다 다소 짧게 베어내어 주어야 한다. 풀의 뿌리는 땅속에서 미네랄 등 양분을 빨아들이고, 벌레와 미생물이 살 수 있게 하여주며, 보온 보습, 그리고 거름역할을 해준다. 그러므로 밭에서 베어낸 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가져와 주지 않는다.

 

내가 해땅물자연농장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것도 풀 베어내는 작업이었으며, 마지막까지도 풀 베어내는 일이었다. 인간과 동등하게 풀을 취급하여 소중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풀을 베어내기 전에 반드시 풀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고 조심스럽게 풀을 베어내야 한다. 이는 <풀잎 하나하나에도 불성이 있다>란 부처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물과 함께 섞여 자라나는 풀을 베어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작물을 베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왼손으로 작물과 풀 한 올 한 올을 가려내어 한 땀 한 땀 베어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홍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일의 양을 정하지 말고, 급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풀을 베어내세요. 풀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고 풀과 대화를 해보세요. 그러다 보면 풀과 친 해지고 일도 지루하지 않게 됩니다."

 

자연농사에서 풀베기 작업은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단순히 풀을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풀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아끼고 보호하며 베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작물을 재배하는가?

 

해땅물자연농장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파종과 육묘, 정식, 가꾸기, 수확 등으로 분류하여 실습을 진행했다.

 

-채소 : 배추, 상추, 토마토, 오이 등 약 60여 가지 혼작

-곡물 : 벼, 콩, 조, 호밀, 보리, 감자

-특용작물 : 사과, 고추, 곰취, 잔대

 

모든 작물의 파종과 육묘, 정식 등 중요한 일은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홍 선생님이 다 하고 있다. 작물을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다루는 그는 남에게 그 과정을 맡길 수 없다는 농사철학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나는 홍 선생님이 하는 일을 옆에서 도와주거나 지켜보는 것으로 실습을 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우리 집 텃밭에 심는 야채들에 대해서는 홍 선생님이 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시도를 해 보았다. 작물에 대한 수확은 홍 선생님의 사모님이 대부분 맡아서 처리한다. 이들 작업을 간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볍씨 파종

 

-직파 : 콩, 무, 벼(일부 직파)는 주로 직파를 하여 종자를 땅에 바로 뿌렸다.

-육묘 : 채소는 직접 육묘-이식-정식 절차를 거쳐 재배를 했다.

-혼작 작물

채소 - 한 이랑에 4~5가지를 혼작을 하고 있으며,

벼 - 보리와 이모작을 하고 있으나, 보리는 수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콩 - 사과 밭에 혼작.

보리, 호밀; 콩밭, 논에 혼작 혹은 이모작

조 - 고추 밭에 혼작.

-사과 : M26 묘목을 이랑 폭 4m, 묘목 사이를 5m 간격으로 자연재배

  

이랑 만들기와 물주기 작업

 

▲90cm 간격으로 만든 이랑에는 4~5가지의 작물을 혼작하고 있다.

 

작물에 물을 주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곳 해땅물자연농장은 농장 가운데 연못이 하나 있다. 그 연못에는 사계절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어 물을 공급하기에 아주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 모터 펌프를 설치하고 호스를 연결하여 논과 밭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물을 싫어하는 작물, 물을 좋아하는 작물을 구분하여 적당하고 적절한 시기에 물을 공급하여야 한다. 한 이랑을 90cm, 고랑은 40~50cm 간격으로 만들고(앉아서 오래 작업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 각 이랑은 높낮이를 달리하여 다시 작은 이랑으로 세분하여 만든다. 그리고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과 작게 필요로 하는 작물을 구분하여 심고 있다.

 

특히 논에는 물을 대고 빼는 작업을 제때에 하여야 벼 포기의 분얼과 벼이삭이 여물어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해땅물자연농장에서는 3주 정도 물을 넣었다가, 10일간 빼내는 텀으로 물을 데고 빼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도 매지 않고 어떠한 거름도 주지 않았지만 벼는 건강하게 자라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벌레와의 공존

 

벌레는 농약을 치지도 않을뿐더러 잡아주지도 않는다. 벌레와 공생을 하며 짓는 농사야 말로 자연농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작물은 벌레가 몽땅 먹어버려 단 한 포기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벌레도 자연의 일부로 생명이 있는 것이므로 농약을 쳐서 죽이거나 일부러 잡아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벌레먹은 배추. 그러나 어떠한 농약도 벌레를 잡아주지도 않고 자생을 하게 그대로 둔다.

 

벌레에 먹히며 자란 작물이야말로 튼튼한 작물이라는 것이다. 산에 자라는 풀과 나무들이 벌레를 잡아주지 않아도 튼튼하게 자라나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홍 선생님은 인간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자연도 인간도 생명이 다하면 지수화풍(地 水 火 風) 4대로 사라졌다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지수화풍 4대로 뭉쳐서 인간 혹은 풀이나 동물, 나무 등으로 생겨나서 자연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자연에서 자라나는 식물과 인간은 동등한 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정신이 있듯 나무와 풀에게도 소리를 듣고 느낄 수 있는 신경조직이 있으며 어떤 혼이 있다는 것이다. 홍 선생님은 이를 데바와 자연령으로 구분했다. 데바는 자연을 관장하는 어떤 신이며, 풀들에게는 각각 자연의 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풀을 베어내거나 작물을 재배할 할 때에도 그들과 대화를 하며 의논을 하고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야생화와 함께 자라는 작물, 야생화가 만발한 자연농장은 먹을 수 있는 정원이다.

 

먹을 수 있는 정원

 

해땅물자연농장은 각종 야생화가 피어나고 벌과 나비, 수많은 곤충과 생물들이 공존을 하고 있다. 그 속에서 작물들이 자라나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야생화 정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해땅물자연농장은 먹을 수 있는 정원Edible garden을 가꾸어 가고 있다.

 

식물들의 언어를 듣다 

 

나는 해땅물자연농장을 드나들며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풀잎 하나하나와 대화를 하는 법을 배웠으며, 그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작물 하나하나, 풀 잎 하나하나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모든 농사가 정성이 저절로 듬뿍 들어가게 된다. 작물은 농부의 정성을 먹고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떻든 그 이후로 우리 집 텃밭에 자라는 채소와 작물도 훨씬 싱싱하게 자라났다.

▲가만히 귀를 기우리면 콩꽃이 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채소와 곡물을 종자를 고르고, 파종을 해서 육묘를 하고, 이식과 정식을 하여 가꾸고 수확을 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 마치 자식을 다르듯 모든 과정을 소중하게 취급하는 홍 선생님의 자세는 아무리 배워도 충분하지가 않다. 밥상에 오르는 채소와 고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부족하지만 모든 작물을 파종에서 수확을 하기까지 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며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5개월 동안 이 자연농장을 드나들며 크게 느낀 것은 식물들에게도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식물들의 의사전달방식은 물속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 이 돌이 일으키는 잔물결은 생태계 전역으로 확산되며, 우리에게까지 밀려든다.

 

때로는 귀가 아니고 코로, 피부와 눈과 혀로 받아들여도, 미묘하고 정교하며 의미로 가득 차 있는 이들의 언어를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처럼, 식물들의 의도와 지성, 영혼도 화학작용이나 문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들은 오랜 세월 우리에게 망을 걸어오고 있다.

 

해땅물자연농장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다른 관행농장에서 작업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해땅물자연농장에는 각종 야생화가 철 따라 피어나고, 나비, 벌 등 수많은 곤충들이 날아든다. 또한, 개구리, 뱀, 미꾸라지, 고라니, 새 등 많은 동물들이 서식을 하거나 오고 간다. 흙에서도 향기가 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원두막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명상에 들곤 한다. 명상에 들다보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고 치유되는 기분이 든다. 아마 이런 현상들은 지난 10여 년간 어떠한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까지 뿌리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토양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로쿼이Iroquois족 사이에서는 사람이 병이 들면 그 병을 치유하는데 필요한 식물이 나타나서 환자가 그 식물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식물의 몸이 아픈 사람의 몸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환자의 병을 치료해주는 건 식물의 영혼이라는 세미는Seminole족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나비와 엉컹귀가 대화를 속삭이고 있다.

 

나는 해땅물자연농장을 드나들며 어렴풋이 식물들의 언어를 느낄 수가 있었다. 분명이 이 농장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라난 식물들은 인간이 병이 들었을 때에 치유를 해주는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 농장에서 자라난 채소는 냉장고에 넣어두면 3개월이 지나도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수분이 빠져나갈 뿐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료나 농약을 준 식물들은 웃자라거나 비정상적으로 생장하여 쉽게 변질이 되지만 해와 땅, 물, 그리고 바람의 통기로 자연 성장한 식물들은 그만 큼 건강하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이 건강한 채소를 먹을 때 그 식물들은 우리에게 치유의 음식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식물에게서 도움을 받으려면, 인간도 식물을 자식을 대하듯 보살펴야 한다. 위네바고Winnebago족들은 사람을 대하듯 식물을 보살피고 적절한 선물을 바쳤다고 한다.

 

 

▲수확의 기쁨. 야생화 속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따라서 5개월 동안 해땅물자연농장에서 실습을 하며 내가 느끼고 배운 것은 단순히 농사를 짓는 방법을 배우는 것 이상이었다. 홍 선생님은 정말 모든 작물과 풀을 자식을 대하듯 아끼고 보살폈다.

 

난 지난 15년간 숲해설가로 활동해 왔다. 그러나 그 활동은 나무와 숲, 그리고 식물들의 단층적인 내용, 곤충이나 동물 등 생태계에 대한 얕은 지식에 지나지 않았다. 주로 거시적으로 숲을 파악하고 이를 설명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곳 해땅물자연농장에서 실습을 받는 동안 이들 생태계에 대해 보다 상세하고 미시적인 접근을 하게 되었다.

 

생명사랑과 생태지식은 모든 인간의 천부적인 능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정규교육을 받거나 박사 학위를 취득하거나 어떤 학회에 소속되어 있어야만 생명사랑의 마음을 키워나가거나 섬세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능력은 학위와 반비례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느낄 수 있는 능력,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자연물은 무엇이든 세밀하게 관찰하는 자발적인 의지, 자신이 느끼고 관찰한 것들에 대해 사색하는 태도, 이것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이런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3. 건의사항

 

▲호미로 땅을 파서 모를 심고 있다. 그러나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

 

▲일손을 구하지 못해 몽둥이로 구멍을 뜷어 모내기를 하고 있다.

 

자연농사를 짓는 농장의 지원

어떠한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까지도 주지 않는 자연농사는 생태계를 고스란히 유지시키고 있으며, 어떠한 공해도 유발시키지 않는다. 관행농사를 짓느냐, 자연농사를 짓느냐는 농부의 선택이겠지만, 적어도 공해를 전혀 유발하지 않고 지구환경 개선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농사를 장려하고 지원하는 어떤 제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모내기를 할 때에는 일손을 구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0여 평의 논에 호미로 땅을 파서 노내기를 하고 있는데, 일손을 구하지 못해 심지어는 몽둥이로 구멍을 파서 모내기를 하기도 했다.

 

구석기시대의 원시농법 학습

해땅물자연농장은 경운기나 트랙터 등 기름이 들어가는 어떠한 농기계도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직까지 관행농에 비해서 수확은 적지만 농사원가가 매우 적게 들어간다. 연천군은 해마다 구석기문화축제를 하는 지방이다. 자연농사는 구석기 문화축제에 걸 맞는 농사이다. 따라서 어린이들에게 축제와 더불어 원시농법에 대한 농장답사와 실습을 시켜보는 것도 지방 문화 특성에 좋을 것 같다.

 

귀촌인들에게 자연농사 장려

자연농사는 유기농 중에서도 가장 공해가 적은 채소를 기르는 방법이다. 따라서 귀촌인들에게 텃밭 가꾸기 일환으로 자연농사를 장려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예비 귀농자들에 대한 선도농장 실습 증대

이미 귀농을 한 사람들 보다 도시에 살면서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선도농장 실습 기회를 많이 갖게 하는 것이 미래의 농촌을 위해서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선도농장 실습 방법 개선

현재 선도농장 실습은 하루 8시간, 한 달 20일 간의 실습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농사를 지으면서 하루 8시간씩 실습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실습시간을 오전, 오후 혹은 하루걸러 받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4. 맺음말

 

▲밥상에 오른 자연농사로 지은 채소

 

지난 5개월간의 선도농장 실습은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종자를 파종해서 육묘를 하고, 이식, 정식을 거쳐 가꾸고 수확을 하기까지 작물들의 라이프 사이클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배우게 된 것은 농사와 농부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잡초도 작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식물들이 들려주는 언어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긴 장마와 혹서를 거치며 땀으로 멱을 감는 날이 허다했다. 홍 선생님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비지땀으로 멱을 감고 심지어는 장화에 땀이 차서 꾸럭꾸럭 소리가 날정도로 힘든 작업을 하면서도 나에게 자연농사를 짓는 방법을 전수해 주었다.

 

어려운 가운데 한 참 연상의 나이에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나를 실습생으로 받아들여 5개월간 열과 성의를 다하여 자연농사를 전수해준 홍려석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귀농인들에게 이런 좋은 제도를 제공해준 연천군 농업기술센터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5개월 간의 안거(安居)!

내 인생에 이렇게 담을 많이 흘려보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비지땀을 흘리며 자연과 함께 했던 이번 실습을 통해 자연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적응하며 작물을 기르는데 많은 도움이 도고 있다.

 

특히 어렴풋이나마 식물들의 언어를 듣고, 식물들과 대화를 시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는 무엇보다 큰 체험이었다.

 

   

 

*자연농사에 참고가 될만한 책들

 

신비한 밭에 서서, 가와구치 요시카즈 저, 들녘, 2000. 5. 20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후쿠오카 마사노부, 녹색평론사, 2011. 9. 9

핀드 혼 농장 스토리, 핀드혼 공동체, 씨앗을 뿌리리는 사람들, 2009.11

기적의 사과, 이시카와 다쿠지, 2003. 1. 27

잡초의 재발견, 조지프 코캐너, 우물이 있는 집, 2013. 4. 10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스티븐 해로드 뷰너, 나무심는 사람, 2005. 6.14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최성현, 도솔, 2003. 8.16

 

 

출처 : 하늘 땅 여행
글쓴이 : 찰라 최오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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