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원산 지구, 중국 국경지역 중심으로 집중 개발
동남아 등으로 시장 확대 움직임…이색 상품도 쏟아져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나진·선봉에서는 관광객들이 시장과 은행을 이용할 수 있고 회령에서는 중학교도 가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도 예전처럼 전면 금지는 아니에요. 김정은 체제 이후 변화는 놀랍다고 할 만큼 큽니다."
베이징의 북한 전문 여행사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의 가렛 존슨 이사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김정은 체제 이후 변화를 "놀라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내부 자원 고갈과 국제사회 고립으로 경제난에 시달려온 북한이 전 국가적인 노력을 쏟아붓는 관광산업이 있다.
중국에만 의존했던 관광 수요를 다변화하기 위해 서방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철도·도로 등 관광 편의를 위한 인프라 개선에도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주민의 외부인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북한이 모내기·김매기 등 농민과 함께하는 노동체험 관광을 선보이는 등 과감한 이색 상품까지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 금강산-원산은 국제관광지…국경지역은 '중국인 중심'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2일 원산-금강산 지역을 국제관광지대로 정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의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됐다고 밝혔다.
원산-금강산 지역은 북한이 "조선 동해의 진주"라고 부르며 한반도 최고의 절경으로 꼽는 곳이다.
이곳에는 북한의 대표 관광지인 금강산과 북한이 지난해부터 대대적으로 선전해 온 마식령 스키장, 폭포소리가 4km 밖까지 들린다는 울림폭포, 고려시대 전통사찰인 석왕사 등 유명 문화재·관광지가 밀집해 있다.
북한은 경제개발구법과 외국투자 관련 법규 등을 적용해 이 지역을 세계를 상대로 한 국제 관광지로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북한은 이미 수년 전부터 금강산-원산 지역을 국제적인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지난달 2일 '원산-금강산지구 총계획'을 공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4월 30일부터는 중국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와 함경북도 칠보산을 연결하는 중국인 관광 열차도 개통됐다. 열차는 국경을 넘어 북한 회령·청진·경성을 지나 칠보산이 있는 명천역까지 연결되며 관광객들은 온천욕, 민박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함경북도 회령을 중심으로 한 중국 국경지역도 북한이 최근 공격적으로 미는 관광지대 중 하나다.
회령 관광은 이곳에서 태어난 김일성 주석의 처 김정숙의 옛집·동상 등을 둘러보고 북한 예술단의 공연을 감상하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북한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회령을 서양인 관광객에게도 개방할 예정이지만 이곳 역시 주요 관광객은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상관없이 꾸준히 북한을 넘나들 수 있는 중국인들을 관광객으로 유치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정치적 문제' 없이 돈을 벌 수 있다.
북한은 자강도 만포시, 함경북도 청진시, 평안북도 동림군 등 다른 지역도 관광코스로 개발해 중국인에게 추가로 개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 "도로 넓히고 철도 깔고"…교통 인프라 개선 역점
북한의 관광산업 개발은 철도·도로 등 교통 인프라 개선과 함께 추진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북한은 원산-금강산 지역을 찾는 관광객의 접근 편의성을 높이려고 원산시 중심부와 마식령 스키장, 울림폭포, 금강산지구를 연결하는 국제 관광도로와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 북한이 중국인 관광단에 제공한 점심
- (투먼=연합뉴스) 중국 지린성 투먼시와 접경한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구 하루 관광에 참여한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에게 제공된 점심식사. 카레라이스, 돼지고기 튀김, 두부찜, 버섯무침, 숙주나물, 김치, 시루떡 등으로 식단이 짜여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달 22일 보도한 북한의 '원산∼금강산지구총계획'에서 철도, 도로 사업계획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 계획에는 원산시의 중심도로를 확장하고 원산과 마식령 스키장을 연결하는 25㎞ 도로를 현대적으로 개보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원산과 금강산 사이에 90㎞의 고속 관광철도를 새로 건설한다는 구상도 담겼다.
북한은 또 군 공항이었던 갈마 비행장을 민간 공항으로 바꿔 원산 비행장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등 관광객을 위한 '항공길'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령도 중국인을 상대로 한 버스·승용차 관광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더 많은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한의 대외용 포털사이트 '내나라'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근 평양-모스크바·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관광 열차 개통도 추진하고 있다.
◇ "북한 주민과 함께 과일 수확해요"…이색 상품도 등장
북한이 관광산업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폐쇄적이었던 북한 사회도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신보는 최근 외국인들이 북한의 모내기·김매기 등 농촌활동을 직접 해보는 '노동체험 관광' 상품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과수원에서 과일을 수확하거나 농사일을 해보면서 북한 주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색 관광상품이다.
전 세계 등산 애호가를 겨냥해 명산으로 소문이 난 금강산·묘향산 등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산을 오르고 캠핑을 즐기는 등산 관광, 태권도를 배운 뒤 북한 선수들과 직접 시합을 해보는 태권도 관광도 선보였다.
중국·러시아 등 전통적인 우방 외에도 동남아 등으로 눈을 돌려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 등 북한전문 여행사에 따르면 북한의 조선국제관광회사가 최근 말레이시아에 지역 사무소를 설치했으며 평양-쿠알라룸푸르 간 항공 노선도 개설됐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관광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비교우위가 있는 유일한 분야인 만큼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관광을 육성하는 것 같다"며 "김정은은 관광을 통해 북한경제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1987년 7월 세계관광기구(WTO)에 가입하고 본격적으로 관광산업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총련, 재미·재중 동포, 일본인 등을 상대로 관광 상품을 주로 판매해오다 2002년 처음 시작한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2010년 이후에는 국경 지역을 상대로 한 승용차 관광 상품이 속속 등장하면서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꾸준히 느는 추세다.
올해 초에는 북한을 방문한 전직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한때 북한 관광객의 수가 증가하기도 했지만 최근 미국인 관광객 억류 등 돌발 변수로 관광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