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오일에 다니는 김모 과장은 지난가을 가족과 함께 2주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근무시간에 일하느라 녹초가 돼 집에 들어가서도 늘 죄인처럼 미안했는데, 좋아하는 가족의 얼굴을 보니 어깨가 활짝 펴졌다. 회사가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집중휴가제 덕분이다. 이는 임직원 할 것 없이 1년에 한 차례 꼭 2주간 휴가를 가야 하는 제도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S-오일의 집중휴가제에서 보듯 대한민국의 일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각 기업들은 직원들의 복지 신장을 위해 휴가와 야근, 회식, 회의 등의 문화를 바꿔 조직 활성화를 꾀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신명나는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7일 각 기업들에 따르면 SK는 야근을 금지하고 야근을 시킬 경우 상급자의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초과근무 제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줄이는 만큼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네이버는 타이머를 회의실에 비치해 최소 인원만으로 30분 내에 회의를 끝낸다. 압축회의를 위해 '회의 목적은 명확히, 준비는 충분히'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회의, 회식, 야근 없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3無(무)데이'를 한 달에 두 번 운영하는 웅진씽크빅의 직원 문소영씨는 "이날만큼은 잡담이나 커피 마시는 시간을 줄여 집중해 일하고 퇴근 후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생활을 할 수 있어 직원들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위성전문제작회사 쎄트렉아이는 10년 이상 장기근속자에게 1년의 휴가를 주는 안식년제를 운영하고 있고, 롯데는 임산부가 정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부서별로 퇴근시간을 모니터링하는 '임산부 인사 시스템 등록제'를 실시 중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움직임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야근이 일상화화고, 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진다. 법정 휴가 일수에 비해 실제 사용일수는 훨씬 짧으며, 직장 다니는 엄마는 육아 책임까지 떠맡고 있다. 그러다보니 근로문화의 변화는 일부 대기업에 국한된 것일 뿐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2012년 현재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705시간보다 387시간이 더 길다. 하루에 9시간 근무할 경우 43일이나 더 일하는 것이다. 일본은 1765시간, 독일은 1317시간이다.
보통의 직장인에게는 연월차 사용도 '그림의 떡'이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의 '근로자 연차휴가 사용현황' 조사에서는 응답기업의 74.7%가 '근로자가 연차휴가를 일부만 사용(62.7%)하거나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12.0%)'고 답했다. 연차휴가 사용 촉진을 위한 과제로는 '휴가사용이 자유로운 직장 분위기 조성'이 47.3%로 가장 많이 꼽혔다.
정부는 다음달부터 우리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개선하자는 내용의 범국민 캠페인 '일과 이분의 일'을 본격 펼친다. 일과 나머지 이분의 일인 가족·여가·삶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올바른 근로문화를 확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 초 대국민 선포식을 열고 주요 언론과 인터넷 포털에서 연중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대기업과 가족친화 인증기업, 여성단체, 노사단체 등 100여개 기관과 1차 민관 협의체를 구성한다.
세종=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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